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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 사회의 구조] ⑤피해는 돈에서 끝나지 않는다

▷사기 이후에도 끝나지 않는 스트레스
▷개인의 상처가 사회의 비용이 될 때

입력 : 2026.01.22 09:12 수정 : 2026.01.22 09:19
[사기 사회의 구조] ⑤피해는 돈에서 끝나지 않는다 (일러스트=챗GPT로 생성된 이미지)
 

[위즈경제] 김영진 기자 = 이 기획은 Global Anti-Scam Alliance(GASA)가 2025년 발표한 ‘State of Scams in South Korea 2025’ 보고서를 분석의 출발점으로 삼았다. 해당 보고서는 전국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한국 사회에서 사기 범죄가 얼마나 일상화·구조화되어 있는지를 수치로 보여준다.


위즈경제는 이 데이터를 단순 소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사기 범죄가 개인의 부주의 문제가 아닌 사회적 위험 시스템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누가 피해자가 되었는지보다, 왜 누구나 피해자가 될 수밖에 없는 구조가 만들어졌는지, 그리고 그 책임은 어디에 있는지를 묻고자 한다.[편집자주]

 

사기 피해를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언급되는 것은 금액이다. 얼마를 잃었는지, 돌려받았는지가 피해의 전부처럼 다뤄진다. 그러나 보고서가 보여주는 현실은 다르다. 사기는 돈을 빼앗고 끝나는 범죄가 아니다. 오히려 피해가 인식된 이후부터 또 다른 형태의 비용이 발생한다. 이 비용은 통계에서 쉽게 사라지지만, 개인의 삶에는 오래 남는다.

 

◇ 사기 이후 남는 것, 스트레스와 정신적 부담


 

사기 피해를 경험한 응답자 다수는 상당한 스트레스와 정신적 부담을 겪었다고 답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사기 피해를 경험한 응답자 중 다수는 사건 이후 높은 수준의 스트레스와 정신적 부담을 느꼈다고 응답했다. 이는 사기 피해가 단발적인 충격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준다. 피해자는 단순히 돈을 잃은 것이 아니라, 일상 전반에서 불안과 긴장을 안고 살아가게 된다.

 

특히 문제는 이 스트레스가 개인 내부에서만 처리되도록 방치된다는 점이다. 사기 피해는 공식적으로는 ‘민사적 손실’이나 ‘형사 사건’으로 분류되지만, 그 이후의 정신적 부담에 대해서는 별도의 보호 체계가 거의 없다. 신고가 끝나면 제도의 역할도 사실상 종료된다. 피해자는 사건이 끝났다고 통보받지만, 삶에서는 사건이 끝나지 않는다.

 

◇ 개인을 넘어 관계로 번지는 피해


 

사기 피해는 개인뿐 아니라 가족·지인과의 관계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자료: GASA, 2025)

 

사기 피해는 개인의 심리 상태에만 머물지 않는다. 보고서는 사기 경험 이후 가족이나 주변 관계에서 긴장과 갈등이 발생했다는 응답이 적지 않게 나타났다고 보여준다. 피해 사실을 알리는 과정에서 불신이 생기고, 경제적 손실을 둘러싼 책임 공방이 이어지기도 한다.

 

이 지점에서 사기는 더 이상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사기는 관계를 흔들고, 신뢰를 약화시키며, 가족 단위의 안정성까지 위협한다. 그러나 이러한 영향은 공식 통계에서 ‘부수적 결과’로 취급된다. 제도는 여전히 피해를 개인 단위로만 계산한다.

 

◇ 보이지 않는 비용, 계산되지 않는 피해

 

금전 피해는 숫자로 남는다. 그러나 스트레스, 관계 악화, 신뢰 붕괴는 수치로 환산되지 않는다. 그 결과 사기 범죄의 실제 비용은 항상 과소평가된다. 피해자가 겪는 정신적 부담은 개인의 감내 영역으로 밀려나고, 사회는 그 부담을 함께 나누지 않는다.

 

이 구조는 사기 범죄를 더욱 지속 가능하게 만든다. 범죄가 남기는 비용을 사회가 떠안지 않는 한, 범죄를 줄여야 할 유인은 약해진다. 사기 피해자가 늘어나도, 제도는 ‘회수율’이나 ‘검거 건수’만을 성과로 삼는다. 삶의 회복은 지표에 포함되지 않는다.

 

◇ 회복을 외면하는 사회는 피해를 반복시킨다

 

사기 피해를 돈의 문제로만 다루는 사회에서는 같은 범죄가 반복될 수밖에 없다. 피해자는 금전을 잃고, 그 이후의 고통은 개인의 몫이 된다. 그러나 보고서가 보여주듯, 사기 피해는 스트레스와 관계 악화라는 형태로 지속적인 후유증을 남긴다.

 

사기 범죄를 줄이기 위해 필요한 것은 단순한 주의 환기가 아니다. 피해 이후의 회복을 제도의 책임으로 포함시키는 것이다. 정신적 부담과 관계 손상까지 고려하지 않는 대응은, 피해를 온전히 해결했다고 말할 수 없다.

 

다음 편에서는 사기 범죄의 책임을 둘러싼 논쟁으로 시선을 옮긴다. 정부·금융권·플랫폼 가운데 누가 어디까지 책임져야 하는가,그리고 왜 이 책임이 계속해서 피해자에게 전가돼 왔는지를 짚는다.


 
김영진 사진
김영진 기자  jean@wisdo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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