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마크 Link 인쇄 글자크기

글자크기 설정

글자크기 설정 시 다른 기사의 본문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사기 사회의 구조] ⑦처벌은 왜 약한가…사기범에게 유리한 법 구조

▷“속은 사람이 책임”이라는 문화가 법의 빈틈이 됐다
▷‘피해가 커질수록 처벌은 따라가지 못한다

입력 : 2026.01.27 11:32 수정 : 2026.01.27 11:45
[사기 사회의 구조] ⑦처벌은 왜 약한가…사기범에게 유리한 법 구조 (일러스트=챗GPT로 생성된 이미지)
 

[위즈경제] 조중환 기자 = 사기 범죄가 폭증하는 사회에서 가장 직관적인 해결책은 ‘강력한 처벌’이다. 많은 시민이 “형량이 약하니 사기꾼이 늘어난다”고 말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형량을 올리자’는 구호만으로는 핵심을 놓친다. 사기 범죄가 반복되는 이유는 단지 형량이 낮아서가 아니라, 법과 제도가 사기범에게 유리하게 작동하는 구간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사기범은 법을 모르는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법을 잘 아는 사람일수록 사기 산업에 오래 남는다. 어느 선을 넘으면 구속이 쉬워지는지, 어떤 표현을 쓰면 “고의가 없다”고 주장할 수 있는지, 계약서 한 장으로 민사 분쟁처럼 보이게 만들 수 있는지 계산한다. 이때 사기 범죄는 단순한 범죄가 아니라, 법의 사각지대를 활용하는 ‘모델’이 된다.

 

◇ “사기는 민사다”라는 말이 범죄를 살렸다

 

사기 사건에서 가장 자주 등장하는 말은 “민사로 해결하라”는 권유다. 실제로 사건 초기 단계에서 사기 피해자는 경찰서와 상담 과정에서 이 말을 듣는 경우가 적지 않다. 물론 모든 금전 분쟁이 형사 사건일 수는 없다. 하지만 문제는 사기범이 바로 이 경계를 악용한다는 점이다.

 

사기범은 거래와 계약의 외피를 씌운다. “투자였다”, “사업이었다”, “빌린 돈이었다”는 말로 사건을 민사 분쟁처럼 만든다. 피해자의 피해는 분명하지만, 고의와 기망을 입증하는 책임은 피해자에게 돌아온다. 이때부터 게임의 룰이 바뀐다. 피해자는 ‘피해자’가 아니라 입증 책임을 지는 소송 당사자가 된다.

 

사기범은 시간을 번다. 수사는 느려지고, 피해금은 흩어지고, 피해자는 지친다. 이 구조는 단지 행정상의 불편이 아니라, 사기범의 성공 전략이다.

 

◇ “고의”를 입증하라는 요구는 피해자에게 너무 가혹하다

 

사기죄는 결국 ‘속일 의도’, 즉 고의를 어떻게 입증하느냐의 문제로 귀결된다. 그런데 현대 사기 범죄는 고의를 드러내지 않는 방식으로 진화했다. 사기범은 기록을 남기지 않는다. 메신저는 삭제하고, 통화는 하지 않거나, 제3자를 내세운다. 계약서에는 면책 조항을 끼워 넣고, “손실 가능성에 동의했다”는 문구를 넣는다.

 

피해자는 언제나 뒤늦게 깨닫는다. 그리고 뒤늦게 남은 것은 조각난 정황뿐이다. 이때 법은 피해자에게 묻는다. “처음부터 속일 마음이 있었음을 증명하라.” 현실에서는 피해자가 그걸 증명하기 어렵다. 결과적으로 사기 범죄는 ‘고의 입증의 벽’ 앞에서 생존률이 높아진다.

 

◇ 피해가 커질수록 처벌이 따라가지 못하는 구조

 

사기 피해 규모가 커질수록 처벌도 커져야 상식적이다. 하지만 실제 체감은 정반대다. 피해액이 커지면 사건은 복잡해진다. 피해자는 늘어나고, 증거는 분산되고, 수사 기관의 자원은 한정된다. 사건이 커질수록 수사와 재판은 길어지고, 그 사이 피해 회복은 어려워진다.

 

이 과정에서 피해자는 반복적으로 좌절한다. “왜 이렇게 오래 걸리나”, “왜 내 돈은 못 찾나”라는 질문 앞에서 제도는 늘 비슷한 답을 내놓는다. 절차가 필요하다는 말, 시간이 걸린다는 말이다. 그러나 그 시간이 사기범에게는 기회다. 도피, 은닉, 자금 세탁, 명의 분산은 모두 ‘시간이 주는 선물’이다.

 

사기범이 노리는 것은 결국 한 가지다. 유죄가 나오더라도 이미 돈이 없다면 피해 회복은 불가능해진다. 처벌이 남아도 피해 회복이 따라오지 않는 구조에서, 사기범에게 범죄는 여전히 ‘남는 장사’다.

 

◇ 솜방망이의 핵심은 “형량”이 아니라 “회복 부재”다

 

사기 피해자들이 느끼는 ‘솜방망이’는 법정형의 숫자만을 뜻하지 않는다. 피해자가 체감하는 솜방망이는 돌려받지 못하는 현실, 끝없는 절차, 책임의 공백이다. 처벌은 법정에서 내려지지만, 피해자의 삶에서는 아무것도 회복되지 않는다. 그러면 처벌은 피해자에게 의미를 잃는다.

 

사기범에게 중요한 것도 형량의 숫자보다 ‘구조’다.

▲잡힐 확률이 낮고, ▲잡혀도 시간이 오래 걸리고, ▲설령 유죄가 나도 돈은 숨길 수 있고, ▲피해자는 끝까지 지치며, ▲사회는 결국 “왜 속았냐”고 묻는다면 그 범죄는 계속된다. 사기범은 ‘사람을 속이는 기술’보다 제도를 무력화하는 전략에 능숙한 쪽이 오래 살아남는다.

 

◇ 법은 바뀌어도, 관행이 바뀌지 않으면 소용없다

 

서울고등법원(사진=연합뉴스)

 

 

사기 대응에서 자주 빠지는 함정이 있다. “법만 바꾸면 된다”는 생각이다. 물론 법 개정은 중요하다. 하지만 사기 범죄의 방조 장치는 조문만이 아니다. 사건을 민사로 흘려보내는 관행, 피해자의 입증 부담을 과도하게 요구하는 관행, 수사 자원의 만성 부족, 피해 회복을 후순위로 두는 관행이 결합돼 있다.

따라서 해결은 하나로 끝나지 않는다. 처벌 강화 논의는 다음 질문을 반드시 포함해야 한다.

 

▲수사 속도를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 ▲초기 자금 동결을 어떻게 표준화할 것인가, ▲피해 회복을 형사 절차 안에 어떻게 연결할 것인가, ▲플랫폼·금융·수사기관 간 정보 연계를 어떻게 강제할 것인가 이 질문이 빠진 ‘형량 강화’는 효과가 제한적이다. 사기는 법조문 한 줄이 아니라, 구조의 빈틈에서 자란다.

 

◇ “속은 사람이 책임”이라는 통념이 법을 망친다

 

사기 범죄를 키운 것은 사기범의 교묘함만이 아니다. 한국 사회에 깊게 박힌 “속은 사람이 잘못”이라는 통념이 제도를 무디게 만들었다. 피해자는 조롱받고, 사기범은 “사업하다 실패했다”는 말로 빠져나간다. 그 사이 법과 관행은 피해자에게만 엄격해졌다.

 

사기 범죄를 줄이려면 처벌의 숫자뿐만 아니라 먼저 제도의 방향을 바꿔야 한다. 피해 회복이 중심이 되도록, 초기 차단이 표준이 되도록, 책임이 분산되지 않도록 구조를 재설계해야 한다. 사기범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형량이 높아졌다” 보다는 돈이 빠져나가지 못하는 시스템과 빠르게 확정되는 책임이다.

 

다음 편에서는 바로 그 지점, 피해금이 왜 돌아오지 않는지를 구조적으로 추적한다. 사기가 완성되는 순간은 신뢰가 무너질 때가 아니라, 돈이 빠져나갈 때다. 그 마지막 관문에서 무엇이 멈춰 서 있었는지, 이제는 묻지 않을 수 없다.

 

이 기획은 Global Anti-Scam Alliance(GASA)가 2025년 발표한 ‘State of Scams in South Korea 2025’ 보고서를 분석의 출발점으로 삼았다. 해당 보고서는 전국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한국 사회에서 사기 범죄가 얼마나 일상화·구조화되어 있는지를 수치로 보여준다.


위즈경제는 이 데이터를 단순 소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사기 범죄가 개인의 부주의 문제가 아닌 사회적 위험 시스템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누가 피해자가 되었는지보다, 왜 누구나 피해자가 될 수밖에 없는 구조가 만들어졌는지, 그리고 그 책임은 어디에 있는지를 묻고자 한다.[편집자주]


 
조중환 사진
조중환 기자  highest@wisdot.co.kr
 

댓글 82

댓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