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 사회의 구조] ②투자사기와 사칭사기는 왜 항상 함께 움직이나
▷‘고수익’과 ‘권위’가 결합될 때 사기는 폭발한다
▷신뢰를 가장한 범죄, 신뢰로 작동하는 사회
(일러스트=챗GPT로 생성된 이미지)
[위즈경제] 김영진 기자 = 이 기획은 Global Anti-Scam Alliance(GASA)가 2025년 발표한 ‘State of Scams in South Korea 2025’ 보고서를 분석의 출발점으로 삼았다.
해당 보고서는 전국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한국 사회에서 사기 범죄가 얼마나 일상화·구조화되어 있는지를 수치로 보여준다.
위즈경제는 이 데이터를 단순 소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사기 범죄가 개인의 부주의 문제가 아닌 사회적 위험 시스템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누가 피해자가 되었는지보다, 왜 누구나 피해자가 될 수밖에 없는 구조가 만들어졌는지, 그리고 그 책임은 어디에 있는지를 묻고자 한다.[편집자주]
한국에서 가장 흔하게 발생하는 사기 유형은 무엇일까. 보고서는 명확한 답을 제시한다. 투자사기(50%)와 사칭사기(43%)다.
문제는 이 두 유형이 각각 독립적으로 발생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실제 현장에서는 이 둘이 하나의 시나리오처럼 결합돼 작동한다. 고수익을 미끼로 접근한 뒤, 공공기관·금융사·전문가를 사칭해 신뢰를 덧입히는 방식이다.
이 조합은 우연이 아니다. 투자사기와 사칭사기는 한국 사회의 구조적 취약점을 가장 효율적으로 파고드는 공식에 가깝다. 돈과 권위, 욕망과 신뢰가 동시에 자극될 때, 사기는 가장 빠르고 깊게 침투한다.
◇ ‘고수익’이라는 미끼, 가장 오래된 수법이 가장 강력하다
투자사기는 ‘가장 오래된 사기 수법’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가장 강력하다. 이유는 단순하다. 한국 사회는 여전히 자산 증식의 압박 속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고금리·고물가 환경, 불안정한 노동시장, 노후 불안은 개인을 끊임없이 투자로 밀어 넣는다. 이때 “확실한 정보”, “검증된 기회”, “지금 아니면 늦는다”는 말은 강력한 유혹이 된다.
보고서는 투자사기 피해자 상당수가 “제안이 매우 그럴듯했기 때문에 속았다"고 답했다고 전한다. 문제는 이 ‘그럴듯함’이 개인의 판단 착오에서 비롯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사기범들은 실제 금융 상품, 실제 시장 흐름, 실제 뉴스와 유사한 언어를 정교하게 조합한다. 피해자는 위험을 무시한 것이 아니라, 현실과 거의 구분되지 않는 거짓을 마주한 것이다.
◇ 사칭사기는 왜 항상 뒤따르는가
투자사기에 사칭사기가 결합되는 순간, 사기의 성공 확률은 급격히 높아진다. 공공기관, 금융사, 수사기관, 혹은 ‘전문가’를 사칭하는 방식은 단순한 연기가 아니다. 이는 한국 사회가 권위에 얼마나 크게 의존하는지를 정확히 계산한 결과다.
보고서에 따르면 사칭사기는 투자사기 다음으로 가장 빈번하게 발생하는 유형이다. 이는 한국 사회에서 여전히 ‘공식 명칭’, ‘직함’, ‘기관 이름’이 강력한 신뢰 신호로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문제는 이 신뢰가 검증 시스템이 아니라 말과 형식에 의해 유지되고 있다는 점이다.
사기범들은 이 틈을 파고든다. 금융감독기관을 사칭하고, 은행 직원을 가장하며, 때로는 경찰이나 검사 역할까지 연기한다. 피해자는 판단을 멈춘 것이 아니라, 신뢰하도록 설계된 사회적 신호에 반응했을 뿐이다.
◇ 왜 한국에서는 이 조합이 유독 강력한가
투자사기와 사칭사기가 결합해 폭발력을 갖는 이유는 한국 사회의 구조적 조건과 맞닿아 있다. 첫째, 자산 격차와 노후 불안이 크다. 둘째, 금융·공공 시스템에 대한 정보 비대칭이 심하다. 셋째, 공식 기관에 대한 신뢰는 높지만, 이를 즉시 검증할 수 있는 통합 창구는 부재하다.
이 조건이 결합되면 개인은 선택의 여지가 줄어든다. 의심하는 순간 기회를 놓칠 것 같고, 확인하려 해도 어디서 어떻게 해야 할지 알기 어렵다. 그 사이 사기는 빠르게 진행된다. 사기범이 교묘해서가 아니라, 사회가 그렇게 움직이도록 설계돼 있기 때문이다.
보고서는 이러한 사기 경험이 단기간에 끝나지 않는 경우도 많다고 지적한다. 투자사기와 사칭사기가 결합된 사례일수록 피해 기간이 길어지는 경향을 보인다. 피해자가 스스로 사기임을 인지하는 데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이 역시 개인의 판단 문제가 아니라, 사기의 구조적 완성도를 보여주는 지표다.
◇ 신뢰를 관리하지 않는 사회는 범죄에 취약하다
투자사기와 사칭사기는 한국 사회가 무엇을 신뢰하고, 무엇을 검증하지 않는지를 정확히 비춘다. 우리는 여전히 ‘기관의 이름’을 신뢰하면서도, 그 이름을 확인할 수 있는 시스템에는 무관심하다. 고수익을 경계하라고 말하면서도, 불안한 개인을 투자로 몰아넣는 구조는 방치한다.
사기를 개인의 탐욕이나 무지로 설명하는 순간, 이 구조는 보이지 않게 된다. 그러나 보고서가 보여주는 수치는 분명하다. 가장 많이 발생하는 사기는, 가장 사회적인 사기다. 투자사기와 사칭사기가 결합된 범죄는 개인의 약점을 파고드는 것이 아니라, 사회가 만들어 놓은 신뢰의 틈을 이용한다.
다음 편에서는 사기범들이 가장 효과적으로 침투하는 통로, 문자·메신저·플랫폼으로 이동한 사기의 경로를 집중 분석한다. 왜 제도는 이 이동을 따라가지 못했는지, 그 공백이 어떻게 범죄 인프라가 됐는지를 짚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