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인터뷰] 한국사기예방국민회 "사기꾼 사라질 때까지"...법원 앞에서 버틴 세 번의 겨울
서울중앙지방법원 근처 정곡빌딩 동관 앞 인도에 위치한 한국사기예방국민회 천막. 김주연 대표와 농성 참가자가 자리에 앉아 있다. 사진=위즈경제
[위즈경제] 류으뜸 기자 =서울중앙지방법원 근처 정곡빌딩 동관 앞 인도. 사람들이 무심히 지나치는 인도 위에 천막 하나가 보인다. 천막 앞 손때와 비닐 풍화로 곳곳이 닳아 있는 피켓에는 '다단계 사기꾼, 다시는 대한민국에서 사기 못 치게 종신형 촉구한다’, ‘와콘 주범, 수많은 아이템으로 반복 사기. 강력처벌로 끝내야 민생이 다시 시작된다' 등 글씨가 적혀있다. 문장 하나하나에 천막을 지키는 이들의 절박함과 분노가 고스란히 베어 있다.
천막 안에는 바람 막을 장치 하나 없이 그대로 외기에 노출된 채 두꺼운 패딩과 모자, 담요에 의지해 버티는 이들이 있다. 그들은 자신들을 '한국사기예방국민회' 소속 사기 피해자들이라고 소개했다.
겨울바람이 몰아치는 인도 위에서 이들은 왜 천막을 치고 피켓을 들고 있는 걸까. 위즈경제는 지난 10일 현장을 찾아 그들의 목소리를 직접 들었다.
한국사기예방국민회는 2023년 8월부터 김주연 한국사기예방국민회 대표를 중심으로 아도인터네셔설 피해자들이 주축이 되어 만든 시민단체다. 이들은 단순한 연대나 위로를 넘어 피해자도 사회를 바꿀 수 있다는 점을 증명하겠다며 뜻을 모았다. 지난해 3월 동작 국립현충원에서 발대식을 했으며 사기예방 활동, 피해자 상담, 조직사기범죄 특별법 제정 등 입법 운동까지 활동 폭을 넓혀가고 있다. 지난해 기준 회원 수는 1만 2555명을 넘겼다.
"저희는 현충원에서 발대식을 했어요. 그분들은 목숨 바쳐 나라를 지켰잖아요. 저희는 목숨까지는 아니더라도 우리나라를 사기꾼 손에서 구하겠다는 마음으로 시작했어요. 순국선열들의 정신을 따라가는 마음이었습니다" -김주연 한국사기예방국민회 대표-
◇천막 지키고 현수막 확인하러 달린 하루..."행동이 변화 만들어"
김 대표를 포함한 농성 참가자들은 얼마 전까지도 24시간 내내 이곳을 지켰다. 이들은 아침과 점심에 시위를 벌였고 오후에도 다시 거리로 나섰다. 새벽엔 라꾸라꾸 침대(접이식 침대) 하나에 의지해 잠을 청하며 현장을 지켰다. 김 대표가 "피해자 단체 중 우리처럼 활동한 곳은 없없다. 새 역사를 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말한 배경이다.
최근에야 농성 운영이 겨우 3교대로 전환됐지만 이들의 하루가 한가해진 건 아니다. 기자가 현장을 찾은 날에도 이들은 어김없이 서울중앙지방법원 일대를 오갔다. 동문을 비롯해 서울중앙지방검찰청과 대검찰청 사이를 수차례 왕복했다. 인근에 걸어둔 현수막을 구청이 확인하러 온다는 소식이 전해져서다. 현장에 사람이 없으면 현수막이 철거될 수 있어 급히 길을 나섰다고 했다. 이날 김 대표와 허리가 굽어 거동이 힘든 농성 참가자가 구청 직원의 확인 방문을 직접 맞이하며 '현장 인증'을 이어갔다.
"지나가는 판사님들이 단 한 번만이라도 현수막을 보고 우리의 억울한 사연을 알아줬으면 하는 마음이 컸죠. 피해자가 돈이 없어도 움직이고 하나로 뭉치면 결과를 만들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김주연 한국사기예방국민회 대표-


◇이들이 3년 넘게 천막농성을 하게 된 이유
이들이 여기서 3년 넘도록 천막농성을 하게 된 이유는 명확하다. 보이스피싱, 다단계, 폰지사기 등 갈수록 정교해지는 사기범죄에 속수무책으로 당한 이들에게 "왜 조심하지 않았냐"는 말을 하는 사회에 경종을 울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는 신호등도 횡단보도도 없는 도로에서 사고가 났다고 피해자에게만 책임을 묻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봤다.
교통사고가 일어날 환경을 없애면 사고 자체가 줄어들듯이 사기가 발생할 수 없는 구조를 만들어달라는 입장이다. 단속과 처벌만으로 한계가 분명한 만큼 사기꾼이 발붙일 틈을 원천적으로 막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기꾼들은 전관예우 변호사나 대형 로펌을 쓰며 돈과 힘으로 버티지만 피해자는 그럴 여력이 없어요. 사기는 앞으로 계속해서 더 늘어날 것이고 우리 자녀들도 언제든 당할 수 있어요. 그래서 반드시 법을 만들어 사기꾼을 박멸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합니다" -김주연 한국사기예방국민회 대표-
이들의 투쟁은 의미없는 외침으로 남지 않았다. 최근 아도인터네셔설 사건이 대표적인 예다. 지난 5월 대법원이 4500억원 규모의 다단계 유사수신 사기 사건으로 기소된 아도인터내셔설 대표 이모씨에게 징역 15년을 확정하면서 조직형 사기 사건에서도 무거운 책임을 물을 수 있다는 선례가 만들어진 것이다. 이듬해 12월 같은 혐의로 기소돼 2년을 더 선고받아 총 17년 확정선고를 받았다.
이런 결과는 저절로 나온 게 아니다. 법원 앞 천막을 지키며 3년 넘게 이어온 투쟁이 사건을 공론화했고 수사와 재판을 끝까지 밀어붙이는 동력이 됐다.
"한번은 법원 관계자가 우리 천막을 찾아 피해자들이 이렇게까지 나서는 건 처음이라고 했죠. 세 번의 겨울을 나면서도 물러서지 않은 피해자들이 피나는 고생을 견뎌낸 덕분이라고 생각해요" -김주연 한국사기예방국민회 대표-
★아도인터네셔설 사건
'반품 물건을 되팔아 200% 수익'을 미끼로 투자자 약 3만 6000명으로부터 약 4467억 원대 유사수신(폰지사기)를 저지른 조직사기 사건이다.
◇"사기꾼이 사라져 희망을 말할 수 있을 때까지 법원 떠나지 않아"
한국사기예방국민회의 비전과 목표는 '조직사기범죄 처벌 특별법 제정'으로 압축된다. 조직사기범죄 처벌 특별법에는 △조직사기 가중처벌 △특별수사본부 설치 △피해자 배상명령 100% 인용 △은닉 재산 환수 강제 등 내용이 담겨있다. 최근 관련법 제정을 위한 1차 공청회가 열렸다. 이를 바탕으로 내년 초에는 해당 법안이 국회에서 정식 발의 될 예정이다.
두번째는 단체의 법인화다. 김 대표는 현재 임의단체인 한국사기예방국민회를 사단 법인으로 전환해 향후 기부단체로 성장시켜 고령 피해자들의 일자리와 회복을 돕겠다는 구상도 밝혔다. 사기 피해가 극단적 선택으로 이어지는 현실을 막기 위해 예방과 보호를 함께 갖춘 제도적 안전망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김 대표는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을 묻자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우리는 한 두명이 아니라 사기에 무너진 수십만 피해자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있다고 믿습니다. 법이 바뀌고, 사기꾼이 사라져 피해자가 없어질 떄까지 그리고 다시 희망을 말할 수 있을 때까지 여기 법원 앞을 떠나지 않을 겁니다" -김주연 한국사기예방국민회 대표-
국가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현실에서, 이들은 더 이상 침묵하지 않기로 했다. 사기 피해자도 싸울 수 있다는 것을, 피해자가 무기력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오늘도 거리에 선다. 그들의 목소리에는 단순한 분노가 아닌, 이 사회가 반드시 바뀌어야 할 이유가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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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으뜸기자님,우리 피해자들의 마음을 헤아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사기피해는 단순한 경제적 손실을 넘어 가정 붕괴,극단적 선택,사회불신 확대로 이어지는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었고, 현행 법체계로는 이 거대한 범죄구조를 제때 막이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조직사기특별법은 피해자 구조와 재발 방지를 위해 반드시 제정되어야 합니다!
2사기꾼과모집책 사회와격리 시켜야합니다
3피해자들의 원금을 돌 려 주세요
4모집책들도 하루속히 구속하여 중형 으로 다스려야 합니다
5한국사기예방국민회 김대표님이하 집행부의 노고가 많으십니다 감사합니다.
6사기피해자들의 피눈물을 닦아주세요
7조직사기특별법제정해서 조직사기 차단해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