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 사회의 구조] ⑥ 정부·은행·플랫폼…누가 책임져야 하나
▷사기를 막을 권한은 분산됐고, 책임은 사라졌다
▷‘관할 밖’이라는 말이 범죄를 키웠다
(일러스트=챗GPT로 생성된 이미지)
[위즈경제] 김영진 기자 = 이 기획은 Global Anti-Scam Alliance(GASA)가 2025년 발표한 ‘State of Scams in South Korea 2025’ 보고서를 분석의 출발점으로 삼았다. 해당 보고서는 전국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한국 사회에서 사기 범죄가 얼마나 일상화·구조화되어 있는지를 수치로 보여준다.
위즈경제는 이 데이터를 단순 소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사기 범죄가 개인의 부주의 문제가 아닌 사회적 위험 시스템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누가 피해자가 되었는지보다, 왜 누구나 피해자가 될 수밖에 없는 구조가 만들어졌는지, 그리고 그 책임은 어디에 있는지를 묻고자 한다.[편집자주]
사기 범죄가 발생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질문은 “왜 막지 못했나”다. 그러나 그 다음 질문은 자주 사라진다. “누가 막아야 했나”라는 질문이다. 사기 피해가 반복되는 사회에서 이 질문이 제대로 제기되지 않는 한,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한국의 사기 대응 체계는 복잡하다. 정부가 있고, 수사기관이 있으며, 금융권과 플랫폼이 각자의 역할을 맡고 있다. 겉으로 보면 촘촘한 구조다. 그러나 실제로 사기 피해가 발생했을 때 이 구조는 빠르게 무너진다. 각 주체는 자신이 직접적 가해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책임에서 한 발 물러선다. 그 결과, 피해자는 사기범뿐 아니라 책임이 흩어진 제도와도 싸워야 한다.
◇ 정부: 총괄은 있지만, 통합은 없다
정부는 사기 범죄 대응의 최종 책임 주체로 여겨진다. 법과 제도를 만들고, 예산을 배분하며, 정책 방향을 설정한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사기 범죄 대응이 부처별·기관별로 쪼개져 운영된다. 금융 사기는 금융당국, 통신 사기는 통신 부처, 플랫폼 문제는 민간 영역이라는 식이다.
이 구조의 가장 큰 문제는 사기 범죄의 실제 양상이 이 구분을 따르지 않는다는 점이다. 오늘날 사기는 통신, 금융, 플랫폼을 동시에 이용한다. 하나의 사기 사건에 전화, 메신저, 계좌, 플랫폼이 모두 등장한다. 그러나 대응은 여전히 각 영역에 분리돼 있다. 통합 대응을 선언하는 기구는 있지만, 실질적인 권한과 책임을 가진 컨트롤타워는 부재하다.
정부는 종종 “민간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그 말이 책임의 이양으로 작동하는 순간, 사기 대응은 공백을 낳는다. 누가 최종 결정을 내리고, 누가 실패의 책임을 지는지 불분명한 구조에서는 범죄가 가장 유리해진다.
◇ 은행과 금융권: 돈은 지켰지만, 사람은 지키지 못했다
금융권은 사기 범죄에서 핵심적인 위치에 있다. 자금이 이동하는 마지막 관문이기 때문이다. 은행들은 이상 거래 탐지 시스템(FDS)을 운영하고 있고, 계좌 모니터링과 차단 권한도 갖고 있다. 그러나 이 권한은 주로 자신들의 리스크 관리를 위한 방향으로 설계돼 있다.
사기 피해가 발생하면 은행은 종종 이렇게 말한다. “이미 이체가 완료됐다”, “고객의 자발적 거래였다”. 법적으로 틀린 말은 아닐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이 논리가 반복되면서, 사기 피해에 대한 금융권의 책임 범위가 지나치게 축소됐다는 점이다.
은행은 자금 세탁 방지와 테러 자금 차단에는 적극적이다. 법적 책임이 명확하기 때문이다. 반면 사기 피해자의 자금은 ‘개인 거래’라는 이유로 보호의 우선순위에서 밀린다. 그 결과, 금융 시스템은 범죄에는 빠르게 반응하지만, 피해자에게는 느리게 반응하는 구조를 갖게 됐다.
◇ 플랫폼: 중개자라는 말의 그늘
메신저와 온라인 플랫폼은 오늘날 사기의 주요 무대다. 사기범들은 플랫폼을 통해 접근하고, 관계를 형성하며, 신뢰를 구축한다. 그럼에도 플랫폼 기업들은 일관되게 자신들을 ‘중립적 중개자’로 규정한다. 대화는 사적 영역이며, 개입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는 논리다.
문제는 이 중립성이 사실상 방조에 가까운 결과를 낳고 있다는 점이다. 플랫폼은 사용자 데이터를 가장 많이 보유한 주체다. 사기 패턴을 가장 먼저 감지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 그럼에도 적극적인 차단이나 사전 개입에는 소극적이다. 법적 책임이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다.
플랫폼이 책임을 회피할수록, 사기범들은 그 공간을 더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규제가 약한 곳으로 이동하는 것은 범죄의 본능이다. 지금의 구조는 플랫폼을 사기 범죄의 안전지대로 만들고 있다.
◇ 책임은 왜 항상 피해자에게 돌아오는가
정부는 말한다. “주의하라.”
은행은 말한다. “확인했어야 한다.”
플랫폼은 말한다. “사적 대화다.”
이 말들이 겹치는 지점에서 피해자는 홀로 남는다. 사기 피해자는 스스로 조심하지 못한 사람, 판단을 잘못한 사람으로 취급된다. 그러나 앞선 편들이 보여주듯, 오늘날 사기는 개인의 부주의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구조적으로 설계된 범죄다.
책임이 분산된 사회에서는 가장 약한 고리가 모든 부담을 진다. 사기 범죄에서 그 고리는 피해자다. 이 구조가 바뀌지 않는 한, 아무리 많은 캠페인과 경고가 있어도 사기는 줄어들기 어렵다.
◇ 책임 없는 권한은, 권한 없는 책임보다 위험하다
사기 범죄를 막을 수 있는 권한은 분명 존재한다. 정부는 제도를 만들 수 있고, 은행은 자금을 멈출 수 있으며, 플랫폼은 접촉을 차단할 수 있다. 문제는 이 권한들이 하나의 책임으로 묶여 있지 않다는 점이다.
지금의 구조에서는 실패해도 책임지는 주체가 없다. 그래서 같은 문제가 반복된다. 사기 피해를 줄이기 위한 논의가 진정성을 가지려면, 반드시 답해야 할 질문이 있다.
"누가, 어디까지 책임질 것인가."
다음 편에서는 이 책임 공백이 어떤 방식으로 법과 제도의 허점으로 굳어졌는지를 살펴본다.
왜 처벌은 약하고, 왜 범죄는 반복되는지, 그 연결고리를 추적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