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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좋아한다 한 적 없는데 로맨스 스캠?"...사각지대 놓인 신종 금융사기에 두 번 우는 피해자

▷'영국 의사' 사칭한 치밀한 비지니스 빙자 사기...수가 기관은 '감정 문제'로 축소
▷"지급정지 골든타임 놓치고 의심 계좌 제보 묵살...피해액 적으면 수사도 뒷전인가" 울분
▷사기 사이트 도메인·계좌 활보하는데 선제 조치는 無... 가해자들은 지금도 ‘추가 범행 중’
▷‘감정 착취형 금융사기’로 재규정 시급... 계좌 동결·디지털 증거 보존 의무화해야

입력 : 2026.01.18 09:00 수정 : 2026.01.16 18:03
[인터뷰] "좋아한다 한 적 없는데 로맨스 스캠?"...사각지대 놓인 신종 금융사기에 두 번 우는 피해자 ‘영국 의사’를 사칭한 인물이 사용한 프로필 사진(왼쪽)과 피해자와 주고받은 메신저 대화 내용 일부. 사진=제보자
 

[위즈경제] 류으뜸 기자 =“로맨스 스캠이라는 오명과 수사 지연이라는 이중고를 겪는 피해자는 어디서 도움을 받아야 하나"

 

지난 16일 위즈경제와의 인터뷰에서 ‘로맨스 스캠 분류 사건’의 피해자 김 씨는 이같이 반문하며 울분을 터뜨렸다. 사건의 본질과 맞지 않는 분류로 고통받는 와중에, 피해 금액이 적다는 이유로 수사마저 우선순위에서 밀려 지연되고 있는 현실을 지적한 것이다.

 

◇비즈니스 조력을 악용한 정교한 ‘피싱’… 끈질긴 추가 송금 요구까지

 


신뢰를 쌓은 뒤 금융정보 제공을 미끼로 이체를 맡기는 전형적 ‘감정 착취형’ 사기 수법이 드러난 대화 내용. 사진=제보자
 

김 씨가 겪은 사건의 내막은 이렇다. 최근 업무상 알게 된 ‘영국 의사’는 본인의 조기 퇴직 신청을 도와달라며 김 씨에게 자신의 영국 은행 로그인 정보와 비밀번호까지 서슴없이 알려줬다. 그는 폭격으로 인해 몸이 불편해 직접 인터넷 뱅킹을 하기 어렵다며, 김 씨가 직접 영국 은행 URL에 접속해 이체를 도와줄 것을 간곡히 요청했다. 김씨는 상대가 보낸 계좌번호로 10,000파운드(약 2,000만 원)를 송금했다. 

 

사건은 이튿날 더 대담해졌다.  상대는 퇴직 승인에 따른 군용 비행기 티켓비 20,000파운드(약 4,000만 원)를 추가로 요구하며 또다시 영국 은행 접속을 유도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자동이체가 실행되지 않았다. 영국 은행 고객센터를 사칭한 채팅창은 "타지역 접속 규정 위반으로 계좌가 제한됐다"며, 이를 풀기 위해 범칙금 5,370파운드(한화 약 1,000만 원)가 필요하다는 내용이 왔다. 

 


영국 은행을 사칭한 고객 문의 관련 채팅방에서 피싱  ‘COT 코드(송금 수수료)’ 명목으로 19,800파운드(약 3,690만원) 추가 입금을 요구하는 화면. 사진=제보자
 

김 씨는 "돈은 반드시 돌려줄 테니 계좌 문제부터 해결해달라"는 상대의 애원에 결국 친구를 통해 1,000만 원을 송금했다. 하지만 입금 후 다음날 이번에는 ‘COT 코드(송금 수수료)’ 명목으로 19,800파운드(한화 약 3,690만 원)를 추가 입금하라는 덫이 기다리고 있었다. 다행히 현장에서 이를 지켜본 아내의 신고로 경찰관들이 출동하며 추가 송금은 가까스로 중단될 수 있었다.

 

현재까지도 영국의사라고 본인을 지칭한 인물은 선입금하면 나중에 모두 갚아주겠다”고 회유하며, 신분증 사진을 찍어 보낼 경우 입금을 도와주겠다고 집요하게 종용하고 있다. 현재 김 씨는 경찰의 도움을 받아 모든 협조를 중단한 상태다.

 

◇연애도 아닌데 로맨스 스캠?…분류부터 납득 어려워

 

문제는 사건이 ‘로맨스 스캠’으로 굳어지는 순간부터 시작됐다고 김씨는 주장했다. 김씨는 “처음부터 상대를 연인으로 인식한 적이 없다. ‘사랑한다’는 말도 한 적이 없다”며 “그런데 사건이 ‘로맨스 스캠’으로 분류되면서 본질이 국제금융 사기에서 감정 문제로 축소되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김씨는 “왜 로맨스 스캠으로 분류됐는지, 어떤 기준과 절차로 분류가 이뤄졌는지 설명을 들은 적이 없다”고 덧붙였다.

 

김씨에 따르면 사건은 2025년 9월 26일 경기남부권 경찰서에 접수된 뒤 다른 경찰서로 이관됐다. 이후 배당된 수사관에게 수차례 진행 상황을 문의했지만 “수사 중”이라는 답만 반복적으로 들었다고 했다. 김씨는 “처리 완료 예정일이 지났는데도 달라진 게 없었다”며 “이관 뒤에는 수사 진행을 구체적으로 안내받은 적도 거의 없다”고 주장했다.

 

◇"지지부진한 대응으로 '골든타임' 놓쳐...추가피해 차단할 기회 무산돼"

 


(일러스트=챗GPT로 생성된 이미지)
 

이러한 수사 기관의 지지부진한 대응은 결과적으로 피해 회복을 위한 ‘골든타임’을 놓치는 결과로 이어졌다. 김 씨는 지난 9월 24일 이체 형태로 송금이 진행된 직후, 곧바로 거래 은행에 지급정지를 요청했다. 경찰 수사 과정에서도 해당 요청 사실이 확인됐다는 취지의 설명을 들었지만, 실제 자금 동결이나 환수 조치는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김 씨는 “수사가 지연되어 조치를 못 했다는 말을 들었는데, 피해 직후가 가장 중요한 시간 아니냐”고 반문하며 울분을 토했다.

 

추가 피해를 차단할 기회마저 무산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상대 측이 ‘COT 코드 수수료’ 명목으로 거액을 추가 요구하며 새로운 계좌를 제시했을 때, 김 씨는 이 계좌가 범죄에 악용될 수 있다며 경찰에 제보했다. 그러나 돌아온 답변은 “해당 계좌로 실제 피해가 확인되지 않았다”는 소극적인 반응뿐이었다. 사기에 이용된 사이트 도메인 역시 즉시 차단되지 않았다.

 

김 씨는 “피해가 발생한 뒤에만 움직이면 이미 늦다. 의심 정황이 뚜렷하다면 선제적으로 계좌와 사이트를 들여다봐야 하는 것 아니냐”고 꼬집었다.

 

결국 사건이 '로맨스 스캠'이라는 틀에 갇히고 수사가 우선순위에서 밀리는 사이, 가해자들은 버젓이 추가 범행을 이어가고 있다는 것이 피해자의 주장이다.

 

◇“피해금 1억원 기준”…작은 피해는 뒤로 밀리나

 


사칭 사이트 도메인이 신고 뒤에도 사라지지 않은 채 노출된 모습. 피해자는 “조치가 지연되는 사이 가해자들이 추가 범행을 이어갈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다 사진=제보자/편집=위즈경제
 

김씨는 경기남부경찰청 청문감사인권담당관 관련 민원 처리 통지 내용을 근거로 “피해금이 1억원 이상일 때 전담팀 수사가 이뤄진다는 취지의 문구를 확인했다”고 주장했다. 김씨는 “수사관은 그렇지 않다고 말했지만, 현장에서는 진척이 없었다. 금액이 작아서 밀리는 것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든다”고 말했다.

 

김씨는 피해금 규모와 무관한 신속 수사를 요구했다. “1천만원도 누군가에게는 생계를 흔드는 돈이다. 사건이 지연돼도 담당자 누구도 책임을 지지 않는 구조가 반복 범죄를 키운다”고 했다. 이어 “내가 원하는 건 과장된 약속이 아니다. 왜 로맨스 스캠으로 분류됐는지, 해외 신원 확인과 계좌 추적을 실제로 했는지, 어느 단계에 있는지 납득 가능한 설명과 기록”이라고 말했다.

 

김씨는 대안도 제시했다. 로맨스 스캠을 ‘감정 착취형 금융사기’로 명확히 규정해 분류 단계부터 계좌 차단·증거 보존·피해자 통지 절차가 자동으로 붙도록 제도화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러면서 “수사기관이 ‘수사 중’이라는 말 대신, 확인한 사실과 남은 절차를 구체적으로 통지하는 최소한의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류으뜸 사진
류으뜸 기자  awesome@wisdo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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