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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 사회의 구조] ④신고했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10명 중 9명은 신고했지만, 3명만 돈을 돌려받았다
▷작동하지 않는 신고 시스템이 범죄를 키운다

입력 : 2026.01.21 10:17 수정 : 2026.01.21 10:32
[사기 사회의 구조] ④신고했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일러스트=챗GPT로 생성된 이미지)
 

[위즈경제] 김영진 기자 = 이 기획은 Global Anti-Scam Alliance(GASA)가 2025년 발표한 ‘State of Scams in South Korea 2025’ 보고서를 분석의 출발점으로 삼았다. 해당 보고서는 전국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한국 사회에서 사기 범죄가 얼마나 일상화·구조화되어 있는지를 수치로 보여준다.


위즈경제는 이 데이터를 단순 소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사기 범죄가 개인의 부주의 문제가 아닌 사회적 위험 시스템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누가 피해자가 되었는지보다, 왜 누구나 피해자가 될 수밖에 없는 구조가 만들어졌는지, 그리고 그 책임은 어디에 있는지를 묻고자 한다.[편집자주]

 

사기를 당한 뒤 가장 먼저 떠올리는 선택지는 ‘신고’다. 한국 사회는 피해자에게 신고를 권한다. 그러나 신고 이후의 현실은 정반대다.

 

보고서는 사기 피해자의 90%가 신고를 했음에도, 실제로 피해 금액을 일부라도 회수한 비율은 31%에 그쳤다고 밝혔다. 신고는 권장되지만, 구제는 보장되지 않는다. 이 괴리가 바로 오늘날 사기 범죄의 지속 조건이다.

 

신고가 범죄 억제 장치로 작동하려면 두 가지가 필요하다. 신속성과 가시성이다. 신고하면 무엇이 달라지는지, 어떤 조치가 이어지는지 피해자가 체감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절반이 넘는 피해자는 “아무런 조치가 없었거나, 어떤 결과가 있었는지 알 수 없었다”고 답했다. 신고는 있었지만, 결과는 보이지 않았다.

 

◇ 신고는 했지만, 결과는 사라졌다

 

신고율 90%는 한국 사회가 사기 범죄를 결코 가볍게 여기지 않는다는 방증이다. 피해자들은 책임을 회피하지 않는다. 오히려 제도가 요구하는 절차를 충실히 따른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신고 이후의 대응은 기관별로 쪼개져 있고, 책임은 흩어진다. 통신사는 “이미 전달됐다”고 말하고, 금융사는 “계좌 동결은 수사 요청이 있어야 가능하다”고 답한다. 플랫폼은 “사적 대화”를 이유로 한발 물러선다.

 

이 과정에서 피해자는 다시 한 번 고립된다. 범죄를 당한 뒤, 제도의 문턱에서 좌절을 경험하는 것이다. 신고가 2차 피해로 이어지는 이유다.

 

 

한국의 사기 피해자 가운데 90%는 사기 사실을 신고했지만, 실제로 피해 금액을 일부라도 회수한 비율은 31%에 그쳤다. 신고와 구제 사이의 간극이 크다. (자료: GASA, 2025)

◇ 왜 돈은 돌아오지 않는가

 

피해금 회수율이 낮은 이유는 단순하지 않다. 사기 범죄는 다단계로 설계돼 있다. 계좌는 빠르게 바뀌고, 자금은 여러 경로로 분산된다. 메신저 기반 사기의 경우 피해 인지까지 시간이 오래 걸려 초기 대응의 골든타임을 놓치기 쉽다. 이미 자금이 이동한 뒤에야 신고가 접수된다.

 

보고서는 사기 피해의 약 40%가 하루 이상 지속됐다고 밝힌다. 이는 사기가 단발적 속임수가 아니라, 시간차를 두고 진행되는 범죄임을 의미한다. 그 사이 제도는 거의 개입하지 못한다. 사후 신고만으로는 구조적 범죄를 막을 수 없는 이유다.

 

◇ 신고의 책임은 왜 피해자에게만 있는가

 

한국의 사기 대응 체계는 피해자에게 과도한 부담을 지운다. 어디에 신고해야 하는지, 어떤 서류가 필요한지, 어떤 순서로 진행해야 하는지 모두 피해자가 알아서 해결해야 한다. 통합 창구는 부재하고, 기관 간 연계도 느리다. 이 구조에서 신고는 권리라기보다 의무에 가깝다.

 

문제는 이 구조가 사기범에게 유리하게 작동한다는 점이다. 신고 과정이 복잡하고 결과가 불확실할수록, 피해자는 포기한다. 실제로 보고서는 일부 피해자가 “신고해도 소용없다고 느껴 더 이상 진행하지 않았다”고 답했다고 전한다. 신고의 무력감이 범죄의 지속 연료가 되는 셈이다.

 

◇ ‘신고하면 끝’이라는 착각


 

사기 피해 금액을 전액 회수한 비율은 극히 낮았으며, 상당수는 전혀 돌려받지 못했다. 신고 이후의 실질적 구제 장치가 부족함을 보여준다. (자료: GASA, 2025)

 

신고가 곧 해결이라는 믿음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신고는 시작일 뿐이다. 그러나 시작 이후의 경로가 보이지 않는 사회에서, 신고는 범죄 억제 장치가 아니라 피해자에게 주어진 마지막 의무가 된다. 이는 제도가 해야 할 역할을 개인에게 전가하는 방식이다.

 

◇ 신고가 무력한 사회는 범죄에 관대하다

 

사기 피해자는 이미 한 번 상처를 입었다. 그럼에도 사회는 다시 묻는다. “신고했느냐”고. 문제는 신고 이후다. 신고가 아무것도 바꾸지 못한다면, 그 사회는 범죄에 관대해진다. 처벌이 약해서가 아니라, 구조가 범죄를 방치하기 때문이다.

 

사기 범죄를 줄이기 위한 출발점은 피해자에게 더 많은 주의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신고가 실제로 작동하는 시스템을 만드는 일이다. 자금 동결의 신속화, 플랫폼·금융·수사기관의 실시간 연계, 피해자가 결과를 확인할 수 있는 가시성 확보가 필요하다.

 

다음 편에서는 사기 피해가 남기는 정신적·사회적 비용을 들여다본다. 돈보다 오래 남는 상처가 무엇인지, 그리고 이 비용을 사회가 어떻게 외면해 왔는지를 추적한다.


 
김영진 사진
김영진 기자  jean@wisdo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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