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학점제, "정착은커녕 시행 어려운 지경"…현장 교사들 "전면 재검토나 폐지해야"
▷교총 설문조사 결과 “교원 희생으로 간신히 유지” 54.9%, “폐지해야” 31.9%
▷3과목 이상 수업·출결 혼란·형식적 미이수제 운영까지…“전면 재검토 필요”

[위즈경제] 김영진 기자 = 7년여 준비 끝에 올해 전면 시행된 고교학점제가 정작 학교 현장에선 “정착은커녕 시행조차 어렵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고교 교사의 과도한 업무 부담과 제도적 미비로 현장 혼란이 가중되면서, 일선 교사 10명 중 9명은 제도 정착에 회의적인 입장을 보였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회장 강주호, 이하 교총)는 고교학점제 전면 시행 넉 달을 맞아 지난 12일부터 17일까지 전국 고등학교 교사 1,033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를 24일 발표했다.
조사 결과, 고교학점제가 학교에 정착됐느냐는 질문에 ‘교원의 희생으로 겨우 유지되고 있다’는 응답이 54.9%로 가장 많았고, ‘폐지를 검토할 정도로 유지하기 어렵다’는 응답도 31.9%에 달했다. ‘비교적 정착되고 있다’는 의견은 10.5%, ‘안정적으로 정착됐다’는 응답은 1.5%에 불과했다.
교총은 “결국 응답자의 87%가 고교학점제가 정착은커녕 시행 자체도 버겁다고 보고 있다”며 “획기적인 여건 개선이 없다면 전면 재검토와 폐지까지도 검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현장에서는 과목 수 증가로 인한 교사 부담이 현실화되고 있다. ‘3과목 이상을 담당한다’는 교사가 37.1%에 달했으며, 이 중 5개 이상을 담당하는 교사도 1.7%였다. 과목 수가 많아지며 교사들은 ‘학생부 기재 부담’과 ‘수업 및 업무 준비’, ‘시험문제 출제 부담’ 등을 주요 문제로 꼽았다.
또한 공동교육과정이나 지역 온라인학교 등 과목 선택권 확대 방안도 실효성을 얻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규 수업시간 내 운영이 어려워 실질적 활용이 어렵다’는 응답이 50.7%, ‘디지털 인프라 부족’(19.5%), ‘학생 수요 부족’(10.5%) 등 부정적 평가가 주를 이뤘다.
미이수제를 사실상 형식적으로 운영해야 한다는 점도 교사들의 불만을 사고 있다. ‘보충지도 참여도와 태도가 낮다’(1순위), ‘방과후‧방학중 보충지도로 업무 과중’, ‘형식적 수행평가로 기본점수 부여’ 등의 문제가 지적됐다. 최소성취수준 보장지도 역시 ‘실질적 성취보다는 미이수 방지용 형식적 운영’이라는 비판이 많았다.
과목별 출결체계로 인한 혼란도 여전하다. ‘정착됐다’는 응답은 40.2%에 불과했으며, ‘정착되지 않았다’는 응답은 56.1%에 달했다. 개선 방안으로는 ‘전자출결 시스템 도입’이 가장 많이 제안됐고, ‘출결 마감 권한 확대’, ‘NEIS 시스템 가독성 개선’ 등이 뒤를 이었다.
제도 정상화를 위한 최우선 과제로는 ‘최소성취수준 보장제도 전면 재검토’가 1순위로 꼽혔다. 이어 ‘학생부 기재 부담 완화’, ‘다과목 개설 위한 교원 증원’, ‘출결 시스템 개선’ 등이 뒤를 이었다.
한편, 고교학점제와 대입 제도 연계에 대해 교사들은 신중하거나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성취평가제 확대에 ‘찬성’ 의견은 20.5%에 그쳤고, ‘확대 반대’(47.7%)나 ‘신중 검토 필요’(25.7%)가 다수를 이뤘다. 2028 수능의 통합형 개편에 대해서도 ‘선택과목 폐지로 수업 위축’에 대한 우려가 59.9%로 나타났다.
대입 전형 시기 통일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렸다. ‘3학년 2학기 성적으로 전형 가능해 찬성’이 49.8%, ‘입시 지도 여력 부족으로 반대’가 41.9%였다.
강주호 교총 회장은 “준비되지 않은 고교학점제는 교사 부담을 가중시키고 학생에게까지 피해를 초래한다”며 “교육부는 이번 설문조사 결과에서 나타난 여건 불비 실태와 관련해 특단의 지원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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