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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스피싱 대응, ‘신고 후 차단’에서 ‘사전 봉쇄’로

▷SKT AI 필터링 11억 건·경찰 10분 내 번호 차단
▷통신망이 최전선…기술·제도 결합 효과 가시화

입력 : 2026.01.13 13:30 수정 : 2026.01.13 13:46
보이스피싱 대응, ‘신고 후 차단’에서 ‘사전 봉쇄’로 (일러스트=챗GPT로 생성된 이미지)
 

[위즈경제] 김영진 기자 = 보이스피싱과 불법 스팸 범죄가 해마다 진화하며 국민 일상에 구조적 위협으로 자리 잡는 가운데, 통신망을 중심으로 한 대응 체계가 빠르게 전환되고 있다. 과거 범죄 발생 이후 신고와 수사에 의존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AI를 활용한 선제 차단과 분 단위 긴급 대응이 핵심 전략으로 떠오르고 있다. 통신사의 기술 고도화, 경찰의 신속 차단 제도, 정부의 스팸 규제가 맞물리며 보이스피싱 대응의 무게중심이 ‘사후 처리’에서 ‘사전 봉쇄’로 이동하는 모습이다.

 

◇ AI가 먼저 걸러낸다…SKT, 통신사기 시도 11억 건 선제 차단

 

SK텔레콤은 13일 2025년 한 해 동안 음성 스팸·보이스피싱 통화와 문자 등 각종 통신 사기 시도 약 11억 건을 선제적으로 차단했다고 밝혔다. 이는 전년 대비 35% 증가한 수치로, AI 기술을 스팸·피싱 대응 업무 전반에 적극 도입한 결과다.

 

 

인포그래픽=SKT

특히 눈에 띄는 변화는 ‘신고 이전 단계’에서의 차단 비중 확대다. 기존에는 이용자 신고나 관계기관 통보 이후 번호 차단이 이뤄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지만, SKT는 통화 빈도, 발신 패턴, 시간대, 과거 이력 등을 종합 분석하는 통화 패턴 기반 AI 모델을 도입해 보이스피싱 의심 번호를 사전에 탐지했다.

 

이를 통해 2025년 한 해 동안 차단된 음성 스팸·보이스피싱 통화는 2억 5천만 건으로 전년 대비 119% 증가, 문자 차단은 8억 5천만 건으로 22% 증가했다. 단순 차단 건수 확대를 넘어, 범죄 시도가 이용자에게 도달하기 전 통신망 단계에서 차단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SKT는 자체 개발한 AI 기반 금융사기 탐지 기술 ‘스캠뱅가드’를 PASS 앱의 미끼문자 알림 서비스와 에이닷 전화의 AI 안심차단 기능에 적용했다. 해당 기술은 금융기관·공공기관·지인 사칭 등 주요 보이스피싱 유형을 분석해 위험 신호를 감지하고, 통화 전후는 물론 통화 중에도 경고를 제공한다. 특히 에이닷 전화는 통화 도중 위험 징후가 포착될 경우 팝업과 알림음으로 즉각 안내해 이용자의 판단을 돕는다.

 

보이스피싱 범죄가 짧은 시간 안에 심리적 압박을 가해 판단력을 흐리는 방식으로 이뤄진다는 점에서, 실시간 개입형 기술의 중요성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는 평가다.

 

◇ 범죄 이용 번호, 이제 10분이면 막는다…경찰·통신사 ‘속도전’ 공조

 

AI 기반 선제 차단과 함께, 경찰청이 도입한 ‘10분 내 긴급차단 제도’는 보이스피싱 대응의 또 다른 축이다. 경찰청 전기통신금융사기 통합대응단은 통신 3사(SKT·KT·LG유플러스), 삼성전자와 협력해 보이스피싱 등 범죄에 이용된 전화번호를 최대 10분 이내 차단하는 체계를 지난해 11월부터 시행했다.

 

 

이미지 = 경찰청 전기통신금융사기 통합대응단

 

기존에는 범죄 번호가 신고되더라도 '전기통신사업법'에 따른 이용 중지까지 평균 2일 이상이 소요됐다. 그러나 경찰에 따르면 보이스피싱 범죄의 약 75%가 최초 미끼 문자나 전화 수신 후 24시간 이내 발생한다. 신고와 차단 사이의 시간 지연이 사실상 범죄자에게 유리하게 작용해 왔다는 지적이다.

 

새 제도에서는 이용자가 스마트폰 간편제보 기능이나 통합대응단 누리집을 통해 의심 번호를 신고하면, 통합대응단이 이를 분석해 범죄 연관성이 높다고 판단될 경우 통신사에 즉시 차단을 요청한다. 해당 번호는 최소 7일간 임시 차단되며, 추가 분석을 거쳐 완전 이용 중지로 이어진다.

 

시범 운영 결과는 제도의 실효성을 보여준다. 약 3주간 접수된 14만5천여 건의 제보 중 실제 범죄 연관성이 확인된 5,249개 번호가 차단됐다. 특히 대출빙자형 보이스피싱 통화를 실시간 모니터링하던 중 해당 번호가 차단되며, 범죄자와 피해자 간 통화가 즉시 종료돼 실제 피해를 막은 사례도 확인됐다.

 

경찰은 “긴급차단 제도는 국민의 적극적인 제보가 전제될수록 효과가 커진다”며, 동시에 오인 신고로 인한 피해를 막기 위해 오차단 방지 기준과 모니터링도 병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 문자스팸은 줄었지만 음성 피싱은 증가…대응의 초점이 바뀐다

 

정부 차원의 불법스팸 방지 정책 성과도 통계로 확인된다. 방송통신위원회와 한국인터넷진흥원이 발표한 ‘2025년 상반기 스팸 유통현황’에 따르면, 국민 1인당 월평균 문자스팸 수신량은 3.04통으로 집계됐다. 이는 전년 동기 대비 약 74% 감소한 수치로, 최근 5년 내 최저 수준이다. 전체 문자·음성·이메일 스팸 신고·탐지 건수도 전년 대비 80% 이상 줄었다.

 

반면 음성 스팸은 증가세를 보였다. 월평균 음성 스팸 수신량은 2.13통으로 전반기 대비 39% 늘었으며, 주요 유형은 금융 투자 유도와 불법 대출로 나타났다. 문자 중심 규제가 강화되자 범죄 수법이 통화 중심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2025년 상반기 스팸 유통현황 주요 통계(이미지=한국인터넷진흥원)

이는 스팸 대응의 초점이 ‘문자 차단’에서 ‘통화 대응’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지표다. 문자와 달리 음성 통화는 실시간 응대 과정에서 범죄가 완성되는 구조이기 때문에, AI 분석·통화 중 경고·즉시 차단이 결합되지 않으면 피해 예방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기술은 빠르게 진화하고 있지만, 보이스피싱 대응의 과제가 모두 해결된 것은 아니다. 차단 속도와 정확도가 높아질수록 오차단 최소화와 이용자 불편 관리, 그리고 피해 발생 이후의 구제 체계 정비라는 과제가 동시에 제기된다.

 

실제 현장에서는 보이스피싱을 비롯한 사기 범죄가 ‘막는 것’보다 ‘책임을 묻는 것’에서 번번이 막히고 있다는 비판이 반복된다. 번호 차단과 통화 경고는 강화됐지만, 피해가 발생했을 경우 금융기관·플랫폼·통신사의 책임은 여전히 제한적이며, 피해 회복은 개인의 몫으로 남는 구조가 고착화돼 있다는 것이다.

 

AI 필터링과 10분 긴급차단이 보이스피싱 대응의 전환점으로 평가받기 위해서는, 단순한 차단 실적을 넘어 책임 구조와 사후 구제까지 연결되는 제도적 보완이 병행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기술은 빨라졌지만, 그 속도가 피해자의 회복으로 이어지고 있는지에 대한 점검은 여전히 남아 있다.

 
김영진 사진
김영진 기자  jean@wisdo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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