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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4섬의 첫 페이지, 섬티아고 순례길에 서다 [길위기행: 신안군편 ①]

▷바다와 예술이 빚어낸 첫 여정, 섬티아고의 문을 열다
▷감사의 빛이 물드는 곳까지, 절반의 길 위에서 만난 이야기

입력 : 2025.08.13 10:30 수정 : 2025.08.13 15:32
1004섬의 첫 페이지, 섬티아고 순례길에 서다 [길위기행: 신안군편 ①] 순례자의 섬 안내지도(이미지=신안군)
 

[위즈경제] 전현규 기자 = 천사의 고장, 전라남도 신안군.

 

물결 위에 흩뿌려진 1004개의 섬, 전남 신안은 마치 바다 위에 내려앉은 별무리처럼 반짝인다. 순례는 서울에서 시작된다. 

 

KTX를 타고 남쪽 끝 목포까지 단숨에 달려가면, 바다 내음을 품은 도시가 여행자를 맞이한다. 목포역에서 차량으로 40여 분 달리면 송공항 여객선터미널에 닿는다. 

 

이곳에서 하루 4차례 운항하는 여객선을 타면 병풍도와 소기점도를 향한 여정이 시작된다.

 

 

송공에서 병풍까지 오가는 여객선(사진=위즈경제)

 

또 다른 길은 송도항에서 배를 타고 병풍도를 거쳐 들어가는 방법이지만, 이 경우에는 차량이 필요하다. 반면, 걸으며 섬의 매력을 온전히 느끼고 싶다면 송공항에서 출발하는 여정이 제격이다.

 

배는 잔잔한 물결을 헤치며 바다를 가르고 나아간다. 어느 순간, 거대한 교각이 시야에 들어오고, 선박은 장엄한 천사대교 아래를 조용히 통과한다. 뱃머리 위로 쏟아지는 햇살과 다리 밑으로 스치는 파도 소리가 어우러져, 도심에서 묵은 생각들을 하나둘 털어낸다.

 

 

여객선에서 바라본 천사대교(사진=위즈경제)

 

한 시간 남짓 이어진 항해 끝에 마침내 대기점도에 다다른다. 이 작은 섬은 '섬티아고 순례길'의 새로운 출발점이다. 항구에 내리는 순간, 길은 조용히 몸을 내어준다. 

 

마을과 바다, 바람과 햇살이 엮인 풍경 속에서 걷는 순례는 단순한 여행이 아니라, 스스로를 돌아보는 시간이다.

 

‘섬티아고 순례길’은 스페인의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영감을 받아 조성된 도보 여행길로, 총 12개 코스로 구성돼 있다. 섬과 섬을 잇는 해안길을 따라 걷다 보면, 바위 위에 놓인 예술 작품, 푸른 들판 너머로 펼쳐지는 갯벌, 그리고 섬마을 사람들이 전하는 따스한 인사말이 길에 이야기를 더한다.

 

고요한 바다 위를 걸으며 일상에서 멀어지고, 그리운 것들과 조금씩 가까워진다. 그렇게 순례자는 길 위에서 자신만의 ‘섬티아고’를 만난다.

 

1코스 | 건강의 집 (베드로)

작가: 김윤환 | 위치: 대기점도 선착장

 

섬티아고 제1코스 건강의 집(사진=위즈경제) 

 

순례길의 시작점인 대기점도 선착장에는 ‘건강의 집’이라는 이름의 예배당이 방문객을 맞는다. 새하얀 회벽과 푸른 돔 지붕으로 이국적인 인상을 주며, 그리스 산토리니를 연상시키는 외관이 바다 풍경과 조화를 이룬다. 

 

건물 앞에는 작은 종이 설치되어 있으며, 순례자들은 이 종을 울리며 여정을 시작하는 의식을 치른다. 내부는 단정한 수채화와 나무 십자가, 촛불 모형 등이 설치돼 있으며, 창문을 통해 바다가 한눈에 들어온다. 

 

‘몸과 마음의 건강한 출발’을 상징하는 이 공간은 여행의 긴 숨을 고르는 출발점이다.

 

2코스 | 생각하는 집 (안드레아)

작가: 이원석 | 위치: 북촌노둣길 입구

 

섬티아고 제2코스 생각하는 집(사진=위즈경제)

  

노둣길 초입의 언덕 위에 자리한 ‘생각하는 집’은 해와 달을 상징하는 두 개의 지붕으로 구성된 독특한 건축물이 눈길을 끈다. 

 

내부에는 고양이 부조, 평상 형태의 돌 벤치, 나무기둥으로 구성된 단순한 공간이 마련돼 있으며, 벽면에는 ‘사유’를 유도하는 문구들이 새겨져 있다. 

 

조형물의 창을 통해 바라보는 갯벌과 갈대숲, 멀리 보이는 마을의 풍경이 함께 어우러져 묵상과 정지의 시간을 만들어준다. 이곳은 걷기 전, 자신의 마음을 정비하고 가야할 길을 되새기는 장소다.

 

3코스 | 그리움의 집 (야고보)

작가: 김강·손민아 | 위치: 북촌저수지 위

 

섬티아고 제3코스 그리움의 집(사진=위즈경제)

 

붉은 기와지붕과 나무기둥, 흙 담벼락으로 구성된 이 조형예배당은 ‘그리움’을 주제로 한 아늑한 공간이다. 

 

소박한 시골집을 연상시키는 건축물 내부에는 나무 의자와 촛불, 벽면에 새겨진 십자가 조형이 설치돼 있다. 창문을 통해 빛이 부드럽게 들어오고, 저수지의 수면 위에 반사된 풍경이 고요하게 마음을 가라앉힌다.

 

이곳은 누구나 품고 있는 아련한 기억과 그리움을 되새기기에 적절한 장소다.

 

4코스 | 생명 평화의 집 (요한)

작가: 박영균 | 위치: 대기점도 남촌마을 인근

 

섬티아고 제4코스 생명 평화의 집(사진=위즈경제)

 

4코스는 둥글고 개방적인 형태의 원형 예배당으로, 자연과 하나 되는 공간을 지향한다. 

 

천장 중앙에는 둥근 채광창이 설치돼 있어 시간에 따라 달라지는 빛의 흐름을 느낄 수 있다. 내부에는 목재 원탁과 벽면 선반, 철제 십자가가 배치되어 있으며, 창을 통해 바다와 들판, 마을의 풍경이 한 눈에 들어온다. 

 

생명의 시작과 끝, 평화와 갈등의 경계에서 그 균형을 성찰하는 공간으로 구성돼 있다.

 

5코스 | 행복의 집 (필립보)

작가: 장미셀·브루노 파코 | 위치: 노둣길 입구 해안

 

섬티아고 제5코스 행복의 집(사진=위즈경제)

  

‘행복의 집’은 갯돌과 적벽돌을 조합해 지은 건물로, 프랑스 남부풍의 건축 양식이 섬의 해안 풍경과 어우러진다. 

 

지붕 위엔 물고기 모양 장식이 설치돼 있으며, 내부에는 바닷마을 어민의 생업을 상징하는 조형 요소들이 곳곳에 담겨 있다. 

 

삶의 단순함과 생업의 기쁨, 작은 성취들이 얼마나 큰 행복으로 이어지는지를 상기시키는 공간이다.

 

6코스 | 감사의 집 (바르톨로메오)

작가: 장미셀·얄룩 | 위치: 소기점도 호수 위

 

섬티아고 제6코스 감사의 집(사진=위즈경제)

 

호수 한가운데 설치된 이 예배당은 마치 수면 위에 떠 있는 듯한 인상을 준다. 

 

건물 외벽 전체가 스테인드글라스로 구성되어 있어, 시간대에 따라 내부 분위기가 극적으로 달라진다. 아침엔 부드러운 푸른빛, 저녁엔 따스한 주황빛으로 물드는 이 공간은 ‘감사’라는 주제를 시각적으로 표현한다. 

 

바다와 빛, 풍경과 마음이 조용히 맞닿는 지점에서 감사의 마음이 자연스럽게 피어난다.

 

감사의 집을 나설 즈음, 바람은 조금 더 부드러워지고, 발걸음은 한결 가벼워진다. 하지만 길은 아직 절반도 남았다. 저 멀리 호숫가와 작은 마을, 그리고 섬의 끝자락까지 이어지는 길목이 순례자를 기다리고 있다.

 

그곳에는 ‘인연’과 ‘기쁨’, ‘사랑’과 ‘지혜’가 기다린다고 한다.

 

그렇게 걷다 보면, 하루의 여정을 마친 순례자를 위해 섬티아고 게스트하우스가 문을 연다. 소박하지만 정갈한 공간, 창밖으로 스치는 바람과 바다 냄새는 지친 몸을 부드럽게 감싸준다.

 

이곳에서의 하룻밤은 다음 길을 향한 힘을 다시 채워 넣는 시간이다.

 

이 이야기는, 다음 편에서 계속된다.

 

 

섬티아고 게스트하우스가 순례자의 지친 몸을 위로한다.(사진=위즈경제)

 


 
전현규 사진
전현규 기자  raoniel@wisdo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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