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전세사기, 피해자 탓 말라…‘싱크홀 피해 다니라는 꼴’
▷이철빈 위원장 “법과 제도의 문제…개인이 감당할 수 없다”
▷전세제도가 무자본 갭투기 부추겨… “장기적으로 전세 줄여야”
▷‘피해자 인정’도 벽… 경찰 수사 없이는 지원 불가한 현실
이철빈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 공동위원장 (사진=위즈경제)
[위즈경제] 이수아 기자 =지난 2일 국토교통부가 전세사기 피해자 결정 현황을 발표했다. 전세사기 특별법 요건을 충족하는 피해는 총 3만3135건에 달했다. 전세사기를 해소하기 위해 서울시의 이름을 내건 ‘청년안심주택’에서도 총 287가구가 피해를 입었다.
전세사기 문제에 대해 의견을 듣기 위해 지난 23일 이철빈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 공동위원장을 인터뷰했다. 다음은 일문일답이다.
Q. 전세사기 피해를 처음 알았을 때, 어떤 상황이었나?
2021년 10월, 보증보험 가입해준다는 말을 믿고 전세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그런데 입주한 지 네 달쯤 지나 등기부등본을 다시 확인했을 때, 세무서의 압류 표시가 떠 있는 것을 보고서야 전세사기임을 알게 됐습니다. 처음엔 믿기지 않았고, ‘내가 뭘 잘못했나’라는 자책감에 무기력해졌습니다. 하지만 곧 “이건 나 혼자만의 잘못이 아니다”라는 문제의식을 갖게 됐습니다.
당시 계약 전, 건축물대장과 등기부등본 등 관련 서류는 꼼꼼히 확인했어요. 근저당 설정도 없었고, 임대인은 국가에 등록된 민간임대사업자였습니다. 겉보기엔 문제가 없어 보였고 법적으로도 관리받는 임대인이라고 판단했죠. 하지만 그 시점에도 임대인은 이미 세금을 체납한 상태였습니다. 이 사실은 서류 어디에도 드러나지 않았기 때문에 세입자 입장에서는 아무리 살펴도 알 수 없던 정보였던 겁니다.
전세사기 피해자에게 ‘알아서 조심해야지’라고 말하는 건 굉장히 무책임합니다. 도로에 싱크홀이 곳곳에 나 있는데, 알아서 피해 다니라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진짜 해야 할 일은 싱크홀을 메우고 다시 생기지 않도록 제도를 고치는 것입니다.
Q. 개인의 피해를 넘어서 전세사기 문제를 공론화하게 된 전환점이 있었다면?
전세사기 피해를 인지한 뒤, 현행법만으로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점이 분명해졌습니다. 법과 제도를 바꿔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죠.
당시 수도권 피해자 커뮤니티를 통해 다른 피해자들의 상황을 접했는데, 피해규모가 생각보다 훨씬 컸습니다. 전세사기를 당한 피해자가 이렇게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이건 ‘사회 구조의 문제’라는 인식이 강해졌습니다.
제가 피해 사실을 인지하고 8개월쯤 지난 2022년 10월, 임대인이 사망하는 일까지 겪었습니다. 생전에 60억 원이 넘는 종합부동산세를 체납한 상태였기 때문에, 경매가 진행돼도 세금이 우선 변제되고 보증금은 돌려받기 어려운 상황이었죠. 그때 “개인이 해결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라는 생각이 확실해졌습니다.
전세사기를 당하기 전 주택 임대차 관련 업무를 해왔기 때문에 이 문제의 구조나 해법에 대해 비교적 빠르게 이해할 수 있었고, 실무적인 대응도 가능했습니다. 그래서 전국대책위원회에 참여하게 됐습니다. 혼자 싸울 수 없는 문제라면 함께 움직여야 한다고 느낀 겁니다.
Q. 현재 전세 제도 자체가 무자본 갭투기나 깡통전세를 낳기 쉬운 구조라는 비판이 많다.
전세는 결국 세입자가 임대인에게 ‘돈을 빌려주는 구조’입니다. 그런데 임대인은 집을 무한정 사들여 시세차익은 본인이 가져가면서, 손실은 세입자에게 떠넘깁니다. 수익은 임대인의 것이고, 손해는 세입자의 몫인 구조 자체가 불공정한 겁니다.
특히 전세대출은 세입자 명의로 계약을 하지만, 대출금은 곧바로 임대인의 계좌로 들어갑니다. 이후 임대인이 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하면 모든 상환 책임은 세입자가 지게 되는 현실은 적절하지 않습니다. 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할 경우 임대인에게 대출 상환 책임을 일부 전가하는 구조적 조정이 필요합니다.
또한 전세제도는 집값이 유지되거나 올라야만 성립할 수 있는데, 2022년 금리 인상과 집값 하락으로 이 구조가 무너지면서 전세사기 문제가 터졌습니다. 그럼에도 정부는 전세 대출과 보증보험을 계속 확대해 전세 가격을 끌어올렸고, 결과적으로 갭투기를 부추겼습니다. 전세가격이 오르면 매매가격도 오르기 때문에 세입자에게 전세는 결코 유리하지 않습니다. 장기적으로 전세가 줄어드는 것이 세입자에게 더 유리하다고 생각합니다.
Q. 외국인, 이주노동자, 언어장벽 피해자 등 취약계층은 어떻게 제도에서 배제되고 있나?
외국인 피해자도 전세사기 특별법 상 ‘피해자’로는 인정됩니다. 그러나 법적 인정과 별개로 실제 지원은 거의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LH의 피해주택 매입은 내국인 계약에만 적용됩니다. 외국인은 아무리 피해 사실이 명확해도 주택 매입이나 지원대상에서 배제됩니다. 이 조항이 개정되지 않는다면 지원은 불가능합니다.
금융 지원도 마찬가지입니다. 외국인은 피해주택을 매입하려 해도 대출 한도가 매우 낮거나 아예 거절당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실상 대출 한도 제약에 가로막혀 있는 셈이죠.
이 때문에 같은 건물 안에서도 내국인과 외국인 사이에 충돌이 발생합니다. 전세사기 사례 중 다가구주택에 공동 근저당이 설정된 경우 전체 세대의 경매가 동시에 끝나야 배당이 가능합니다. 그런데 LH가 외국인의 세대를 매입하지 못하니 경매 절차가 지연되고, 내국인 피해자들은 하루라도 빨리 경매가 진행되길 원해 갈등이 생기기도 합니다.
언어 장벽이 있는 이주노동자 피해자의 경우 상황은 더 복잡합니다. 공인중개사의 말을 믿고 계약했지만, 문제가 생기면 어디서도 도움을 받기 어렵습니다. 부동산 용어나 법 절차 자체가 생소할 뿐만 아니라, 서울시 등 일부 지자체의 외국인 통역 창구도 전세사기 문제를 잘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전세사기 담당자와 통번역 인력이 유기적으로 연계돼야 지원이 가능하지만, 현재 시스템이 분리돼 있어 사실상 배제하는 구조입니다.
전세사기 피해자는 스스로 지원 제도를 찾아 신청해야 하는 구조입니다. 언어장벽이나 정보 접근성이 낮은 사람들은 이 과정에서 사실상 탈락하게 됩니다. 특별법 시행 2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은행·법원·지자체 현장에서는 제도를 잘 모르는 사례가 빈번합니다. 결국 피해자가 스스로 시스템을 이해하고 설득해야 하는 구조 자체가 또 다른 사각지대입니다.
Q. 피해자 인정 절차가 너무 까다롭다는 지적이 많다.
전세사기 피해자로 인정받기 위한 핵심 요건은 ‘임대인의 기망 의도’ 입증인데, 개인이 증명하기엔 지나치게 어렵고 경찰 수사 없이는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초창기엔 수사 개시만으로도 인정받았지만 최근엔 검찰 송치 수준의 혐의 입증을 요구하는 분위기로 바뀌어 피해자 인정 문턱이 더 높아졌습니다.
게다가 경찰 수사 요령이 지역마다 편차가 크고, 일부 지역에서는 수사 자체가 지연되기도 합니다. 피해자들은 그 사이 퇴거 위기에 놓이기 때문에 피해자 인정 요건을 완화하거나, 최소한 경찰 수사 개시만으로 인정하는 방식이 필요합니다.
Q. 전세사기 법제도 개선의 우선순위는?
LH의 피해주택 매입 정책은 한계가 있습니다. LH가 경매 차액을 보장하겠다고 하지만, 경매 차익이 없으면 피해자는 여전히 피해주택에 거주할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피해자의 선택지를 제한하는 구조가 되는 셈이죠. 피해자가 경매를 통해 돌려받는 금액과 LH가 보전하는 차액을 합쳐 보증금의 최소 30~50%는 회수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피해주택의 시설 관리 문제도 심각합니다. 임대인이 사라진 상태에서는 주택 관리가 방치돼 단순 하자부터 안전사고 위험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현재 특별법 개정안에는 국가·지자체의 개입 조항이 있지만, 현장에서는 “임대인 동의 없이는 어렵다”는 말만 반복됩니다. 이런 조항은 사실상 무의미합니다.
임대인의 동의 여부와 상관없이 일정 기한 내 관리가 이뤄지지 않으면 지자체가 긴급 조치를 할 수 있도록 법적 권한을 명확히 해야 합니다. 안전사고를 막기 위해서라도 시급한 제도 개선이 필요합니다.
Q.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 공동위원장을 맡으면서 어려운 점이 있다면?
피해자들이 오랫동안 고군분투를 해도 제도 개선과 지원 대책이 지나치게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또한 보증금을 돌려받는 문제뿐 아니라 많은 피해자들이 가해자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에 분노하고 있습니다. 피해자들은 “엄정한 처벌이 뒤따라야 같은 피해가 반복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Q. 사기를 당하거나, 피해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 임차인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이 문제는 결코 개인의 잘못이 아닙니다. 시스템 범죄에 개인이 희생된 것이므로, 절대 자책하지 마시고 혼자가 아니라는 점을 기억해 주셨으면 합니다. 실제로 전세 계약을 앞둔 분들이 ‘이 계약이 안전한지’ 묻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는 공공임대가 아닌 이상 월세 전환을 권유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무엇보다 피해를 줄이고, 피해자들이 함께 목소리를 내는 것이 중요한 때입니다.
댓글 1개
관련 기사
Best 댓글
선택권을 줘야합니다 공산당도 아니고 일방적으로 밀어부치는 섣부른 정책 다시 검토해야합니다.
2탈시설 지원법은 악법이며 폐기 되어야만 합니다. 부모회는 자립을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무조건적 탈시설 보다는 자립을 원하면 자립 지원을 해주고 시설을 원하면 입소 지원을 해달라는 것입니다.
3탈시설은 자립의 유일한 길이 아닙니다. 중증장애인에게는 선택권과 안전한 돌봄이 먼저 보장돼야 합니다. 정부는 현실에 맞는 복지 다양성을 마련해야 합니다.
4다양한 삶의 방식 앞에 놓이는 단일 선택은 폭력입니다. 각자의 삶에 맞는 환경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합니다.
5탈시설 지원법은 중증장애인들을 사지로 내모는 악법이다. 다양한 시설과 시설의 처우개선은 뒤로 한체 시설에 있는 장애인들은 생존권까지 무시한 폐쇄에만 목적을 둔 이권사업으로써 탈시설 지원법은 폐기 시켜야 합니다.
6어디에 사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사는냐가 토론의 장이되야한다는 말씀 공감하며 중증발달장애인의 또다른 자립주택의 허상을 깨닫고 안전한 거주시설에서 자립적인 생활을 추구하여 인간다운 존엄을 유지할수있도록 거주시설어 선진화에 힘을 쏟을때라 생각합니다 충분한 돌봄이 가능하도록 돌봄인력충원과 시설선진화에 국가에서는 충분한 제도적 뒷받침을 해야합니다
7탈시설 정책을 시작한 복지 선진국에서의 주요 대상자는 정신장애인과 지체장애인이다. 거주시설은 중증장애인들이 부모사후 인권을 보장받으며 살아갈 제 2의집 장애인들의 마지막 보루다! 마땅리 존치되어야한다. 정부는 장애인들의 권리를 획일적인 자립정책으로 박탈하지말고 거주시설을 더더욱 늘리는 정책을 펼쳐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