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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이사장 공화국’이 된 신협

입력 : 2025.09.16 08:40 수정 : 2025.09.16 09:07
[기자수첩] ‘이사장 공화국’이 된 신협 사진=신협
 

[위즈경제] 류으뜸 기자 =신협은 서민금융의 상징이자, 협동조합 정신의 산물이다. 같은 지역, 같은 직장에 속한 사람들이 서로 돕기 위해 만든 금융기관이다. 조합원들이 공동 출자하고, 공동 운영하며, 수익도 함께 나눈다. 이름 그대로 ‘신용협동조합’이다.

 

그러나 오늘날 신협의 모습은 본래의 취지와 점점 멀어지고 있다. 몇몇 조합에서는 조합원은커녕, 이사장 한 명만을 위한 구조로 전락한 사례가 반복되고 있다. 더욱 심각한 건 이러한 비위와 일탈이 '일부'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구조적으로 반복되며, 시스템 전반에 경고등이 켜진 상태다.

 

최근 몇 년 사이 신협을 둘러싼 비위 사례는 하나같이 낯뜨겁다. 지난해 7월, 일부 신협 이사장들이 참석한 해외 연수 일정에는 골프 라운딩과 전신 마사지가 포함돼 있었다. 당시 신협의 연체율은 치솟고 있었고, 재정은 위기 국면이었다. 국민의 혈세로 간접 지원받는 협동조합이 경영 개선은커녕 ‘휴양성 관광’에 몰두한 셈이다.

 

또 다른 사례도 있다. 20년 넘게 근무한 A 전무가 명예퇴직 후 상임이사로 복귀했고, 퇴직금 2억 원을 수령했다. 금융감독원이 이미 조합 내 재취업 시 명예퇴직금 지급 금지를 권고했음에도, 전체 신협 중 40%가 이를 따르지 않았다. 조합 돈이 개인의 노후자금으로 전락한 현실이다.

경기도의 한 신협 이사장은 무려 5년간 사적 경조사, 골프 모임 등에 여비를 부당 청구해 1억 원 넘게 챙겼다. 법인카드 사적 사용 의혹도 함께 불거졌다. 금감원에 정식 조사가 요청됐지만, 이러한 사례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는 분석도 있다.

 

이 같은 비위가 왜 반복될까? 이유는 간단하다. '견제받지 않는 권력'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신협 이사장은 최대 12년까지 연임이 가능하지만, 퇴직 후 상임이사를 거쳐 다시 이사장으로 복귀하는 방식으로 무한 반복이 가능하다. 소위 ‘회전문 인사’다. ‘이사장 → 상임이사 → 이사장’ 구조는 지배구조의 허점이자, 사유화의 출발점이다.

 

인사권도 문제다. 상임이사, 상임감사 등 주요 보직의 추천권이 모두 이사장에게 집중돼 있다. 이사회조차 이사장의 인사권에 종속돼 있으니, 사실상 견제 기능은 작동할 수 없다. 신협 구조를 잘 아는 관계자들의 말에 따르면 이사회는 친분 중심으로 폐쇄적이며, 이사장에게 비판적인 의견은 회의록에도 잘 남지 않는다. 이사회는 통제기구가 아니라, 들러리에 불과한 경우가 많다.

 

외부 감시 기능도 무기력하다. 상임감사는 이사회의 의결을 통해 임명되며, 이사장의 측근이나 신협중앙회 출신 인사가 자리를 차지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결국 감시자가 감시 대상과 한통속이 되는 구조다. 조합원 보호를 위해 도입된 감사 제도가 오히려 이사장의 권력 연장을 돕고 있는 셈이다.

중앙회 차원에서도 뾰족한 대책이 없다. 신협중앙회장은 각 조합의 이사장들이 직접 선출한다. 결국 중앙회도 조합 이사장 눈치를 보게 되는 구조다. 실효성 있는 감독은커녕, 자기 사람을 보호하기에 급급하다. 866개 조합, 1712개 점포를 보유하고 자산 152조 원을 운용하는 조직이 사실상 내부 자율에만 맡겨진 상태다.

 

상호금융 감독체계도 문제다. 신협은 금융위원회, 새마을금고는 행정안전부, 농협은 농림축산식품부가 맡고 있다. 감독 주체가 흩어져 있다 보니, 책임도 분산돼 있다. 결과적으로 누구도 실질적인 제재를 집행하지 못하는 구조다. 지금 필요한 건, 이 모든 상호금융을 총괄 감독할 수 있는 통합적 기구다. 각기 다른 부처 아래서 비위가 자랄 틈을 주지 않기 위해서다.

시민단체들은 임기 제한 강화, 후보 추천 절차 폐지, 후보 등록 요건 완화 같은 구조 개편을 요구하고 있다. 단순히 도덕적 자성이 아니라, 제도 자체를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다. 문제는 반복되기 마련이다. 바꾸지 않으면, 다시 반복된다.

 

조합은 조합원이 주인이다. 하지만 지금의 신협은 ‘이사장 공화국’이 돼버렸다. 조합원은 정보에서 배제되고, 운영의 주체가 아닌 관찰자로 밀려났다. 신협이 서민의 금융으로 다시 자리 잡기 위해서는 단순한 인물 교체가 아니라, 시스템 자체의 리셋이 필요하다. 신협이라는 이름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이사장 중심 권력 구조를 바꾸는 일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감독 사각지대는 항상 그늘을 키운다. 지금 신협의 구조는 자정이 불가능한 상태다. 자율이라는 이름 아래 방치된 무책임은 결국 조합원의 신뢰를 갉아먹는다. 정작 조합원을 위한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선, 조합원이 진짜 주인임을 제도적으로 증명해야 한다. 감시받지 않는 권력은 반드시 타락한다. 지금 신협이 보여주는 모습은 그 경고가 현실이 된 사례다. 그리고 그 대가는 고스란히 조합원들이 지게 된다.

 

문제는 신협만의 일이 아니라는 데 있다. 유사한 구조를 가진 새마을금고, 농협, 수협 등 상호금융기관에서도 유사한 문제가 반복돼왔다. 특정인의 장기집권, 인사 전횡, 내부 통제 미비, 부실감사 등은 상호금융권 전반의 고질적 병폐다. 하지만 사회적 주목도는 낮고, 제도적 손질도 여전히 미진하다. 각 조직이 가진 특수성과 지방 기반의 폐쇄성이 오히려 개혁을 막고 있는 셈이다.

 

조직의 투명성과 책임성을 높이는 일은 한 번의 조치로 끝나지 않는다. 인사 시스템을 손보고, 권한을 나누고, 외부 감시를 제도화하는 과정은 고통스럽지만 반드시 필요하다. 협동조합은 이름만 협동이어선 안 된다. 조합원이 실질적인 권한을 갖고, 정보에 접근할 수 있어야 진짜 주인이 된다. 진짜 개혁은 권한을 나누는 것에서 출발한다. 신협은 과연 그 첫걸음을 뗄 준비가 돼 있는가.

 
류으뜸 사진
류으뜸 기자  awesome@wisdo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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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에 사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사는냐가 토론의 장이되야한다는 말씀 공감하며 중증발달장애인의 또다른 자립주택의 허상을 깨닫고 안전한 거주시설에서 자립적인 생활을 추구하여 인간다운 존엄을 유지할수있도록 거주시설어 선진화에 힘을 쏟을때라 생각합니다 충분한 돌봄이 가능하도록 돌봄인력충원과 시설선진화에 국가에서는 충분한 제도적 뒷받침을 해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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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설이 자립생활을 위한 기반이 되야합니다. 이를위해 전문인력이 배치되고, 장애인의 특성과 욕구를 반영한 프로그램이 운영되며, 지역사회와 연계된 지원체계가 마련되어야 합니다. 장애인이 보호받으면서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공간으로 거주시설을 개선하고 지원 되이야 가족도 지역사회에서도 안심할 수 있게 정책개발 및 지원 해야 한다는 김미애의원의 말씀에 감동받고 꼭 그렇게 되길 간절히 바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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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증발달장애인의 주거선택권을 보장하고 그들에게 필요한 지원을 바랍니다. 탈시설을 주장하시는 의원님들 시설이란 인권을 빼앗는 곳이라는 선입관과 잘못된 이해를 부추기지 마세요. 중중발달장애인을 위해 노화된 시설을 개선해 주세요. 또, 그들의 삶의 보금자리를 폐쇄한다는 등 위협을 하지 마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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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이 멀리 있어서 유트브로 시청했는데 시설장애인 부모로 장애인들이 시설이든 지역이든 가정이든 온전히 사회인으로 살수 있게 해줬으면 좋겠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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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시설 개념에 대해 페터 슈미트 카리타스 빈 총괄본부장은 유엔장애인권리협약에 게재된 탈시설화는 무조건적인 시설 폐쇄를 의미하지 않으며 장애인 인권 향상을 위한 주거 선택의 다양성을 강조하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으며, 미국의 경우 발달장애인의 거주 서비스는 의료적 도움이 필요한 경우, 도전적 행동이 있는 경우, 자립 지원이 필요한 경우 등 여러 거주 서비스 필요성에 의해 장기요양형 거주 시설부터 지역사회 내 자립홈까지 운영하고 있다. 이번 토론회를 통해 거주시설에서의 자립생활 목소리가 정책으로 연결되길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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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도 자기 삶을 결정하고 선택 할 귄리가 있습니다. 누가 그들의 삶을 대신 결정합니까? 시설에서 사느냐 지역사회에서 사느냐가 중요 한게 아니고 살고 싶은데서 필요한 지원을 받으며 살아야합니다. 개인의 선택과 의사가 존중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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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중증 발달장애인의 거주시설에서의 생활은 원가정을 떠나 공동체로의 자립을 한 것입니다. 거주시설은 지역사회에서 벗어나 있지 않습니다. 시설안과 밖에서 너무도 다양하게 활동합니다. 원가정이나 관리감독이 어려운 좁은 임대주택에서의 삶과 다른 모두가 함께 만들어가는 공동체야 말로 장애인의 삶의 질을 높이고 사회성이 향상되는 곳입니다. 그리고 가장 안전한 곳 입니다. 최중증발달장애인들이 아파트나 빌라에서 살아가기란 주변의 민원과 벌래 보듯한 따가운 시선 그리고 돌발행동으로 위험한 상황이 많이 일어나고 그때마다 늙고 힘없는 부모나 활동지원사는 대처할수 있는 여건이 안되고 심지어 경찰에 부탁을 해 봐도 뾰족한 수가 없는 것이 현실 입니다. 그러나 거주시설은 가장 전문성이 있는 종사자들의 사명과 사랑이 최중증발달장애인들을 웃게 만들고 비장애인들의 눈치를 안봐도 되고 외부활동도 단체가 움직이니 그만큼 보호 받을수 있습니다 . 예로 활동지원사가 최중증발달장애인을 하루 돌보고는 줄행랑을 쳤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