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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생산성의 착시④] 신입이 배우던 일을 AI가 한다…숙련 경로도 다시 짜야

▷표준화 업무 자동화되면 저연차 학습 기회 약화 우려
▷AI 생산성 실현하려면 업무 재설계·직무 재배치·인재 육성 함께 가야

입력 : 2026-06-11 10:37
[AI 생산성의 착시④] 신입이 배우던 일을 AI가 한다…숙련 경로도 다시 짜야 생성형 AI(쳇GPT)의 도움을 받아 시각화한 이미지입니다.
 

[위즈경제] 조중환 기자 = 생성형 AI가 반복 업무를 대신하기 시작하면서 기업의 고민도 달라지고 있다. 지금까지 관심이 “AI로 일을 얼마나 줄일 수 있느냐”에 쏠렸다면, 앞으로는 “AI가 줄인 일만큼 사람은 무엇을 배울 것인가”가 더 중요한 질문이 될 수 있다.

 

한국은행 조사국 고용연구팀이 8일 내놓은 ‘BOK 이슈노트: AI 도입은 생산성을 높이는가? 초기 3년의 효과 분석’ 보고서는 AI의 생산성 효과를 실현하려면 단순한 도구 도입을 넘어 업무 구조 자체를 다시 설계해야 한다고 짚었다. 

 

생성형 AI는 이미 개별 작업의 효율성을 높이는 단계에는 들어섰지만, 조직 전체의 생산성 향상으로 충분히 전환되지는 못했다고 보고서는 결론지었다. AI가 업무시간을 줄였더라도 그 시간이 새로운 산출로 이어지려면 업무 배치와 평가, 보상, 인력 운영 방식까지 함께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표준화 업무와 열린 업무를 나눠야 한다

 

보고서는 AI 도입 이후의 업무를 크게 ‘표준화 업무’와 ‘열린 업무’로 구분할 필요가 있다고 봤다. 표준화 업무는 결과물과 평가 기준이 비교적 명확한 일이다. 보고서 요약, 회계 처리, 규정 검토, 정형화된 문서 작성, 데이터 정리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이런 업무는 AI가 상당 부분을 맡을 수 있다. 다만 단순히 직원에게 AI 사용을 허용하는 수준으로는 부족하다. 입력 데이터 형식을 맞추고, 업무 단위를 나누고, 결과 검증 절차와 예외 처리 기준을 정해야 한다. 그래야 AI가 만든 결과물을 사람이 다시 처음부터 손보는 비효율을 줄일 수 있다.

 

반면 열린 업무는 사람의 판단과 경험, 창의성이 중요한 영역이다. 신규 사업 기획, 전략 수립, 정책 설계, 연구개발, 복합적 문제 해결 등이 대표적이다. 이 영역에서 AI는 사람을 대체하는 장치라기보다 사고를 넓히는 보조 도구에 가깝다. 아이디어를 제시하고 초안을 만들 수는 있지만, 무엇을 선택하고 어떤 방향으로 책임 있게 밀고 갈지는 결국 사람의 몫이다.


생성형 AI(쳇GPT)의 도움을 받아 시각화하고 기자가 최종 검토 및 확인해 제작한 그래픽입니다. 그래픽에 포함된 데이터와 내용은 기자가 직접 취재한 결과물입니다.
 

◇신입이 배우던 일이 사라질 수 있다

 

문제는 표준화 업무가 그동안 신입과 저연차 근로자의 학습 통로였다는 점이다. 자료를 정리하고, 기초 분석을 하고, 정형화된 보고서를 쓰는 과정은 단순 잡무가 아니었다. 조직의 언어를 익히고, 산업의 구조를 이해하며, 상급자의 판단 기준을 배우는 첫 단계였다.

 

그런데 이 업무가 AI 중심으로 빠르게 바뀌면 신입이 실무 감각을 쌓는 경로가 약해질 수 있다. 기업 입장에서는 단기적으로 효율이 높아질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복잡한 문제를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인력이 줄어드는 역효과가 생길 수 있다.

 

보고서는 이를 막기 위해 신입·저연차 인력이 열린 업무에 조기에 참여할 수 있는 구조를 마련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관찰, 보조, 주도 단계로 이어지는 참여 경로를 만들고, 숙련자가 AI로 절약한 시간을 멘토링과 코칭에 다시 투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AI가 자동화한 업무에 대해서도 결과만 받아들이는 데 그치지 않고 왜 그런 결과가 나왔는지 검증하는 훈련이 필요하다.

 

결국 AI 시대의 인재 육성은 “일을 덜 시키는 것”과 “배울 기회를 줄이는 것”을 구분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반복 업무를 줄이는 것은 필요하지만, 그 안에 들어 있던 학습 기능까지 함께 사라지면 조직의 미래 역량은 약해질 수밖에 없다.

 

이번 연재가 보여준 핵심은 AI가 생산성을 자동으로 가져다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AI는 시간을 줄일 수 있지만, 그 시간을 성과로 바꾸는 일은 조직의 몫이다. 더 나아가 AI가 반복 업무를 줄이는 순간, 기업은 사람을 키우는 방식까지 다시 고민해야 한다.

 

지금까지 많은 기업은 신입에게 비교적 단순한 일을 맡기고, 그 과정을 통해 서서히 판단력을 익히게 했다. 그러나 AI가 그 단순한 일을 빠르게 처리하게 되면 기존의 도제식 학습 구조는 흔들릴 수밖에 없다. 

 

신입은 더 빨리 열린 업무에 노출돼야 하지만, 준비 없이 복잡한 업무에 던져지는 것은 또 다른 부담이 된다. 따라서 기업은 AI 활용 교육만이 아니라 판단력, 검증 능력, 문제 해결력을 키우는 훈련 체계를 함께 만들어야 한다.

 

정책당국도 AI 보급률이나 활용률만 볼 일이 아니다. 어느 산업에서 어떤 업무가 줄고 있는지, 줄어든 업무가 청년층의 숙련 형성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기업이 절약된 시간을 교육과 직무 전환에 쓰고 있는지까지 살펴야 한다. AI가 만든 효율이 일부 숙련자와 일부 직무에만 쌓인다면 생산성 향상은 제한적이고, 노동시장 격차는 더 커질 수 있다.

 

AI 시대의 경쟁력은 가장 먼저 도입한 기업이 아니라, 줄어든 일을 새로운 학습과 성과로 바꾼 기업이 가져갈 가능성이 크다. 기술은 일의 속도를 바꾸지만, 사람을 키우는 구조를 바꾸지 못하면 생산성 혁신은 오래가지 못한다. AI가 반복 업무를 덜어낸 자리에 어떤 경험과 책임, 성장의 기회를 채울 것인가. 이것이 생산성 논쟁 이후 한국 노동시장이 마주할 다음 질문이다.

 
조중환 사진
조중환 기자  highest@wisdo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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