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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조 달러로 커진 ‘디지털 자금 이동’… 스테이블코인이 바꾸는 국제금융 질서

▷ 투자에서 송금으로… 국경간 암호화 자산 거래, 구조적 전환 진입
▷ “달러 약화 아닌 디지털 재구성”… 한국 외환·결제 인프라 재설계 필요

입력 : 2026.02.27 10:36 수정 : 2026.02.27 11:02
2.5조 달러로 커진 ‘디지털 자금 이동’… 스테이블코인이 바꾸는 국제금융 질서 일러스트=챗GPT로 생성된 이미지
 

[위즈경제] 조중환 기자 = 2024년 기준 국경간 암호화 자산 거래 규모가 약 2.5조 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됐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투기적 자산 이동으로 치부되던 디지털 자산 거래가 이제는 국제 자본 흐름의 한 축으로 자리 잡고 있다는 분석이다.

 

자본시장연구원이 발간한 보고서 ‘국경간 암호화 자산 거래 현황 및 시사점’에 따르면, 2021년 급증했던 국경간 암호화 자산 거래는 2022년 조정기를 거친 뒤 2024년 들어 다시 확장 국면에 진입했다. 특히 거래 구조의 변화가 두드러진다. 과거 비트코인(BTC)·이더리움(ETH) 등 가격 변동성이 큰 가치저장형 자산이 중심이었다면, 최근에는 스테이블코인이 거래의 주축으로 부상했다.

 

스테이블코인은 특정 법정통화 가치에 연동되도록 설계된 암호화 자산이다. 대표적으로 테더(USDT·Tether USD)와 USD코인(USDC·USD Coin)은 미국 달러 가치에 1대1로 연동된 ‘달러 연동형 스테이블코인’으로, 가격 급등락이 잦은 비트코인과 달리 사실상 디지털 달러처럼 사용된다. 이용자는 전통적 은행망을 거치지 않고도 블록체인 네트워크를 통해 달러 가치를 실시간 이전할 수 있다는 점에서, 국제 송금과 결제 수단으로 활용 범위가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

 

블록체인 기반 국경간 거래 현황(그래프=자본시장연구원)

 

실제 보고서에 따르면 2022년 이후 스테이블코인의 국경간 거래 규모는 비트코인과 이더리움을 크게 상회하고 있다. 이는 암호화 자산이 단순한 위험자산 투자 수단을 넘어 송금·결제·외화 확보 등 실사용 영역으로 확장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자산 유형에 따라 거래의 성격도 뚜렷하게 갈린다. 국제결제은행(BIS)과 국제통화기금(IMF)의 실증 연구를 종합하면, 비트코인과 같은 가치저장형 자산은 글로벌 금융사이클, 위험선호, 금리 변동 등 금융시장 요인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전형적인 위험자산 성격을 띤다. 반면 스테이블코인은 송금 비용, 환율 변동성, 인플레이션 압력, 자본통제 강도 등 실물경제 및 제도적 요인과 더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

 

특히 터키·러시아·베트남 등 신흥국에서 USDT 거래 비중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환율 불안과 금융 접근성 제약이 결합된 환경에서 스테이블코인이 비공식적 외화 대체 수단으로 활용될 가능성을 보여준다. 다시 말해, 스테이블코인은 달러를 대체하기보다는 달러의 국제 유통 방식을 디지털 형태로 재구성하는 매개체로 작동하고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국가별  국경간 거래량 및 비중(그래프=BIS, 자본시장연구원)

 

국제 금융 네트워크 구조에서도 차이가 드러난다. 암호화 자산의 국경간 거래 네트워크 밀도는 전통적 은행 간 청구권 네트워크보다 훨씬 높은 수준으로 나타난다. 거래가 특정 선진국에 집중되기보다는 다수 국가로 분산되는 특성을 보이며, 국제 자금 이동 경로가 다층화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 같은 흐름 속에서 공공 부문 역시 대응에 나서고 있다. 국제결제은행이 추진 중인 ‘프로젝트 아고라(Project Agora)’는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Central Bank Digital Currency)를 기반으로 한 새로운 국경간 정산 구조를 실험하고 있다. CBDC는 각국 중앙은행이 직접 발행하는 디지털 형태의 법정통화로, 민간 기업이 발행하는 스테이블코인과 달리 중앙은행이 지급을 보증한다는 점에서 법적 안정성이 높다.

 

프로젝트 아고라는 이러한 CBDC와 상업은행이 발행하는 토큰화 예금, 민간 디지털 자산을 하나의 네트워크에서 상호운용하도록 설계하는 구상이다. 이는 블록체인 기반 민간 결제 인프라를 제도권 금융 시스템 안으로 통합하려는 시도로 평가된다.

 

결국 국경간 암호화 자산 거래는 규제의 사각지대에 놓인 주변 시장이 아니라, 국제금융 질서의 작동 방식 자체를 재편할 수 있는 구조적 변수로 부상하고 있다.

 

이번 보고서가 던지는 핵심 질문은 “암호화 자산을 어떻게 규제할 것인가”가 아니라, “디지털 유동성이 작동하는 새로운 국제결제 환경 속에서 원화와 한국 금융기관의 역할을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라는 문제다.

 

스테이블코인의 확산은 기존 외환·자본거래 관리 체계가 여전히 은행망 중심으로 설계돼 있다는 사실을 다시 환기시킨다. 온체인과 오프체인에서 발생하는 자금 이동을 얼마나 정밀하게 모니터링할 수 있는지, 그리고 한국이 국제 디지털 결제 표준 논의에 얼마나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는지에 따라 향후 금융 주권의 범위도 달라질 수 있다.

 

디지털 자금 이동은 이미 현실이 됐다. 이제 남은 과제는 이를 통제의 대상에 머물게 할 것인지, 아니면 전략적 인프라로 재설계할 것인지에 대한 선택이다. 한국의 대응은 단순한 규제 논의를 넘어, 디지털 국제금융 질서 속에서 원화의 위상을 재정립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시점이다.


 
조중환 사진
조중환 기자  highest@wisdo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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