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바이오헬스] ③활용인가 통제인가… 바이오 데이터 전략의 불편한 질문들
▷ 개인정보 보호와 산업 혁신, 충돌이 아닌 조정의 문제
▷ 제도는 설계됐지만, 신뢰는 아직이다
일러스트=챗GPT로 생성된 이미지
[위즈경제] 조중환 기자 = 한국은행 경제연구원이 제시한 ‘국가 승인형 바이오 데이터 개방 체계’는 바이오헬스 산업의 구조적 병목을 해소하기 위한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데이터 활용의 불확실성을 줄이고, 공공이 신뢰 보증자로 나서 산업과 연구를 촉진하겠다는 구상은 분명 기존 접근과는 다른 방향이다.
그러나 제도가 설계됐다고 해서 곧바로 데이터가 흐르고 혁신이 촉진되는 것은 아니다. 보고서 역시 이 점을 분명히 한다. 바이오 데이터 전략의 성패는 기술적 완성도가 아니라, 개인정보 보호와 활용을 둘러싼 사회적 신뢰를 얼마나 확보할 수 있는지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 개인정보 보호, 완화가 아니라 재설계의 문제
바이오 데이터는 개인정보 가운데서도 가장 민감한 영역에 속한다. 질병 이력, 유전자 정보, 신체적 특성은 유출될 경우 보험 가입 제한이나 채용 차별, 사회적 낙인 등 심각한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 이 때문에 현행 개인정보보호법과 의료법, 생명윤리 관련 법령은 바이오 데이터에 대해 엄격한 보호 체계를 적용하고 있다.
보고서는 이러한 보호 체계 자체를 문제 삼지 않는다. 오히려 문제는 보호와 활용이 ‘제로섬’ 관계로 인식돼 왔다는 점이라고 지적한다. 보호를 강화할수록 활용이 위축되고, 활용을 늘리면 보호가 약화된다는 이분법적 사고가 데이터 활용을 가로막아 왔다는 것이다.
국가 승인형 체계는 이 지점을 겨냥한다. 무차별적인 규제 완화가 아니라, 공익성과 연구 타당성이 검증된 경우에 한해 활용을 허용하고, 그 범위와 책임을 명확히 하겠다는 접근이다. 보호와 활용을 대립 개념이 아닌, ‘신뢰를 매개로 한 조정의 문제’로 재정의하겠다는 의미다.
◇ 공공 데이터, 누가 이익을 가져가는가
또 다른 쟁점은 공공이 축적한 바이오 데이터의 활용 주체와 이익 배분 문제다. 공공 재원으로 수집·관리된 데이터가 민간 기업의 수익 창출로 이어질 경우, 사회적 정당성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지에 대한 질문이 뒤따른다.
보고서는 이 문제를 회피하지 않는다. 오히려 공공 데이터의 산업적 활용이 전면 차단될 경우, 데이터는 가치 창출로 이어지지 못한 채 ‘잠자는 자산’으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한다. 실제로 국내 핵심 공공 보건 데이터셋은 영리 기업이나 해외 연구기관에서 활용된 사례가 거의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핵심은 ‘누가 활용하느냐’보다 ‘어떤 조건에서 활용하느냐’다. 공익적 목적, 투명한 승인 절차, 성과의 사회적 환류 구조가 함께 설계되지 않는다면 데이터 개방은 또 다른 논란을 낳을 수 있다.
◇ 현장은 준비돼 있는가
제도의 성공 여부는 결국 현장에서 판가름 난다. 병원과 연구기관, 기업이 데이터 정제와 제공에 실제로 참여할 유인이 있는지, 그 비용과 책임은 어떻게 분담할 것인지가 관건이다.
보고서는 데이터 정제와 품질 관리가 전체 프로젝트 기간의 상당 부분을 차지할 정도로 많은 자원과 전문성을 요구한다고 지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행 구조에서는 데이터 관리 기관이 비용과 법적 책임을 떠안고, 활용 성과는 외부로 이전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로 인해 데이터 제공에 소극적인 태도가 구조화됐다는 분석이다.
이러한 인센티브 불일치를 해소하지 못한다면, 아무리 정교한 제도를 설계하더라도 현장에서 작동하기 어렵다. 보고서가 국가의 역할을 ‘전면적 운영자’가 아닌 ‘시장 조성자’로 설정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 해외 사례가 던지는 경고
해외 사례는 참고할 만한 교훈을 제공한다. 핀란드는 공공 주도의 바이오 데이터 개방 체계를 구축했지만, 승인 절차가 길어지고 활용 속도가 떨어지면서 민간 혁신을 제약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반면 북유럽 일부 국가는 공공의 엄격한 관리와 민간의 자율적 활용을 병행하며 비교적 유연한 모델을 구축했다.
보고서는 이러한 사례를 통해 “국가가 모든 것을 직접 통제하려 할수록 오히려 데이터 활용은 위축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신뢰를 보증하되, 현장의 자율성과 속도를 훼손하지 않는 균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 국민은 동의할 준비가 돼 있는가
결국 바이오 데이터 전략의 최종 변수는 국민의 인식이다. 아무리 정교한 제도라도 데이터 제공에 대한 사회적 동의가 없다면 작동하기 어렵다. 보고서가 별도의 분석을 통해 개인정보 보호 정책에 대한 정보 제공이 데이터 제공 의향에 영향을 미친다고 강조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는 바이오 데이터 전략이 단순한 산업 정책이 아니라, 사회적 계약의 성격을 띤다는 점을 시사한다. 데이터는 자원이기 이전에 신뢰의 산물이다.
◇ 바이오 데이터, 마지막 관문은 ‘합의’
한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바이오 데이터 잠재력을 보유한 국가다. 그러나 이를 산업 경쟁력으로 전환할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다. 제도는 설계됐고, 전략도 제시됐다. 이제 남은 것은 보호와 활용 사이에서 사회적 합의를 어떻게 만들어갈 것인가다.
바이오 데이터 전략의 성패는 법 조항이나 플랫폼 구축이 아니라, 국민이 이 전환을 ‘수용할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 데이터 없는 바이오 강국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신뢰 없는 데이터 전략 역시 성공할 수 없다. 이 간극을 어떻게 메울 것인지가 한국 바이오헬스 산업의 다음 과제가 되고 있다.
첨단 바이오헬스 산업은 신약 개발과 정밀의료, 디지털 헬스케어 등 미래 성장 동력으로 주목받고 있지만, 산업 경쟁력의 핵심은 개별 기술을 넘어 ‘데이터 활용 역량’으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 방대한 임상·유전체·의료 데이터가 축적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내 바이오 데이터는 기관별로 분절돼 산업적 활용에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는 지적이 이어져 왔다.
이에 본지는 9일 한국은행 경제연구원이 발간한 「BOK 이슈노트: 첨단 바이오헬스 산업 육성방안」을 토대로, 바이오 데이터 활용 기반 구축의 필요성과 정책적 방향, 그리고 현장에서 마주할 과제를 3편의 기획연재로 점검한다. 데이터 중심 산업 전환이 실제 경쟁력으로 이어지기 위해 무엇이 바뀌어야 하는지를 짚어본다.[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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