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마크 Link 인쇄 글자크기

글자크기 설정

글자크기 설정 시 다른 기사의 본문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사기 사회의 구조] ③카카오톡·텔레그램으로 옮겨간 사기, 제도는 멈췄다

▷사기는 이동했지만, 대응은 여전히 문자에 머물렀다
▷‘사적 대화’라는 방패 뒤에 숨은 범죄 인프라

입력 : 2026.01.20 10:21 수정 : 2026.01.20 10:27
[사기 사회의 구조] ③카카오톡·텔레그램으로 옮겨간 사기, 제도는 멈췄다 (일러스트=챗GPT로 생성된 이미지)
 

[위즈경제] 김영진 기자 = 이 기획은 Global Anti-Scam Alliance(GASA)가 2025년 발표한 ‘State of Scams in South Korea 2025’ 보고서를 분석의 출발점으로 삼았다. 해당 보고서는 전국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한국 사회에서 사기 범죄가 얼마나 일상화·구조화되어 있는지를 수치로 보여준다.


위즈경제는 이 데이터를 단순 소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사기 범죄가 개인의 부주의 문제가 아닌 사회적 위험 시스템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누가 피해자가 되었는지보다, 왜 누구나 피해자가 될 수밖에 없는 구조가 만들어졌는지, 그리고 그 책임은 어디에 있는지를 묻고자 한다.[편집자주]

 

사기는 조용히 이동했다. 그리고 제도는 그 이동을 보지 못했다.

 

한국에서 발생하는 사기 시도의 상당수는 더 이상 전화나 문자 메시지에 국한되지 않는다. 보고서는 사기범들이 메신저·소셜 플랫폼을 중심으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정부와 수사기관, 금융권의 대응 체계는 여전히 ‘전화·문자 기반 사기’를 전제로 설계돼 있다. 사기는 이미 다른 곳으로 옮겨갔는데, 대응은 과거에 멈춰 있는 셈이다.

 

이 간극이 바로 오늘날 사기 범죄가 폭증하는 가장 현실적인 이유다.

 

◇ 사기는 어디로 이동했나

 

보고서에 따르면 사기범들이 가장 많이 활용하는 접촉 경로는 ‘직접 메시지(Direct Message)’다. 여기에는 문자와 전화뿐 아니라 카카오톡, 텔레그램, 각종 SNS 메시지가 포함된다. 사기범 입장에서 이 채널들은 효율적이다. 비용이 적게 들고, 접근이 쉽고, 무엇보다 감시가 느슨하다.

 

한국에서 발생한 사기 시도의 대부분은 문자·전화뿐 아니라 메신저와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이뤄지고 있다. 사기범들은 개인 간 소통 채널로 빠르게 이동했다. (자료: GASA, 2025)

특히 메신저 기반 사기는 기존 통신사 차단 시스템이나 금융권의 이상거래 탐지(FDS)를 우회하기 쉽다. 전화번호나 계좌가 아닌 대화 맥락과 심리 조작이 핵심이기 때문이다. 이는 사기를 단순한 ‘연락 수단 문제’가 아니라, 플랫폼 구조 문제로 봐야 하는 이유다.

 

◇ ‘사적 대화’라는 방패

 

사기범들이 메신저로 이동한 데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바로 ‘사적 대화’라는 명분이다.

메신저와 SNS는 사적인 소통 공간으로 분류된다. 이 때문에 플랫폼들은 사기 감시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대화 내용을 들여다보는 것은 개인정보 침해라는 논리다. 그러나 이 논리는 결과적으로 범죄에 가장 안전한 공간을 제공하는 명분이 되고 있다.

 

보고서가 보여주는 현실은 단순하다. 사기범들은 규제가 느슨한 곳으로 이동한다. 문자 차단이 강화되자 메신저로, 공개 게시물이 감시되자 1대1 대화로 옮겨갔다. 이는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책임 설계의 문제다.

 

◇ 제도는 왜 따라가지 못했나

 

사기 범죄 대응 체계는 여전히 분절돼 있다. 통신사는 통신만, 금융사는 금융만, 플랫폼은 “우리는 중개자일 뿐”이라고 말한다. 이 구조에서 메신저 기반 사기는 누구의 책임도 되지 않는다. 신고는 가능하지만, 실질적 차단이나 사전 예방은 어렵다는 말이 반복된다.

 

보고서에 따르면 사기 피해자의 상당수는 사기 접촉 이후에도 이를 명확히 사기로 인식하지 못한 채 대화를 이어간다. 메신저 기반 사기는 단발적 접촉이 아니라 시간을 두고 신뢰를 쌓는 방식으로 진행되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피해자는 범죄에 노출됐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한다.

 

◇ 사기는 ‘보이지 않게’ 진행된다

 

한국의 사기 피해자 중 약 40%는 사기 경험이 하루 이상 지속됐다고 답했다. 메신저 기반 사기는 단발적 사건이 아니라, 시간차를 두고 진행되는 범죄다. (자료: GASA, 2025)

사기 피해의 약 40%는 하루 이상 지속된다. 이는 사기가 즉각적인 속임수가 아니라, 관계 형성과 신뢰 조작의 과정임을 보여준다. 특히 메신저 사기는 피해자가 사기임을 인식하기까지 더 오랜 시간이 걸린다. 그 사이 피해 금액은 커지고, 회수 가능성은 급격히 낮아진다.

 

그럼에도 제도는 여전히 ‘사후 신고’에 머물러 있다. 사기가 시작되는 순간을 포착하지 못한 채, 모든 책임을 피해자가 인식한 이후로 미룬다. 이는 구조적으로 실패한 대응이다.

 

◇ 사기가 이동했는데, 왜 제도는 멈춰 있었나

 

사기범들은 변화에 민감하다. 차단이 강화되면 이동하고, 감시가 시작되면 더 사적인 공간으로 숨어든다. 문제는 제도와 책임 구조가 이 이동을 예측하지도, 따라가지도 못했다는 점이다.

 

메신저 기반 사기는 이미 주류가 됐다. 그럼에도 우리는 여전히 “전화 조심하라”, “문자 클릭하지 말라”는 경고에 머물러 있다. 이는 현실을 외면한 대응이다. 사기를 막지 못하는 사회는 사기를 키운다.

 

사기를 개인의 주의력 문제로 돌리는 한, 이 구조는 바뀌지 않는다. 이제는 묻지 않을 수 없다. 플랫폼은 어디까지 책임져야 하는가. 국가는 이 이동을 왜 방치했는가.

 

다음 편에서는 사기 피해자들이 신고했음에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고 느끼는 이유, 즉 무력한 신고 시스템과 책임 공백을 집중적으로 들여다본다.

 
김영진 사진
김영진 기자  jean@wisdot.co.kr

댓글 80

댓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