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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를 위한 나라는 없다]①"렌탈 계약인 줄 알았는데 2500만원 빛 떠안아"...신종 팩토링 사기 피해자 인터뷰

▷정부지원 가장해 렌털계약 체결한 뒤 잠적...피해자, 모든 금전 부담 떠앉아
▷피해자 2000명 추산...피해자 대부분 소송비용 부담 커 대응 포기해
▷금융기관 부실 검증·신용보험 악용이 원인...전자계약 법적 기준 재정립 필요

입력 : 2025.11.10 12:44 수정 : 2025.11.19 15:45
 

[위즈경제] 류으뜸 기자 =[기획의도]구매기업에 고지 없이 매출채권을 금융기관에 넘긴 뒤 돌연 사라지는 이른바 '팩토링 금융사기'가 확산되고 있다. 특히 일부 렌탈사가 정부 지원을 미끼로 팩토링 구조를 숨긴 채 계약을 유도한 뒤 잠적하면서 피해자들이 수천만 원대 채무는 떠안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이에 위즈경제는 ①피해자 인터뷰 ②사기 수법의 실태와 피해현황 ③구조적 원인 ④제도 개선 방안 순으로 관련 내용을 심층적으로 파헤치고자 한다.

 

정부지원 렌탈 계약이 사실상 정교하게 설계된 금융사기였다면?

 

언뜻 보기에 평범한 렌탈 계약 같지만 그 안에는 일반 소비자가 쉽게 알아차릴 수 없는 사기 수법이 숨어 있었다.

 

 

팩토링 거래 구조 및 절차. 사진=결제전산원

 

이 사건의 핵심은 피해자가 계약 당시 인지하지 못했던 팩토링 금융 구조에 있다. 팩토링 금융이란 기업의 자금조달 수단 중 하나로 금융기관이 기업의 매출채권을 매입·유동화해 자금을 공급하는 금융서비스를 말한다. 예를 들어 A사(판매기업)가 B사(구매기업)가에 물건을 공급한 뒤 B사는 C사(금융기업)에 매출채권을 양도하고 먼저 자금을 받는다. C사는 채권을 양도받은 만큼 B사로부터 대금을 직접 회수하는 식이다. 주로 중소기업의 현금 유동성을 확보하고 안정적인 기업 활동을 돕고자 도입됐다.

 

문제는 일부 판매기업이 이 구조를 렌탈사기로 악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구매기업이 정부 지원이 포함된 단순 렌탈 계약인 줄 알고 체결했지만, 실제로는 팩토링 구조 속에서 모든 금전적 책임을 떠안게 된다. 이 구조를 악용한 방식은 다음과 같다. 문제의 렌탈사(판매기업)는 정부 지원금을 활용해 렌탈비를 지원해준다며 구매기업(소상공인)에게 계약을 유도해 계약을 체결하게 만든다. 초기에는 정부지원금과 수익금을 지급하며 신뢰를 쌓다가 일정기간이 지나면 돌연 잠적해 버린다. 이들은 이미 금융기관으로부터 선지급을 받은 자금을 확보한 뒤 '먹튀'하고, 남은 상황 책임은 고스란히 구매기업이 지게 된다.

 

피해자 대부분은 금융기관과 채권을 넘겨받은 신용정보회사들로부터 강한 추심 압박까지 받는 상황이다. 그나마 렌탈 장비라도 인수한 경우는 다행이지만 장비조차 받지 못했거나 받은 이후에도 판매기업이 사라져 수리나 A/S를 전혀 받지 못하는 곳들도 적지 않다. 채무조정을 지원하는 비영리법인 '롤링주빌리'에 따르면, 전국적으로 피해자는 약 2000명을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는 금융기관이 신용정보회사에 채권을 넘긴 사례에 한한 수치로 별도로 채권을 넘기지 않은 사례까지 포함하면 실제 피해 규모는 이보다 훨씬 클 것으로 보인다.

 

이에 위즈경제는 4일 해당 사기로 피해를 입은 이들과 직접 만나 이들이 겪은 실제 피해상황과 그 과정을 들어봤다.

 


위즈경제는 4일 한 카페에서 신종 팩토링 사기 피해자를 만나 이들이 겪은 실제 피해상황과 그 과정을 들어봤다. 사진=위즈경제
 

Q. 처음에 어떤 식으로 계약하게 됐나?

 

계약 당시 아내는 렌탈사 영업사원에게서 "정부가 70%를 지원하고 소상공인은 30%만 부담하면 된다. 제품만 설치하면 수익이 난다"는 설명을 듣고 약 2,500만원(48개월) 규모의 계약을 체결했다. 계약 직후 청약철회 의사를 밝혔고, 취소된 줄로만 알았다. 그러나 몇 달 뒤 금융기관이 외상매출채권 연체를 이유로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계약은 그대로 유지됐고, 팩토링 구조에 따라 채무가 계속 남아 있었던 것이다. 현재는 변호사를 선임해 소송을 준비 중이다.

 

Q.다른 피해자들은 어떤 식으로 대응하고 있나.

 

여러 부류가 있는 걸로 안다. 일단 법적대응을 포기하는 분들이 있다. 잔여렌털보다 부담되는 막대한 소송비용 때문이다. 렌탈료가 보통 기기당 2000만원이다. 피해자가 3심까지 가면 변호사 선임 비용만 두 세배에 달한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상황인 셈이다. 결국 울며 겨자 먹기로 잔여 렌털료를 포함한 위약금을 낼 수밖에 없다.

 

Q.피해자들이 소송을 해도 패소하는 경우가 많다고 들었다.

 

그렇다. 소액재판이라 다수의 피해자들은 법무사를 통해 서류만 제출하는 방식으로 대응한다.  반면 금융기관은 내부 법무팀이 대응하다보니 피해자가 불리한 구조다. 패소할 경우 곧바로 가압류에 들어가고 주로 소상공인으로 구성된 이들은 영업에 치명적이라 위약금을 감수하고 사건을 종결하는 일이 많다.

 

Q.이번 사건의 핵심이 렌탈사보다 금융기관에 있다고 본 이유는?

 

피해자들은 한결같이 금융기관의 책임이 더 크다고 본다. 팩토링 계약은 위험성이 큰 금융 수단이다. 하지만 금융기관은 철저한 검증절차를 거치지 않았다. 형식적인 서류 심사만 의존하다보니 설치·운영 능력도 없는 부실 업체들이 대거 계약에 포함됐다. 이로인해 그 책임이 소상공인들에게 전가되고 있는 상황이다. 금융기관의 부실한 사전 검증이 이런 결과를 초래했다고 생각한다.

 

Q.금융기관이 팩토링 계약의 위험성이 큼에도 철저한 검증을 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나.

 

손해보험사의 '렌탈 신용보험' 제도 때문이다. 렌탈사와 금융기관은 이를 통해 채권 리스크가 형식적으로 해소 가능하다. 특히 금융기관은 이 보험을 뒷배 삼아 비정상적인 장기 렌털 채권 계약을 아무 검증 없이 체결하는 데 이용하고 있다. 보험이 리스크를 막아주기 보다 사기 구조를 시스템적으로 가능하게 만드는 수단이 되고 있다. 

 

Q.이런 피해를 막으려면 제도적으로 어떤 변화가 필요하다고 보나.

 

정부 지원이라 주장하기 사기성 금융상품이 많다. 하지만 현재 이를 일괄적으로 검증해줄 수 있는 기관이 없다. 사기 예방을 위한 인증·확인 시스템 마련이 시급하고, 이를 전담할 별도의 정부 기관이 필요하다.

 

Q.입법 측면에서 필요한 조치는 무엇이라고 보나.

 

전자계약서만으로 소비자의 충분한 인지를 인정하는 현행 법체계에 문제가 있다. 현재 전자계약서는 '서명했으니 인지했고, 동의한 것'으로 간주된다. 그러나 소비자는 계약의 위험성을 정확히 인식하지 못한 채 계약하는 경우가 많다. 전자계약서의 법적 효력에 대한 판단 기준을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

 

★매출채권이란

기업이 상품이나 서비스를 판매하고 그 대금을 아직 받지 못한 경우 발생하는 채권을 말한다.

 

현재 관련 피해자들이 정보를 공유하고 대응 방안을 논의할 수 있도록 '금융 렌탈사기 피해자 연합'(https://open.kakao.com/o/glwCeutg)이라는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이 운영되고 있다. 피해를 입은 이들이 함께 목소리를 모으고 실질적인 대응에 나설 수 있는 창구로 활용되고 있다.


[피해자를 위한 나라는 없다]는 위즈경제가 진행하는 장기 심층취재 시리즈입니다. 불법사금융, 전세사기, 보이스피싱 등 점점 더 정교해지고 악질적으로 변하는 범죄들과 사회적 부조리 속에서 수많은 시민들이 일상과 삶을 송두리째 빼앗기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 피해자에게 돌아오는 것은 실효성 없는 제도와 소극적인 보호뿐입니다. 가해자는 진화하고 있지만, 법과 제도는 여전히 느리고, 그 책임은 여전히 남의 일입니다. 왜 피해자만이 끝까지 남아서 홀로 그 큰 무게를 감당해야 할까요? 이에 본지는 반복되는 피해의 이면에 있는 구조적 문제를 짚고, 피해자가 사회에서 더 이상 '관리 대상'이나 '부주의한 개인'으로 낙인 찍히지 않도록 목소리를 모으고자 합니다.(편집자주)


 
류으뜸 사진
류으뜸 기자  awesome@wisdo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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