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마크 Link 인쇄 글자크기

글자크기 설정

글자크기 설정 시 다른 기사의 본문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기자수첩] 책임은 끝까지 피해자의 몫인가

입력 : 2025.11.28 20:37 수정 : 2025.11.28 20:38
[기자수첩] 책임은 끝까지 피해자의 몫인가 팩토링 금융구조. 출처=결제전산원
 

[위즈경제] 류으뜸 기자 ="렌탈 계약인 줄 알았는데 어느 날 갑자기 채무자가 됐습니다"

 

피해자들의 진술은 하나같이 비슷했다. 사라진 렌탈사, 남겨진 채무, 그리고 책임을 회피하는 금융기관. 이 모든 과정에 공통적으로 등장한 건 바로 '제도적 방임'이다.

 

사건의 구조는 단순하다. 일부 렌탈사가 정부 지원을 내세워 소상공인에게 계약을 유도하고, 계약 성사 직후 해당 채권을 금융사에 양도해 선지급금을 챙긴 뒤 잠적한다. 이후 금융사는 소비자에게 채권을 회수하려 들고, 피해자는 수천만 원의 빚과 함께 법정에 선다. 사라진 건 렌탈사고, 남겨진 건 채무뿐이다.

 

이번 사태는 렌탈사 개인의 일탈이 아니다. 계약 당시 대부분의 피해자들은 팩토링 구조를 인지하지 못했고, 실제 계약서 어디에도 구조적 금융상품이라는 명시는 없었다. 그럼에도 금융기관은 '서명했으니 알았을 것'이라며 계약의 유효성을 주장한다. 법은 서명이 곧 동의라고 말하지만, 그 서명에 이르게 만든 과정의 정당성을 묻는 이는 없다.

 

더 큰 문제는 그 뒤에 있다. 렌탈 계약이라는 외형 속에 감춰진 이 금융 사기는 수년째 반복되고 있다. 이미 유사한 사건들이 과거에도 발생했고, 같은 캐피탈사가 동일 구조로 채권을 매입한 사례도 확인됐다. 그런데도 이 구조는 여전히 유지되고 있고, 피해자는 늘고 있다.

 

이유는 단 하나다. 구조가 사기를 가능하게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사는 대개 렌탈 신용보험이라는 장치를 이용해 채권 리스크를 회피한다. 보험이 있기에 손해는 없다. 이 덕에 금융사는 실질적인 검증도 없이 채권을 사들인다. 서류만 맞으면 통과, 현장 점검도 없이 수십, 수백 건의 계약이 이뤄진다. 결과적으로 '위험한 금융상품'이 단 한 번의 실사 없이 유통되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이 구조를 바꾸려는 노력은 보이지 않는다. 금융사는 “우리는 단지 채권을 양수한 제3자일 뿐”이라며 책임을 부인하고, 금융당국은 “법적 분쟁은 민사로 해결하라”며 물러선다. 결국 피해자는 소송의 전면에 나서야 하지만 현실은 그조차 어렵다. 억대 채무를 안고도 법적 대응을 포기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소송 비용이 더 들고, 패소하면 가압류로 생계가 위협받기 때문이다.

 

전국적으로 추산되는 피해자는 약 2천여 명. 그러나 이는 금융사가 채권을 신용정보사에 넘긴 건수에 불과하다. 자체 추심 중인 계약, 민사조차 제기하지 않은 계약까지 포함하면 실제 피해 규모는 훨씬 클 가능성이 높다.

 

이쯤 되면 묻지 않을 수 없다. 대체 누구를 위한 금융인가. 제도를 만들고, 보험을 설계하고, 검증을 생략한 주체들은 여전히 책임을 부인한다. 그런데 피해자는 서류 한 장에, 디지털 계약서 한 줄에, 법의 구조에 짓눌려 채무자가 됐다.

 

이 사건은 법적 사기냐 아니냐를 넘은 문제다. 계약 구조 속에서 피해자만 책임지는 방식, 그 자체가 구조적 사기다. 단 한 번도 경고받지 못했고, 단 한 줄도 제대로 설명받지 못했다. 그런데도 "알고 동의했다"고 말하는 사회. 이 구조가 유지되는 한, 사기는 계속될 것이다.

 

제도가 방치한 구조, 책임을 외면한 금융기관, 사기 가능성을 열어둔 보험 시스템. 그 틈에 있는 건 모두 개인이다. 그 누구도 나서서 대신 책임지지 않는 사회에서, '피해자를 위한 나라는 없다'는 말은 더 이상 과장이 아니다.

 

특히 문제는 법체계다. 전자계약서에 ‘고객 동의’라는 서명이 들어가면, 실제로 계약 내용을 정확히 이해했는지 여부와는 무관하게 법적 효력이 발생한다. 일반 소상공인이 팩토링 구조나 채권양도 방식에 대해 얼마나 숙지할 수 있었는지를 법은 고려하지 않는다. ‘디지털 계약’이라는 이름 아래, 설명 의무나 이해도에 대한 검증 절차는 빠져 있다.

 

또한 팩토링과 같이 구조 자체가 복잡한 금융상품에 대해서는 금융당국의 사전 심사제 도입이 필요하다. 판매 기업의 실체, 설치 능력, 운영 이력 등 기본적인 실사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향후 유사한 사건은 얼마든지 반복될 것이다. 고위험 상품을 판매하면서 고작 서류 몇 장으로만 검증 절차를 갈음하는 현실은 개선돼야 한다.

 

언론도 반성해야 한다. 언론은 지금까지 피해가 터져야만 기사를 썼고, 피해자가 목소리를 낸 이후에야 구조를 파헤쳤다. 이 구조는 어제오늘 생긴 게 아니다. 누군가는 3년 전에도, 누군가는 5년 전에도 똑같은 방식으로 채무자가 됐다. 언론이 이 사안을 단발적 사기로만 다뤘기에 구조적 문제는 방치됐고, 피해는 누적됐다. 더 이상은 늦지 않게, 단순한 사건이 아닌 ‘시스템의 실패’로 접근해야 한다.

 

이제는 묻고 책임져야 한다. 계약의 진짜 당사자는 누구였는지, 검증은 왜 생략됐는지, 피해자가 아닌 누가 이 구조로 이익을 얻었는지. 그래야 비로소, 더 이상의 피해자가 생기지 않는다. 지금 이 구조는 사기다. 그리고 이 사기를 가능하게 만든 건, ‘책임지지 않는 시스템’이다.

 

★매출채권이란

기업이 상품이나 서비스를 판매하고 그 대금을 아직 받지 못한 경우 발생하는 채권을 말한다.

 

★팩토링금융

기업이 발행한 매출채권을 금융기관이 매입해, 기업이 자금을 신손하게 조달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단기 금융 서비스다.

 

현재 관련 피해자들이 정보를 공유하고 대응 방안을 논의할 수 있도록 '금융 렌탈사기 피해자 연합'(https://open.kakao.com/o/glwCeutg)이라는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이 운영되고 있다. 피해를 입은 이들이 함께 목소리를 모으고 실질적인 대응에 나설 수 있는 창구로 활용되고 있다.

 
류으뜸 사진
류으뜸 기자  awesome@wisdot.co.kr

기사가 마음에 드셨나요?

기사가 마음에 드셨다면 좋은 기사에 후원해 주세요.

위즈경제 기사 후원하기

댓글 0

Best 댓글

1

어디에 사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사는냐가 토론의 장이되야한다는 말씀 공감하며 중증발달장애인의 또다른 자립주택의 허상을 깨닫고 안전한 거주시설에서 자립적인 생활을 추구하여 인간다운 존엄을 유지할수있도록 거주시설어 선진화에 힘을 쏟을때라 생각합니다 충분한 돌봄이 가능하도록 돌봄인력충원과 시설선진화에 국가에서는 충분한 제도적 뒷받침을 해야합니다

2

시설이 자립생활을 위한 기반이 되야합니다. 이를위해 전문인력이 배치되고, 장애인의 특성과 욕구를 반영한 프로그램이 운영되며, 지역사회와 연계된 지원체계가 마련되어야 합니다. 장애인이 보호받으면서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공간으로 거주시설을 개선하고 지원 되이야 가족도 지역사회에서도 안심할 수 있게 정책개발 및 지원 해야 한다는 김미애의원의 말씀에 감동받고 꼭 그렇게 되길 간절히 바래 봅니다.

3

중증발달장애인의 주거선택권을 보장하고 그들에게 필요한 지원을 바랍니다. 탈시설을 주장하시는 의원님들 시설이란 인권을 빼앗는 곳이라는 선입관과 잘못된 이해를 부추기지 마세요. 중중발달장애인을 위해 노화된 시설을 개선해 주세요. 또, 그들의 삶의 보금자리를 폐쇄한다는 등 위협을 하지 마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4

지역이 멀리 있어서 유트브로 시청했는데 시설장애인 부모로 장애인들이 시설이든 지역이든 가정이든 온전히 사회인으로 살수 있게 해줬으면 좋겠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5

탈시설 개념에 대해 페터 슈미트 카리타스 빈 총괄본부장은 유엔장애인권리협약에 게재된 탈시설화는 무조건적인 시설 폐쇄를 의미하지 않으며 장애인 인권 향상을 위한 주거 선택의 다양성을 강조하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으며, 미국의 경우 발달장애인의 거주 서비스는 의료적 도움이 필요한 경우, 도전적 행동이 있는 경우, 자립 지원이 필요한 경우 등 여러 거주 서비스 필요성에 의해 장기요양형 거주 시설부터 지역사회 내 자립홈까지 운영하고 있다. 이번 토론회를 통해 거주시설에서의 자립생활 목소리가 정책으로 연결되길 기대합니다.

6

장애인도 자기 삶을 결정하고 선택 할 귄리가 있습니다. 누가 그들의 삶을 대신 결정합니까? 시설에서 사느냐 지역사회에서 사느냐가 중요 한게 아니고 살고 싶은데서 필요한 지원을 받으며 살아야합니다. 개인의 선택과 의사가 존중되어야 합니다.

7

최중증 발달장애인의 거주시설에서의 생활은 원가정을 떠나 공동체로의 자립을 한 것입니다. 거주시설은 지역사회에서 벗어나 있지 않습니다. 시설안과 밖에서 너무도 다양하게 활동합니다. 원가정이나 관리감독이 어려운 좁은 임대주택에서의 삶과 다른 모두가 함께 만들어가는 공동체야 말로 장애인의 삶의 질을 높이고 사회성이 향상되는 곳입니다. 그리고 가장 안전한 곳 입니다. 최중증발달장애인들이 아파트나 빌라에서 살아가기란 주변의 민원과 벌래 보듯한 따가운 시선 그리고 돌발행동으로 위험한 상황이 많이 일어나고 그때마다 늙고 힘없는 부모나 활동지원사는 대처할수 있는 여건이 안되고 심지어 경찰에 부탁을 해 봐도 뾰족한 수가 없는 것이 현실 입니다. 그러나 거주시설은 가장 전문성이 있는 종사자들의 사명과 사랑이 최중증발달장애인들을 웃게 만들고 비장애인들의 눈치를 안봐도 되고 외부활동도 단체가 움직이니 그만큼 보호 받을수 있습니다 . 예로 활동지원사가 최중증발달장애인을 하루 돌보고는 줄행랑을 쳤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