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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바이오헬스] ①기술은 있는데 성과는 없다… 바이오헬스의 병목은 ‘데이터’

▷ 세계는 데이터로 달리는데, 한국은 왜 제자리인가
▷ 광산은 있지만 공장이 없다… 바이오 데이터 활용의 구조적 한계

입력 : 2026.02.11 14:46 수정 : 2026.02.11 15:01
[K-바이오헬스] ①기술은 있는데 성과는 없다… 바이오헬스의 병목은 ‘데이터’ AI·생명공학 융합으로 글로벌 바이오헬스 시장은 연평균 5% 이상 성장 전망. 신약·의료기기 개발의 중심이 데이터와 알고리즘으로 이동하고 있다.(그래프=한국은행 경제연구원)
 

[위즈경제] 조중환 기자 = 첨단 바이오헬스 산업은 신약 개발과 정밀의료, 디지털 헬스케어 등 미래 성장 동력으로 주목받고 있지만, 산업 경쟁력의 핵심은 개별 기술을 넘어 ‘데이터 활용 역량’으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 방대한 임상·유전체·의료 데이터가 축적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내 바이오 데이터는 기관별로 분절돼 산업적 활용에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는 지적이 이어져 왔다. 


이에 본지는 9일 한국은행 경제연구원이 발간한 ‘BOK 이슈노트: 첨단 바이오헬스 산업 육성방안’을 토대로, 바이오 데이터 활용 기반 구축의 필요성과 정책적 방향, 그리고 현장에서 마주할 과제를 3편의 기획연재로 점검한다. 데이터 중심 산업 전환이 실제 경쟁력으로 이어지기 위해 무엇이 바뀌어야 하는지를 짚어본다.[편집자주]

 

◇ 바이오헬스의 승부처는 실험실이 아니라 데이터다

 

바이오헬스 산업은 오랫동안 ‘미래 산업’이라는 이름으로 불려왔다. 그러나 최근 들어 이 산업을 바라보는 시선에는 새로운 전제가 깔리고 있다. 더 이상 연구 장비나 실험 인프라만으로는 경쟁력을 설명할 수 없다는 점이다. 인공지능(AI)과 생명공학의 결합은 바이오헬스 산업의 중심축을 빠르게 이동시키고 있다. 신약 후보 물질을 발굴하고, 임상 성공 가능성을 예측하며, 환자 맞춤형 치료 전략을 설계하는 과정에서 데이터와 알고리즘의 역할은 절대적이다.

 

한국은행 경제연구원은 이러한 변화를 “바이오헬스 산업의 패러다임 전환”으로 규정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글로벌 바이오헬스 시장은 향후 연평균 5% 안팎의 성장세를 이어갈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전통 제조업 성장률을 크게 웃도는 수치다.

 

문제는 이러한 구조 변화 속에서 한국 바이오헬스 산업이 충분히 속도를 내고 있느냐는 점이다. 바이오시밀러와 위탁생산(CDMO) 분야에서는 비교적 빠른 추격에 성공했지만, 고부가가치를 창출하는 혁신 신약과 첨단 의료기기 영역에서는 여전히 ‘후발 주자’라는 평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는 단순히 기업 역량의 문제가 아니라, 산업을 떠받치는 구조적 기반의 문제라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 세계 최고 수준의 데이터 인프라, 그러나 산업은 목말라 있다

 

한국은 바이오 데이터 측면에서 분명한 강점을 지닌 국가다. 단일 건강보험 체계를 통해 전 국민의 진료·투약·검진 정보가 체계적으로 축적되고 있으며, 전자의무기록(EMR) 역시 대부분의 의료기관에 보급돼 있다. 여기에 주민등록번호라는 단일 식별체계를 활용해 개인의 의료 이력을 장기간에 걸쳐 연계·추적할 수 있다는 점은 세계적으로도 드문 조건이다.

 

 

단일 건강보험 체계와 EMR 보급을 기반으로 한 한국의 바이오 데이터 수집·연계 인프라 현황. 데이터 가용성 측면에서는 OECD 최상위권으로 평가된다.(표/그래프=한국은행 경제연구원)

보고서는 이러한 인프라를 “국가 단위의 대규모 고품질 바이오 데이터를 구축할 수 있는 잠재력”이라고 평가했다. 실제로 데이터의 양과 대표성만 놓고 보면 한국은 선진국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 그러나 산업 현장에서 체감하는 현실은 다르다. 데이터는 존재하지만, 연구와 산업으로 이어지는 ‘통로’가 좁다는 것이다.

 

의료 데이터의 상당수는 진료나 행정 목적의 원본 자료로 남아 있다. AI 학습이나 신약 개발에 활용하기 위해서는 질병 코드의 정합성 검증, 치료 결과 기반의 라벨링, 오류 데이터 제거 등 복잡한 정제 과정이 필수적이다. 이 과정은 전체 프로젝트 기간의 상당 부분을 차지할 정도로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들며, 고도의 의학적 전문성도 요구된다. 결국 개별 기업이나 연구자가 감당하기에는 부담이 크다는 것이 보고서의 진단이다.

 

◇ “광산은 있는데, 가공 공장이 없다”

 

한국은행 경제연구원은 국내 바이오 데이터 활용 현실을 “다이아몬드 원석을 채굴할 광산은 풍부하지만, 이를 고부가가치 보석으로 가공하고 유통할 공장과 시장이 없는 상황”에 비유했다. 이 표현은 산업 현장의 문제의식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의료·헬스케어 분야 AI 기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도 이러한 인식은 수치로 확인된다. ‘데이터 확보 및 품질 문제’는 의료·헬스케어 AI 기업이 꼽은 가장 큰 경영 애로 요인이었다. 이는 전체 AI 기업 평균보다도 높은 수준으로, 바이오헬스 분야에서 데이터 문제가 특히 심각하게 작용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의료·헬스케어 AI 기업이 꼽은 최대 경영 애로 요인은 ‘데이터 확보·품질 문제’. 기술 역량보다 구조적 제약이 혁신을 가로막고 있다. (그래프=한국은행 경제연구원)

 

특히 공공이 관리하는 핵심 보건 데이터셋의 활용 범위는 제한적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핵심 공공 보건 데이터가 영리 기업이나 해외 연구기관에 활용된 사례는 사실상 전무한 것으로 나타났다. 공공 데이터의 상업적 활용과 국제 공동 연구가 활발한 북유럽 국가, 싱가포르와 대비되는 대목이다. 데이터는 쌓여 있지만, 산업과 연구로 이어지지 못한 채 잠들어 있는 셈이다.

 

◇ 기술 부족이 아니라 구조적 병목

 

이 같은 상황을 단순히 ‘기술 경쟁력 부족’으로 설명하는 것은 정확하지 않다. 보고서는 데이터 활용을 가로막는 근본 원인으로 제도와 구조의 문제를 지목한다. 개인정보 보호 규제, 데이터 소유권과 책임 소재의 불명확성, 이해관계자 간 인센티브 불일치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데이터 활용이 위축되고 있다는 것이다.

 

정보주체는 프라이버시 침해를 우려하고, 데이터 관리 기관은 법적·평판 리스크를 부담스러워한다. 기업과 연구자는 높은 접근 비용과 불확실성 앞에서 투자를 주저한다. 이 과정에서 데이터는 사회 전체의 혁신 자산이 되지 못하고, 각 기관의 ‘관리 대상’으로만 남는다. 한국은행은 이를 데이터 활용을 둘러싼 전형적인 ‘시장 실패’로 규정했다.

 

이제 질문은 분명해졌다. 한국에 필요한 것은 데이터를 더 많이 모으는 전략이 아니다. 이미 데이터의 양과 잠재력은 충분하다. 관건은 이를 안전하게 공유하고, 연구와 산업이 실제로 활용할 수 있도록 제도를 설계하는 일이다.

 

한국은행이 보고서에서 ‘국가 승인형 바이오 데이터 개방 체계’를 해법으로 제시한 것도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개인정보 보호와 산업 혁신을 대립 개념이 아닌, 신뢰를 기반으로 한 상호 보완적 가치로 재설정하겠다는 구상이다.

 

다음 편에서는 한국은행과 정부가 제시한 바이오 데이터 전략의 구체적 내용과 정책적 의미를 집중적으로 살펴본다. 선언을 넘어 실제 산업 경쟁력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 그 설계도를 본격적으로 해부한다.


 
조중환 사진
조중환 기자  highest@wisdo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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