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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범죄 X-파일]“불륜 영상 있다” 찔러보기 사기, 모르는 척 걸어온 전화가 협박으로 바뀐다

입력 : 2026-05-08 10:00
[금융범죄 X-파일]“불륜 영상 있다” 찔러보기 사기, 모르는 척 걸어온 전화가 협박으로 바뀐다 생성형 AI(쳇GPT)의 도움을 받아 시각화하고 기자가 최종 검토 및 확인해 제작한 그래픽입니다. 그래픽에 포함된 데이터와 내용은 기자가 직접 취재한 결과물입니다.
 

[위즈경제] 류으뜸 기자 =“불륜 저지르는 영상 갖고 있습니다”라는 한 통의 전화는 사실 여부를 따지기 전에 피해자의 죄책감과 불안을 먼저 찌른다.

 

최근 모텔과 호텔, 주차장 주변 차량에 남겨진 비상연락망을 수집한 뒤 외도 영상을 갖고 있는 것처럼 협박하는 이른바 ‘찔러보기 사기’가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사기범은 실제 영상을 확보하지 않았더라도 피해자의 반응을 떠본다. 피해자가 당황하거나 약한 모습을 보이면 가족과 직장에 알리겠다고 압박한다. 범행의 핵심은 증거가 아니라 공포다.

 

◇ “혹시 찔리십니까?”… 무작위 전화로 약점 떠보는 수법

 

사기범은 모텔, 호텔, 주차장을 돌아다니며 차량 번호와 차종, 유리창에 적힌 비상연락처를 사진으로 저장한다. 이후 조용한 곳에서 전화를 건다. 첫마디는 대체로 모호하다. “어제 일 기억하시죠”, “영상 갖고 있습니다”, “가족에게 알려지면 곤란하지 않겠습니까” 같은 말로 피해자의 반응을 본다.

 

피해자가 “무슨 말이냐”고 강하게 부인하면 사기범은 다른 대상을 찾는다. 반대로 당황하거나 말을 흐리면 협박은 곧바로 구체화된다. 사기범은 “아내에게 보낼 수 있다”, “직장에 알려지면 일이 커진다”, “경찰에 신고하면 더 잃을 것이 많다”고 압박한다. 실제 외도 여부와 상관없이 피해자는 자신이 의심받을 상황 자체를 두려워한다.

 

◇ 카카오톡 프로필까지 뒤진다… 가족관계 파악해 압박

 

사기범은 전화번호를 확보한 뒤 카카오톡 연동을 시도한다. 프로필 사진, 상태 메시지, 스토리, 공개된 가족사진 등을 통해 피해자의 성별, 결혼 여부, 직업, 인간관계를 추정한다. 이 정보는 협박의 재료가 된다. “아내와 자식이 있는데 괜찮겠느냐”, “같이 일하는 사람도 알고 있다”는 식이다.

 

피해자가 실제로 모텔이나 숙박업소를 이용한 적이 있으면 공포는 더 커진다. 사기범은 그 사실을 알고 접근한 것처럼 말하지만, 상당수는 차량 연락처를 보고 무작위로 전화를 거는 방식이다. 피해자는 상대가 자신을 많이 알고 있다고 착각한다. 사기범은 바로 그 착각을 이용한다.

 

◇ “천만 원 보내라”… 첫 송금은 끝이 아니라 시작

 

사기범은 처음부터 큰돈을 요구한다. 피해자가 부담을 호소하면 금액을 낮추며 협상을 하는 척한다. “사정이 어렵다니 오천만 원으로 하자”, “천만 원만 보내면 영상을 폐기하겠다”는 식이다. 그러나 사기범과의 약속은 애초에 성립하지 않는다. 돈을 보내도 영상이 삭제됐다는 보장은 없다.

 

한 번 송금하면 협박은 더 노골화된다. 사기범은 피해자가 겁을 먹고 돈을 냈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이후 더 큰 금액을 요구하거나, 가족과 지인까지 언급하며 압박을 이어간다. 일부 피해자는 대출과 지인 차용까지 동원한 뒤에야 신고를 결심한다. 그때는 이미 경제적 피해와 정신적 피해가 함께 커진 뒤다.

 

◇ “영상 폐기해 달라”는 말 자체가 덫이 된다

 

피해자가 가장 흔히 하는 실수는 돈을 보낸 뒤 “약속대로 영상을 폐기해 달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이 말은 사기범에게 피해자가 이미 심리적으로 무너졌다는 신호가 된다. 사기범은 “내일 다시 통화하자”, “보낸 돈으로 술 마시고 생각해 보겠다”며 시간을 끈다. 약속을 어기면서도 더 큰 협박을 준비한다.

 

사기범은 대포폰과 대포통장을 쓰는 경우가 많다. 자신의 신원이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도 알고 있다. 피해자가 신고를 망설일수록 사기범은 더 대담해진다. 외도 여부와 무관하게, 돈을 보내는 순간 피해자는 협박의 표적에서 ‘돈이 되는 표적’으로 바뀐다.

 

◇ “찔릴 때 반응하지 말라”… 가장 확실한 대응은 차단과 신고

 

예방법은 단순하지만 단호해야 한다. 모르는 번호로 외도 영상, 불륜 증거, 가족 유포 등을 언급하며 돈을 요구하면 대화를 이어가선 안 된다. 상대가 내 정보를 많이 아는 것처럼 말해도 대부분은 공개 정보와 차량 연락처를 조합한 위협이다. 돈을 보내면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협박이 반복된다.

 

피해자는 통화 녹음, 문자, 계좌번호, 카카오톡 대화, 발신번호를 보존해야 한다. 이후 즉시 경찰에 신고하고, 가족이나 배우자에게도 먼저 사실을 알리는 것이 피해를 줄이는 길이다. 숨기려는 마음은 사기범의 무기가 된다. 사실을 공개하고 도움을 요청하는 순간 협박의 힘은 약해진다.

 

찔러보기 사기는 죄책감과 수치심을 먹고 자라는 범죄다. 실제 잘못이 있든 없든 협박범에게 돈을 주는 것은 해결책이 아니다. 지켜야 할 것은 체면이 아니라 피해 확산을 막는 판단이다. 낯선 전화가 약점을 찌를 때 필요한 것은 해명이 아니라 차단과 신고다.

 

본 기사는 이기동 한국금융범죄예방연구센터 소장의 저서 『범죄의 심리학』을 참고해 작성됐습니다.

 
류으뜸 사진
류으뜸 기자  awesome@wisdo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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