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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쓸항상]한국 최초의 비행사 ‘안창남’의 삶을 돌아보다

▷용산서 미국인 조종사 비행을 보고 조종사 꿈꿔
▷금강호 타고 고국으로 돌아와…이후 독립운동 시작
▷비행훈련 중 사고로 안타깝게 목숨 잃어

입력 : 2023.02.23 16:15 수정 : 2024.06.19 10:34
[알쓸항상]한국 최초의 비행사 ‘안창남’의 삶을 돌아보다 출처=클립아트코리아
 

[위즈경제] 류으뜸 기자 =경성의 한울(하늘)! 경성의 한울! 내가 어떠케 몹시 그리워했는지 모르는 경성의 한울! 이 한울에 내 몸을 날리울 때 내 몸은 그저 심한 감격에 떨릴 뿐이었습니다.”(개벽 제31, 공중에서 본 경성과 인천 中)

 

19221210일 한 대의 비행기가 경성 하늘을 날아올랐습니다. 조종사 이름은 안창남. 한국인이 한반도 하늘을 처음으로 비행한 순간이었습니다. 그를 보기 위해 여의도 비행장에 모인 사람만 5만여명에 달했고, 하늘에선 비행기에서 뿌린 오색 전단이 흩날렸습니다. 서울과 인천 하늘에서 선보인 고국 방문 비행은 일본인과 서양인의 비행만 보던 식민지 조선인들에게 희망을 안겨줬습니다.

 

#소년, 조종사를 꿈꾸다

 

19013월 서울의 북촌인 평동에서 태어난 안창남은 1919년 서울 용산에서 열린 미국인의 조종사 곡예 비행을 보게 됩니다. 태어나 처음으로 외국인이 탄 비행기를 목격한 11시 안창남은 그까짓 것 우리 조선 사람도 배우면 하지라는 패기로 조종사의 꿈을 갖게 됩니다. 이후 곧바로 휘문고등보통학교를 중퇴한 뒤 18세에 계모의 돈을 훔쳐 도일해 1920년 도쿄에 있는 고구리 비행학교에 입학합니다.

 

그는 입학 3개월 만에 3등 비행사 면허장을 딴 데 이어 다음해 5월에 일본에서 실시된 제1회 조종사 면장시험에 수석으로 합격함으로써 한국인으로서는 최초의 조종사가 됩니다. 당시 시험에 17명이 응시했고 합격자는 그를 포함 2명뿐이었습니다. 또한 그는 한 달 뒤 지바에서 열린 민간항공대회에서는 2등을 기록하는 기염을 토합니다.

 

이런 소식이 고국에 알려지자 국민들은 축제 분위기에 들뜨게 됐고 19221210일 서울 여의도 비행장에서 모국방문비행대회를 개최하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안창남은 5만여명(당시 경성 인구는 30만여 명)의 인파가 지켜보는 가운데 고국으로 돌아왔습니다.

 

당시 안창남이 탄 비행기는 단발쌍엽(單發雙葉)1인승금강호(金剛號)’. 일본 오쿠리 비행학교 소속의 영국제 비행기였습니다. 금강호는 여의도를 이륙해 하늘로 치솟았습니다. 비행기는 남산을 돌아 창덕궁 상공을 거쳐 여의도 상공에서 고공비행의 묘기를 선보였습니다. 당시 나라 잃은 백성들에게 민족적 자부심과 긍지를 일깨워준 비행이었습니다.

 

#식민지 아이돌에서 독립운동 투사가 되다

 

고국 비행을 계기로 안창남의 삶도 선회했습니다. 모국의 애국지사들과의 만남에 이어 간토 대지진 직후 한인 학살을 목격한 안참남은 인기 비행사의 삶을 뒤로하고 중국으로 향했습니다.

 

그는 산시성 비행학교 교관으로 활약하며 항일독립단체인 대한독립공명단을 조직하는 등 조국의 독립을 위해 애썼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만 29살이던 1930, 안창남은 비행훈련 중 추락해 공중의 별로 사라졌습니다.

 

식민지 조선 최고의 아이돌에서 조국의 독립운동에도 투신해 불꽃 같은 삶을 산 안창남. 그는 일제강점기 조선인들이 패배감을 떨쳐내고 한국인들에게 자긍심을 불어넣어줬습니다. 그가 하늘의 별로 사라진지 10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우리들의 가슴을 벅차게 하는 진정한 최초의 비행사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류으뜸 사진
류으뜸 기자  awesome@wisdo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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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장애인도 비장애인도 인간의 존엄성에 기반한 자립은 당연한 것이기에 어떤 거주 시설에 있던 자립지원은 필수적이다. 시설안에서도 시설밖에서도 자립지원은 필수적인 것이므로 장애인거주시설에 충분한 인력지원을 해주고 시설환경도 개선하여 선진화 시켜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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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익이라는 맹점에 가려져 위, 날조 및 사기, 선동이라는 범죄가 숨겨저서는 안되며, 이를 눈감아 주는 판관의 사심은 그들이 지켜야 하는 사회 정의를 무너뜨릴 뿐임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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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침해가 일어나길 감시하며 걸리면 바로 아웃 시켜버리리라~ 작정한 것 아닌가 합니다.그냥 탈시설에만 꽂혀있는겁니다.무슨 문제가 있는지... 어떻게하면 모두에게 형평성 있는 법을 펼칠지... 진정으로 고민해주길 바랍니다. 거주시설을 없애려고만 하지말고 거주시설에 인력 지원도 더 해주고 재가 장애인이나 자립주거에만 편중된 지원을 하지말고 공평하게지원해 주시면서 좀 관심을 가져주셔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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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너무 안타깝습니다. 중증장애인의 생활을 알면 전장연이 이렇게 무조건적이고 강압적인 탈시설을 주 장할수없는데 같은 장애인인데 본인들의 이권을 위해 중증장애인들을 사지로 내몰면서 자유를 주장한다는 게 화가 납니다. 중증장애인에게 자유는 날개 다친 새 를 낭떠러지로 밀어버리는것과 다름없습니다. 시설에 도움받아야하는 중증장애인은 시설에서 생활하고 도 움받고 자립하고싶은 경증장애인은 자립하면 되는문 제인데 무조건 모아님도를 주장하니 중증장애인 부모 님들이 어버이날에 이렇게 나선거 아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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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당사자와 보호자의 다양한 목소리가 정책에 반영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부모회의 주장은 거주시설 이용 장애인의 권리와 삶의 질을 지키기 위한 진정성 있는 외침입니다. 지역사회 자립 지원과 더불어 거주시설의 선진화와 인권 보호도 함께 균형 있게 추진해서 모두가 존중받는 복지정책을 만들어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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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자립법안은 자립을 돕는 법안이라 하지만 탈시설이 목적입니다. 자립하고자 하는 장애인 반대 하지 않습니다 시설 또한 중증장애인들에겐 꼭 필요한 곳이기에 생활환경개선과 인력지원 통해 시설의 선진화을 만들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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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거주시설은 부모가 사후에 홀로 남겨질 아이가 걱정이 되어 선택을 하는 곳입니다.시설이 감옥이라면 그 어느부모가 시설에 입소를 시키겠습까..전장연은 당사자가 아니며 장애인을 대표하는 단체도 아닙니다.당사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시고 한쪽으로 기우는 정책 보다는 균형있는 정책으로 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