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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조금 받으면서도 담합은 계속됐다…7개 제분사, 밀가루값 6년간 ‘짜고 친 시장’

▷공정위, 대한제분·CJ제일제당·사조동아원 등 7개사에 과징금 6,710억원 부과
▷원가 오를 땐 빠르게 인상, 내릴 땐 늦게 인하…라면·빵·과자 원재료 시장 왜곡

입력 : 2026-05-20 12:03
보조금 받으면서도 담합은 계속됐다…7개 제분사, 밀가루값 6년간 ‘짜고 친 시장’ 공정위가 공개한 2022년 8월 8일 당시 대선제분 김ㅇㅇ씨와 씨제이제일제당 박▲▲ 씨의 카톡대화(자료=공정거래위원회)
 

[위즈경제] 조중환 기자 = 2022년 8월, 밀가루 가격 안정을 위해 정부 보조금이 투입되던 시기였다. 정부는 국제 원맥 가격 상승으로 밀가루값이 급등하자 제분사들이 출하가격을 동결하거나 인상 폭을 제한하면 가격 상승분의 80%를 지원하는 사업을 시행했다. 그러나 공정거래위원회 조사 결과, 일부 제분사들은 보조금 수령 시점을 의식하면서도 가격 인상 합의를 논의한 것으로 드러났다. 국민 세금으로 마련된 물가안정 지원이 시장가격을 낮추는 데 쓰이기보다, 담합 구조 속에서 제분사들의 수익 방어 장치로 작동했을 가능성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담합의 방식은 노골적이었다. 원맥 가격이 오를 때는 제분사들이 가격 인상 폭과 시기를 맞췄고, 원맥 가격이 내릴 때는 인하 폭을 최소화하고 적용 시기를 늦췄다. 2023년 농심이 원맥 시세 안정을 이유로 1㎏당 80원 인하를 요청했지만, 제분사들은 20원 인하에 합의했다. 2024년에도 농심이 가격 인하와 기존 거래분에 대한 소급 적용을 요구하자, 제분사들은 50~70원 수준의 인하 폭을 맞추고 소급 적용은 하지 않기로 합의했다. 같은 해 12월에는 농심이 가격 인하를 요청했음에도 환율 상승을 이유로 오히려 15~20원 인상에 합의한 정황도 확인됐다.

 

공정위는 20일 대한제분, CJ제일제당, 사조동아원, 삼양사, 대선제분, 삼화제분, 한탑 등 7개 밀가루 제조·판매 사업자가 2019년 11월부터 2025년 10월까지 약 6년에 걸쳐 B2B 밀가루 공급가격과 공급 물량을 합의·실행했다며 시정명령과 함께 과징금 총 6,710억4,500만원을 부과했다. 이는 담합 사건 과징금으로는 역대 최대 규모다.

 

공정위는 이들 7개사가 국내 B2B 밀가루 판매시장에서 2024년 매출액 기준 87.7%의 시장점유율을 차지하는 과점사업자라고 설명했다. 상위 3개사인 대한제분·CJ제일제당·사조동아원만 놓고 봐도 점유율은 62.0%에 달한다. 이들은 라면·국수 등 제면업체와 제과·제빵업체, 외식·급식업체, 대리점 등에 밀가루를 공급해 왔다.

 

◇ 가격 전쟁에서 시작된 담합…‘농심 가격’이 시장 기준이 됐다

 

담합 기간 밀가루 판매가격 및 국제 원맥가 변동 추이 (자료=공정거래위원회)

 

이번 사건은 단순히 몇몇 기업이 가격을 맞춘 사건이 아니다. 밀가루 시장에서 가장 큰 수요처인 농심을 둘러싼 공급 경쟁이 담합의 출발점이 됐다. 공정위에 따르면 2018년 11월 대한제분이 농심에 대한 견적 제출 과정에서 경쟁사보다 낮은 가격을 제시해 2019년 공급 물량의 약 30%를 확보하자, 사조동아원은 줄어든 물량을 만회하기 위해 중소형 대리점 등을 상대로 공격적인 할인 영업에 나섰다.

 

농심은 국내 밀가루 총 가공량의 약 10%를 구매하는 최대 수요처다. 제분사들이 농심에 공급하는 가격은 다른 B2B 거래처 가격의 기준가격처럼 작동했다. 결국 농심 공급가격이 흔들리면 시장 전체 가격 질서가 흔들릴 수 있었다. 공정위는 이 같은 경쟁 격화 속에서 2019년 11월 대한제분·CJ제일제당·사조동아원 등 상위 3개사 대표자급 임원들과 삼양사 임직원이 식당에서 만나 “과도한 경쟁을 자제하고 적정 가격을 유지하며 안정적 물량을 확보하자”는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담합이 시작됐다고 봤다.

 

이후 담합은 단계적으로 확산됐다. 처음에는 농심과 팔도 등 대형 수요처를 대상으로 한 가격·물량 합의였지만, 2020년 1월에는 대선제분·삼화제분·한탑 등 하위사까지 가담해 중소형 수요처와 대리점 등 전체 거래처에 대한 일부 제품 가격을 맞췄다. 2021년 4월부터는 7개 제분사 모두가 전체 거래처를 대상으로 밀가루 전 제품 가격을 합의했다.

 

담합 횟수도 일회성이 아니었다. 이들은 대형 수요처 대상 공급가격 및 물량 담합 19차례, 전 거래처 대상 공급가격 담합 5차례 등 총 24차례에 걸쳐 합의를 실행했다. 담합 기간 동안 대표자급과 실무자급 회합은 모두 55회에 달했다. 직접 회합에 참석하지 않은 하위 제분사에는 유선으로 합의 내용을 전달했고, 하위사들이 상위사에 먼저 연락해 가격 인상 시기와 대형 수요처 협상 상황을 묻는 경우도 있었다.

 

공정위 브리핑에서 남동일 부위원장은 “상위 3개사 또는 4개사, 7개사 회합 등 다양한 형태로 회합이 이뤄졌고 상·하위사 구분 없이 모두 담합에 가담했다”고 설명했다. 특히 하위 3사가 단순히 통보만 받은 수동적 위치였는지에 대해서도 공정위는 선을 그었다. 남 부위원장은 “하위 사업자들이 상위 사업자에 비해 적극성이 떨어지는 측면은 있지만, 상위 사업자에게 먼저 문의해 가격정보를 취득하려는 노력도 많이 보였다”며 “반드시 소극적이라고만 평가되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 원가 상승은 즉시 반영, 하락은 지연…담합은 ‘물가 방어’가 아니라 ‘이익 방어’였다

 

이번 사건에서 가장 중요한 지점은 담합이 국제 원맥 가격 변동을 이용해 작동했다는 점이다. 우리나라는 밀가루 원료인 원맥의 99%를 미국, 호주, 캐나다 등에서 수입한다. 밀가루 가격이 국제 원맥 가격과 환율에 영향을 받는 구조인 것은 사실이다. 문제는 제분사들이 이 구조를 경쟁의 결과가 아니라 합의의 근거로 활용했다는 점이다.

 

공정위 조사에 따르면 제분사들은 2020년부터 2022년까지 수입 원맥 시세 상승기에는 원가 상승분을 최대한 빠르게 판매가격에 반영하기 위해 가격 인상 폭과 시기를 합의했다. 반대로 2023년 이후 원맥 시세가 하락하자, 가격 인하 폭은 최소화하고 시기는 늦추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그 결과 2022년 9월에는 밀가루 판매가격이 담합 시작 당시인 2019년 12월과 비교해 제분사별로 최소 약 38%에서 최대 74%까지 상승했다. 이 수치는 밀가루 품목 중 비중이 큰 중력분 평균 판매가격을 기준으로 산정됐다.

 

공정위가 보도자료에 제시한 가격 추이 그래프도 이를 뒷받침한다. 담합 기간 중 국제 원맥 가격이 급등하던 시기에는 밀가루 판매가격이 빠르게 올라갔지만, 이후 원맥 가격이 하락한 뒤에도 판매가격은 더디게 내려갔다. 원가 상승기에는 가격 전가 속도를 높이고, 원가 하락기에는 가격 인하 속도를 낮춘 구조다.

 

이는 소비자물가 논의에서도 중요한 의미가 있다. 공정위는 이번 사건이 최종 소비자가격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는지를 정밀하게 산정하지는 않았다고 밝혔다. 밀가루가 라면, 빵, 과자 등 가공식품의 원재료인 만큼 소비자가격에 직접·간접 영향을 줄 수 있지만, 제품별 원가 구조와 유통 단계가 달라 일률적으로 계산하기 어렵다는 취지다.

 

다만 공정위는 밀가루 가격이 경쟁 회복 수준으로 돌아갈 필요가 있다고 보고 ‘독자적 가격재결정 명령’을 내렸다. 의결서가 송부되면 제분사들은 3개월 안에 각자 독자적으로 가격을 다시 결정해 공정위에 보고해야 한다. 향후 3년 동안 가격 변경 내역도 연 2회 서면 보고해야 한다. 이는 과징금 부과에 그치지 않고, 담합으로 왜곡된 가격 구조를 실제 시장에서 되돌리겠다는 조치다.


◇ 2006년 제재받고도 반복…문제는 과점시장 내부의 ‘학습된 담합’

 

공정위가 7개 제분사에 부과한 과징금 내역. 전체 과징금은 6,710억4,500만원으로 담합 사건 과징금 중 역대 최대 규모다. (자료=공정거래위원회)

이번 사건이 더 무겁게 받아들여지는 이유는 반복성 때문이다. 공정위는 2006년에도 이들 7개 제분사의 담합을 적발해 시정명령과 과징금 435억4,700만원을 부과하고 각사 대표자급 임원 6명을 고발한 바 있다. 20년 가까이 지난 뒤 동일한 산업, 사실상 같은 사업자들이 다시 담합으로 제재를 받은 것이다.

 

남 부위원장은 브리핑에서 “밀가루나 설탕 같은 분야는 담합에 취약한 요소가 없지 않은 것 같다”며 반복 담합에 대해 더 적극적인 제도 개선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공정위는 반복 담합 사업자에 대한 과징금 가중, 임원 직무정지명령, 내부감시 강화 등 제도 개선도 검토하고 있다.

 

과징금 산정에서도 반복성과 중대성이 반영됐다. 공정위는 이번 담합 관련 매출액을 5조6,900억원으로 산정했고, 위반행위 중대성을 고려해 상위 사업자에는 15%, 하위 사업자에는 10%의 부과기준율을 적용했다. 조사·심의 협조 정도에 따라 일부 사업자는 감경을 받았지만, 전체 과징금은 6,710억원을 넘어섰다. 회사별 과징금은 사조동아원 1,830억9,700만원, 대한제분 1,792억7,300만원, CJ제일제당 1,317억100만원, 삼양사 947억8,700만원, 대선제분 384억4,800만원, 한탑 242억9,100만원, 삼화제분 194억4,800만원이다.

 

공정위는 올해 1월 검찰 고발 요청에 따라 7개 제분사와 담합에 가담한 임직원 14명에 대한 고발 조치도 이미 완료했다.

 

이번 사건은 라면값이나 빵값 하나의 문제가 아니다. 원재료 시장의 과점사업자들이 공급가격과 물량을 맞추면, 그 영향은 가공식품 업체와 외식·급식업체, 결국 소비자에게까지 이어질 수밖에 없다. 특히 정부가 물가 안정을 위해 보조금을 투입한 기간에도 담합이 이어졌다는 점은 시장 감시와 보조금 집행 체계 모두에 질문을 남긴다.

 

공정위는 보조금 환수 가능성에 대해서는 “보조사업을 운영하는 것은 농식품부”라며 “보조 대상 기간에 담합행위가 지속되고 있었다는 점을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환수나 사후 조치는 농식품부가 필요시 검토할 사안이라는 입장이다.

 

결국 이번 제재의 핵심은 과징금 규모보다 시장이 왜 같은 담합을 반복했는지에 있다. 밀가루는 국민 생활과 밀접한 식품 원재료이고, 국내 시장은 소수 제분사 중심의 과점 구조다. 원가 상승기에는 가격 인상 명분이 쉽게 만들어지고, 원가 하락기에는 소비자가 가격 인하를 체감하기 어렵다. 이 틈에서 담합은 기업 내부에는 안정적 수익을, 시장에는 왜곡된 가격을 남겼다.

 

공정위의 가격재결정 명령이 실제 밀가루 가격 정상화로 이어질지, 나아가 라면·빵·과자 등 가공식품과 외식 물가 부담 완화로 연결될지는 아직 지켜봐야 한다. 분명한 것은 이번 사건이 “원재료값이 올라서 어쩔 수 없었다”는 설명 뒤에 숨어 있던 과점시장의 민낯을 드러냈다는 점이다. 국민 먹거리의 가격은 원가만으로 움직이지 않았다. 6년 동안, 시장 안에서는 경쟁보다 합의가 먼저 움직이고 있었다.

 
조중환 사진
조중환 기자  highest@wisdo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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