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한국 증시 저평가의 굴레…고태봉 본부장, “해법은 신뢰 회복과 철학 정립”
▷고태봉 IM증권 리서치본부장(전무) 인터뷰
▷“신뢰, 철학 없이는 한국 증시 만성 저평가 못 벗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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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즈경제] 이정원 기자 =한국 주식시장은 오랜 시간 '저평가'라는 굴레에서 쉽사리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특히 기업의 실적이나 성장 잠재력에 비해 주가가 낮게 형성되는 현상이 계속되면서 '코리아 디스카운트'라는 이름으로까지 굳혀진 상황이다. 지배구조 투명성 부족, 주주권 보호 미흡, 반복되는 불공정거래, 지정학적 리스크 등이 한국 주식시장의 저평가를 야기하는 원인으로 언급되고 있지만, 명쾌한 해법은 여전히 나오지 않고 있다. 이제는 단순한 진단을 넘어, 신뢰 회복과 시장 경쟁력 제고를 위한 해법 모색이 절실한 시점이다. 이에 위즈경제는 고태봉 IM증권 전무와 함께 한국 주식시장의 고질적인 저평가 원인을 진단하고 이에 대한 해법과 향후 과제에 대한 의견을 구했다.
고태봉 IM증권 전무는 한국 주식시장 긴 시간 '저평가'라는 꼬리표에서 벗어나지 못한 이유로 '신뢰 부족'을 꼽았다.
고 전무는 "누구든 사람이라면 더 나아지길 바라는 본능을 가지고 있기 마련이다"라며 "자본주의는 그 본능을 가장 잘 이용하는 제도로 지금까지 이어져왔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이러한 기본적인 본능을 바탕으로 기업 경영인은 기업에 기여한 만큼 정당한 보상을 받아야 하고, 주주 역시 '이 회사의 성장을 함께하겠다'는 열망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며 "그러나 현재 한국 주식시장은 이러한 열망이 제대로 존중받지 못하고 신뢰가 바닥에 떨어진 상황에 놓여 있다"고 지적했다.
고 전무는 이 같은 신뢰 부족이 상장 기업들의 경영 행태에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상속세 부담을 줄이기 위한 기업 분할이나 복수 상장과 같은 형태로 드러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신뢰 부족 문제는 상장 기업들이 상속세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기업을 쪼개거나 복수 상장을 택하는 사례로 드러나고 있다"라며 "이는 겉으로는 시가총액이 확대되는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주식 수가 늘어나 주가지수가 희석되고 장기적으로는 시장 신뢰 약화라는 부정적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주주들이 기업의 단순한 투자자가 아닌 회사 주식을 소유한 소유자라는 점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필요하다"라며 "이러한 기본적인 신뢰가 정립되지 않는다면 서로에 대한 의심만 커질 수밖에 없고, 결국 각자의 이해를 앞세운 법·제도를 만들어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기에 갈등의 골만 깊어지는 부작용을 낳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기업과 주주가 서로의 역할을 존중하고 신뢰할 때 비로소 저평가 해소의 길이 열릴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한국 주식시장을 운영해가는 정부의 주식시장 운영 철학 부재를 지적하기도 했다.
고 전무는 "예컨대 일본에서는 아베노믹스 시행 후 약 10년이 흘렀다. 초기에는 대다수가 회의적인 시선을 보였지만, 그 사이 닛케이 지수는 4배 가까이 오르는 성과를 이룰 수 있었다"라며 "아베노믹스의 핵심은 NISA 제도였는데, 기존 주식 투자 계좌가 고령층 위주로만 활용됐지만, NISA(소액투자비과세 제도)를 통해 청년층도 주식시장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이를 통해 일본 국민 누구나 기업 성장의 결실을 배당이라는 형태로 나눠 가질 수 있었고, 장기적으로 자산 형성에도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올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아울러 미국의 경우, 사회적으로는 각자도생의 성격이 강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점은 '주가를 반드시 우상향을 만들어주겠다'는 사회적 약속이 있으며, 이를 통해 평범한 개인도 401K(퇴직연금) 등에 꾸준히 투자하기만 해도 10억에서 20억 대 수준의 자산을 쌓을 수 있는 구조가 마련돼 있다"라며 "결국 주식이 단순한 투자 수단을 넘어 일종의 ‘비클(자산 형성의 통로)’이 된 셈입니다. 미국은 이 주식이라는 비클을 통해 국가 철학을 만들어온 것입니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처럼 국가마다 정책 방향이 다르고, 주식시장에서 정책이 반영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라며 "그러나 한국은 특정 시점의 수익에만 반응하고, 기업 성장의 지속성을 담보하지 못한 채 일정 수준의 수익만 확보되면 곧바로 손을 털고 나오는 일이 반복돼 이러한 단기적 접근이 곧 한국 시장의 만성적 저평가를 고착화 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저평가가 고착화된 국내 주식시장의 활력을 되살릴 새로운 동력을 마련하기 위해 한국만의 주식시장 운영 철학을 만들어 나갈 때라고 강조했다.
고 전무는 "앞서 이야기했듯이 사람의 본능을 지나치게 억누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라며 "이는 경제 정책에도 그대로 적용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때 과거의 사례가 좋은 예시가 될 수 있다"라며 "김대중 정부 시절 IMF로 국가 재정이 바닥난 상황에서 당시 정부는 IT와 초고속 통신망 등의 과감한 투자를 선택했다"고 설명했다.
또한 "만약 그때 그러한 선택이 없었다면 오늘날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시대(Digital Transformation)'에 대한민국이 세계 2위 수준까지 성장하는 성과를 내긴 어려웠을 것"이라며 "지금 필요한 것은 과거 모범적인 선례를 되새기며 금융에 대한 체벌이 아닌 금융을 통한 치료를 선택하는 것이고, 앞으로 대한민국을 재건할 새로운 투자처는 AI가 될 것"라고 했다.
인터뷰 진행 중인 고태봉 IM증권 리서치본부장(사진=위즈경제)
특히 소프트웨어 AI가 로봇·기계 등 물리적 사물과 결합해 작동하는 피지컬 AI의 가능성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 전무는 "피지컬 AI는 사람이 투입되던 공장, 가사 노동 등을 로봇이 수행하게 된다는 개념이다"라며 "현재 전 세계 GDP가 약 105조인데, 이 중 인간의 노동이 창출하는 부가가치의 일부분만 로봇으로 대체해도 어마어마한 경제 효과가 발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고 전무에 따르면 전 세계 GDP 가운데 공장에서 인간의 노동으로 창출되는 부가가치는 전체의 약 60%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으며, 이 가운데 10%만 로봇으로 대체해도 약 6조 달러 규모의 가치가 발생한다.
아울러 전 세계 가사노동의 경제적 가치는 약 20조 달러로 집계되고 있어 그 중 10%만 로봇이 맡는다고 가정하면 추가로 2조 달러가 더해진다. 결국 공장과 가사노동 두 영역만 합쳐도 약 8조 달러, 한화로 환산하면 경(京) 달하는 거대한 시장이 열릴 수 있다는 분석이다.
고 전무는 "한국은 전통적으로 IT와 제조업에 강점을 가지고 있으며, 이는 피지컬 AI 시대에 유리한 위치를 선점할 수 있다"라면서 "문제는 AI의 두뇌에 해당하는 데이터 센터를 비롯해 핵심 인프라에 대한 투자가 부족하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국내에도 데이터 센터는 많이 존재하지만, 정작 AI 연산에 필수적인 GPU 인프라 확보는 여전히 부족한 상황"이라며 "이는 자칫 대규모 연산을 필요로 하는 기업들이 AWS, MS의 애저(Azure) 등 해외 클라우드 서비스에 의존하게 되고, 국가적 차원의 민감한 데이터까지 해외에 맡기는 구조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이러한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산업·민간 영역에서 정부가 추진 중인 K-AI 이니셔티브를 통해 생태계 확산과 인프라 강화를 도모하고, 국방과 안보 등 민감한 분야는 소버린 AI 구축이 병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과거 김대중 정부가 초고속 통신망을 깔아 디지털 시대의 초석을 다질 수 있던 것처럼 AI 시대에는 데이터 센터가 핵심 인프라가 될 것"라며 "이 역시 단순 저장과 메모리 기능을 수행하는 것이 아닌 GPU 기반으로 학습과 추론이 가능한 구조여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데이터를 모아도 저장할 곳이 없고, 알고리즘이 있어도 학습·추론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발전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라며 "특히 고도의 연산을 안정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서멀 매니지먼트(냉각 관리)와 이를 뒷받침할 대규모 용수, 안정적인 전력 공급 등도 함께 확보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기반을 갖추는 것이야 말로 진정한 의미의 AI 인프라이며, 국가 차원에서 데이터와 AI 인프라를 확보하는 일이 시급하다"라며 "이를 기반으로 대한민국 경제를 활성화 시키는 시발점을 마련하고, 나아가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의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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