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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 사회의 구조] ⑨아이들도 사기의 표적이 됐다

▷‘디지털 네이티브’는 안전하다는 착각
▷보호받지 못한 채 시장으로 내던져진 세대

입력 : 2026.01.29 09:00 수정 : 2026.01.29 10:05
[사기 사회의 구조] ⑨아이들도 사기의 표적이 됐다 (일러스트=챗GPT로 생성된 이미지)
 

[위즈경제] 조중환 기자 = 사기 범죄를 이야기할 때 청소년은 오랫동안 논외였다. “아이들은 돈이 없다”, “디지털에 익숙하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이 전제는 빠르게 무너지고 있다. 오늘날 청소년은 결제 수단을 갖고 있고, 플랫폼을 통해 거래하며, 사회적 관계를 디지털 공간에서 형성한다. 사기범이 보기에 이들은 충분히 접근 가능하고, 충분히 설득 가능한 대상이다.

 

문제는 사회가 이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청소년을 보호의 주체로 보지 않은 채, 디지털 시장의 일원으로 방치한 결과 사기 범죄의 위험은 세대 아래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 ‘디지털에 익숙하다’는 말이 만든 방심

 

청소년은 흔히 ‘디지털 네이티브’로 불린다. 스마트폰과 플랫폼에 익숙하고, 정보 탐색 능력이 뛰어나다는 평가다. 그러나 이 익숙함은 위험을 인식하고 회피할 능력과는 별개다. 사기범은 기술을 속이지 않는다. 사람을 속인다.

 

사기 수법은 이미 ‘어른용’과 ‘아이용’으로 세분화됐다. 게임 아이템 거래, 중고 거래, SNS 계정 연동, 온라인 이벤트 참여를 가장한 접근은 청소년의 일상과 정확히 맞물린다. 대화는 가볍게 시작되고, 신뢰는 빠르게 형성된다. 이 과정에서 청소년은 자신이 범죄의 표적이 되고 있다는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한다.

 

◇ 보호 공백 속에 놓인 디지털 취약계층

 

청소년만의 문제도 아니다. 디지털 환경에 익숙하지 않거나, 사회적 고립 상태에 놓인 취약계층 역시 사기의 주요 표적이 되고 있다. 이들은 플랫폼의 규칙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거나, 도움을 요청할 네트워크가 부족하다. 사기범은 이 약점을 정확히 파고든다.

 

문제는 제도가 여전히 ‘성인·자기 책임’ 모델에 머물러 있다는 점이다. 미성년자의 경우 보호자 책임으로, 취약계층의 경우 개인 판단의 문제로 환원된다. 그러나 사기 범죄는 개인의 판단만으로 예방할 수 있는 수준을 이미 넘어섰다.

 

◇ 청소년 피해는 왜 통계에서 사라지는가

 

청소년 사기 피해는 공식 통계에 온전히 드러나지 않는다. 신고율이 낮고, 사건이 축소되거나 내부적으로 처리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보호자는 문제를 키우고 싶어 하지 않고, 학교는 사건화를 부담스러워한다. 그 결과 피해는 기록되지 않고, 존재하지 않았던 일처럼 처리된다.

 

이 구조는 위험하다. 통계에 잡히지 않는 문제는 정책의 우선순위에서 밀린다. 보호 장치는 마련되지 않고, 사기범은 더 과감해진다. 보이지 않는 피해는 반복되고, 축적된다.

 

◇ 플랫폼은 알고도 모른 척한다

 

청소년과 취약계층이 주로 활동하는 공간은 대부분 플랫폼이다. 플랫폼은 사용자 연령, 행동 패턴, 거래 흐름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주체다. 그럼에도 플랫폼의 대응은 제한적이다. 법적 책임이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다.

 

플랫폼은 종종 “사후 신고가 가능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청소년에게 사후 신고는 현실적인 대안이 아니다. 이미 관계가 형성됐고, 심리적 위축이 크며, 도움을 요청하는 것 자체가 부담이다. 플랫폼의 소극적 태도는 결과적으로 가장 취약한 이용자에게 가장 가혹한 환경을 만든다. 


한국 부모(자녀 7~17세) 가운데 14%가 “자녀가 최소 1회 이상 사기를 겪었다”고 응답했다.(자료 GASA, 2025)
 

 

◇ ‘교육’만으로는 막을 수 없다

 

사기 예방의 해법으로 가장 자주 등장하는 말은 ‘교육’이다.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교육만으로는 한계가 명확하다. 사기범은 교육 내용을 회피하는 방식으로 진화한다. 규칙을 알려주면, 규칙 바깥에서 접근한다.

 

필요한 것은 교육과 함께 구조적 보호 장치다. 청소년과 취약계층이 활동하는 영역에서는 접근 자체를 제한하고, 위험 신호를 조기에 차단하며, 피해 발생 시 즉각 개입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이를 개인의 주의에만 맡기는 것은 사실상 방치에 가깝다.

 

◇ 사기 범죄의 미래는 이미 시작됐다

 

사기 범죄는 늘 가장 약한 고리를 찾는다. 과거에는 고령층이었고, 이후에는 금융 이해도가 낮은 계층이었다. 이제 그 고리는 청소년과 디지털 취약계층으로 이동하고 있다. 이 변화는 우연이 아니다. 보호 공백이 존재하는 곳으로 범죄는 이동한다.

 

이 흐름을 막지 못한다면, 사기 범죄는 한 세대 아래로 더 깊이 뿌리내릴 것이다. 그때는 ‘피해 예방’이 아니라 ‘피해 관리’의 문제가 된다.

 

◇ 보호하지 않으면서 책임만 묻는 사회

 

청소년이 사기를 당했을 때 사회는 쉽게 말한다. “조심했어야지.” 그러나 조심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지 않은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디지털 시장에 청소년을 참여시켰다면, 그에 걸맞은 보호 장치도 함께 제공했어야 한다. 그 책임을 외면한 채 개인의 판단만을 요구하는 사회는, 결국 가장 약한 구성원에게 가장 큰 대가를 치르게 한다.

 

다음 편에서는 사기 범죄 대응의 마지막 질문으로 향한다. 우리는 이 구조를 바꿀 수 있는가, 그리고 어디서부터 바꿔야 하는가를 짚는다.

이 연재의 결론이자, 출발점이 될 이야기다.

 

이 기획은 Global Anti-Scam Alliance(GASA)가 2025년 발표한 ‘State of Scams in South Korea 2025’ 보고서를 분석의 출발점으로 삼았다. 해당 보고서는 전국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한국 사회에서 사기 범죄가 얼마나 일상화·구조화되어 있는지를 수치로 보여준다.


위즈경제는 이 데이터를 단순 소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사기 범죄가 개인의 부주의 문제가 아닌 사회적 위험 시스템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누가 피해자가 되었는지보다, 왜 누구나 피해자가 될 수밖에 없는 구조가 만들어졌는지, 그리고 그 책임은 어디에 있는지를 묻고자 한다.[편집자주]

 
조중환 사진
조중환 기자  highest@wisdo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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