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 사회의 구조] ①한국은 왜 ‘주 1회 사기 사회’가 됐나
▷사기는 사건이 아니라 환경이 됐다
▷개인의 부주의로는 설명되지 않는 구조적 범죄
Global Anti-Scam Alliance(GASA)가 2025년 발표한 ‘State of Scams in South Korea 2025’ 보고서(이미지=GASA, 2025)
[위즈경제] 김영진 기자 = 이 기획은 Global Anti-Scam Alliance(GASA)가 2025년 발표한 ‘State of Scams in South Korea 2025’ 보고서를 분석의 출발점으로 삼았다. 해당 보고서는 전국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한국 사회에서 사기 범죄가 얼마나 일상화·구조화되어 있는지를 수치로 보여준다.
위즈경제는 이 데이터를 단순 소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사기 범죄가 개인의 부주의 문제가 아닌 사회적 위험 시스템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누가 피해자가 되었는지보다, 왜 누구나 피해자가 될 수밖에 없는 구조가 만들어졌는지, 그리고 그 책임은 어디에 있는지를 묻고자 한다.[편집자주]
한국 사회에서 사기는 더 이상 ‘사건’이 아니다. 그것은 환경이고, 조건이며, 일상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성인의 44%가 지난 1년 동안 한 차례 이상 사기 시도를 경험했다. 문제는 비율이 아니라 빈도다. 사기 시도에 노출되는 평균 횟수는 연 56회, 즉 일주일에 한 번꼴이다. 이는 사기가 특정 순간에 발생하는 우발적 범죄가 아니라, 일상 속에 상시적으로 깔려 있는 위험이라는 뜻이다.
이 수치를 마주하고도 여전히 “나는 당한 적이 없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 질문 앞에서 한국 사회는 불편해진다. 사기를 당하지 않은 사람이 ‘현명해서’가 아니라, 아직 차례가 오지 않았을 가능성이 더 크기 때문이다. 사기는 이제 피해자의 선택이 아니라 사회가 만들어낸 확률 게임에 가깝다.
◇ “사기를 당한 사람이 아니라, 아직 안 당한 사람일 뿐”
사기 범죄를 다루는 대부분의 보도는 ‘피해자 사례’에 집중한다. 누가 얼마를 잃었는지, 얼마나 교묘한 수법이었는지를 나열한다. 그러나 이 접근법은 중요한 사실 하나를 놓친다. 사기의 본질은 ‘누가 속았느냐’가 아니라 ‘왜 이렇게 많이 노출되느냐’에 있다는 점이다.
보고서는 사기 노출이 특정 계층이나 연령에 국한되지 않는다고 밝힌다. 고학력자, 청년층, 중장년층 모두 사기의 표적이 된다. 다시 말해 사기는 ‘취약한 개인’을 골라서 벌어지는 범죄가 아니라, 모든 개인을 향해 무차별적으로 열려 있는 구조적 범죄다.
그럼에도 한국 사회는 여전히 사기를 ‘개인의 판단 실패’로 환원한다. “왜 그 말을 믿었느냐”, “왜 확인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이 반복된다. 하지만 사기 시도가 일주일에 한 번씩 울리는 사회에서, 모든 개인에게 완벽한 판단과 경계를 요구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것이 바로 사기가 개인 문제가 아닌 이유다.
◇ 일주일에 한 번 울리는 경고음, 멈추지 않는 이유
사기 시도의 70%는 문자·전화·이메일·메신저 등 ‘직접 메시지’ 채널을 통해 이뤄진다. 이는 사기가 공공 영역이 아니라 가장 사적인 영역을 침범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휴대전화 알림, 메신저 대화창, 이메일 수신함은 개인이 가장 자주, 가장 무방비로 열어보는 공간이다.
이 구조에서 “조심하면 된다”는 조언은 무책임하다. 사기는 이제 사용자의 선택이 아니라 플랫폼과 시스템 설계의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제도는 여전히 사후 대응에 머물러 있다. 피해가 발생하면 신고하라고 말하고, 그 이후는 개인의 운에 맡긴다.
보고서에 따르면 사기 피해자의 90%가 신고를 했지만, 피해 금액을 일부라도 회수한 비율은 31%에 불과했다. 신고 이후 절반 이상은 ‘아무 조치가 없었거나 결과를 알 수 없었다’고 답했다. 이는 단순한 행정 미비가 아니다. 제도가 작동하지 않는다는 명백한 신호다.
◇ 사기는 끝났지만, 피해는 끝나지 않는다
사기는 돈을 빼앗고 끝나지 않는다. 피해자의 71%는 상당한 스트레스를 겪었고, 절반 이상은 정신적 건강에 부정적 영향을 받았다고 답했다. 가족 간 긴장과 불신, 소비 위축, 자기 비난까지 이어진다. 그럼에도 이 비용은 통계에 잡히지 않는다. 사회는 이를 ‘개인의 감내 영역’으로 밀어낸다.
문제는 이 구조가 반복될수록 사기는 더 쉬워진다는 점이다. 신고해도 달라지지 않고, 책임지는 주체도 보이지 않는 사회에서 범죄자는 점점 대담해진다. 사기 범죄가 줄지 않는 이유는 사기꾼이 많아서가 아니라, 사기를 방치해도 되는 구조가 유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 “사기를 개인 탓으로 돌리는 사회는 공범이다”
한국 사회는 사기를 비난하면서도 동시에 방조해 왔다. 사기를 당한 개인에게는 “조심하지 그랬냐”고 묻고, 사기를 막아야 할 시스템에는 아무 책임도 묻지 않는다. 이 구조에서 사기는 반복될 수밖에 없다.
사기는 더 이상 ‘범죄자 대 피해자’의 문제가 아니다. 플랫폼의 설계, 금융 시스템의 책임 회피, 정부의 분절된 대응이 결합된 사회적 결과물이다. 일주일에 한 번씩 울리는 사기 경고음은 개인의 부주의가 아니라, 국가와 제도가 실패하고 있다는 신호다.
이 연재는 그 신호를 외면하지 않기 위해 시작됐다. 다음 편에서는 한국에서 가장 빈번하게 발생하는 투자사기와 사칭사기를 통해, 왜 ‘고수익’과 ‘권위’가 결합될 때 사기는 폭발적으로 확산되는지 구조를 추적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