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 안 된 탈시설, 가족에 돌봄 전가”…거주시설 부모들, 자립지원 하위법령 재검토 촉구
▷“최중증·자폐성 장애인 빠진 시범사업으로 자립 가능성 일반화 어려워”
▷보호자 의견 반영·평생 집중지원·24시간 위기대응 등 5대 요구안 제시
▷시설 폐쇄 아닌 주거 선택권 보장 강조…“시설 기능 강화도 병행해야”
보건복지부와 한국장애인개발원은 15일 오전 10시 서울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장애인의 지역사회 자립 및 주거 전환 지원에 관한 법률 하위법령안 공청회’를 개최했다.
[위즈경제] 류으뜸 기자 =중증·발달장애인의 지역사회 자립을 지원하는 법과 하위법령이 당사자의 장애 특성과 돌봄 현실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지역사회 자립을 일률적으로 추진할 경우 필요한 돌봄이 가족에게 다시 전가될 수 있다는 우려다.
사단법인 장애인거주시설이용자부모회는 15일 보건복지부와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지방자치단체 등에 전달한 의견서를 통해 자립지원 법·정책의 전면 재검토와 하위법령 구체화를 요구했다.
부모회는 “장애인의 권리와 지역사회 통합이라는 방향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라면서도 “현재 추진되는 탈시설 중심 정책은 돌봄 난이도가 높은 중증·발달·복합장애인의 현실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지역사회 돌봄 기반은 여전히 부족하고 사고나 실종, 긴급 의료상황이 발생했을 때 책임 소재도 불분명하다”며 “대책 없이 시설 밖으로의 전환만 추진하면 돌봄 공백의 책임은 결국 가족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주거 선택권에 거주시설도 포함돼야”
부모회는 유엔 장애인권리협약 제19조의 핵심이 특정 주거 형태를 일률적으로 강요하지 않는 ‘주거 선택의 자유’에 있다고 강조했다.
이에 따라 신규 시설 입소를 제한하거나 기존 시설의 폐쇄를 전제로 정책을 추진하는 것은 지역사회 주택이라는 또 다른 주거 형태를 강제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24시간 전문적인 지원이 필요한 최중증 장애인에게 거주시설은 배제해야 할 공간이 아니라 생존과 안전을 위한 선택지가 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지난 2020년 실시된 시설 이용자 전수조사의 대표성에도 문제를 제기했다. 당시 의사 표현이 가능한 시설 이용자 6035명 가운데 33.5%가 시설에서 나가고 싶다고 응답했지만, 의사 표현이 어려운 최중증 장애인과 보호자의 의견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부모회는 “의사 표현이 가능한 응답자만을 대상으로 한 조사 결과를 시설 이용자 전체의 자립 욕구로 확대해석해서는 안 된다”며 “지역사회에서 필요한 24시간 돌봄과 의료·행동지원 대책을 함께 제시한 뒤 주거 의사를 확인해야 한다”고 밝혔다.
◇자립지원 참여 자폐성 장애인 15명…“대표성 한계”
부모회는 올해 6월 말 기준 지역사회 자립지원 시범사업 현황도 근거로 제시했다.
의견서에 따르면 시범사업 참여자 중 발달장애인 비율은 79.6%로 나타났다. 장애 유형별로는 지적장애인이 507명이었지만 자폐성 장애인은 15명에 그쳤다.
부모회는 돌봄 난도가 상대적으로 높은 중증 자폐성 장애인의 참여가 적은 상황에서 시범사업 결과를 전체 중증·발달장애인의 자립 가능성으로 일반화하기는 어렵다고 주장했다.
전담인력 한 명이 평균 3명을 지원하는 구조 역시 24시간 밀착 지원이 필요한 장애인에게는 충분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특히 집중지원형 서비스가 초기 정착 지원에 치우쳐 있어 평생에 걸쳐 고강도 지원이 필요한 중증 장애인의 특성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입장이다.
부모회는 “중증 자폐성 장애인의 지역사회 생활에서 중요한 의료 전문 돌봄과 정신건강·도전행동 지원이 어떤 수준으로 제공됐는지 구체적인 자료도 확인하기 어렵다”며 “시범사업의 인원이나 정착 실적뿐 아니라 장애 정도와 지원 강도, 위기 발생 및 가족 개입 여부까지 공개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보호자 참여·평생지원 등 5대 요구안 제시
부모회는 자립지원 관련 하위법령 제정 과정에서 반영해야 할 5대 요구사항도 제시했다.
우선 중증·발달장애인을 대상으로 자립 욕구를 조사할 때 보호자의 진술과 종합 의견을 의무적으로 반영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당사자의 의사를 우선하되 의사 표현이 어렵거나 일관된 의사 확인이 불가능한 경우, 보호자와 전문가가 함께 참여해 객관성을 확보할 수 있는 절차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집중지원 대상 기준에는 의료적 필요뿐 아니라 중증 도전행동과 극심한 중복장애를 포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원 기간 역시 초기 정착 단계에 한정하지 말고 장애 특성에 따라 평생 고강도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규정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자립생활과 단기체험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사고·실종·긴급 의료상황에 대비해 24시간 대응체계와 전담인력 배치 기준을 마련하고, 위기 발생 시 지자체와 지원센터의 책임도 명확히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와 함께 시설 이용 장애인과 보호자의 주거 선택권을 보장하고, 기존 거주시설의 전문 돌봄 기능과 환경을 개선하는 정책도 병행해야 한다고 밝혔다. 자립지원 실적을 높이기 위해 시설 퇴소를 유도하거나 신규 입소를 제한하는 방식으로 제도가 운영돼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긴급지원 대상자를 우선 선정하도록 한 시행규칙안에 대해서는 적용 기준을 구체화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주 돌봄자의 갑작스러운 사망·입원, 가정 내 돌봄이 불가능한 의료 위기, 시설 내 중대한 인권침해 등 긴급상황의 범위를 명시하고 객관적인 심사 절차와 즉각적인 임시 주거 대책을 함께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개인별 지원계획을 수립하거나 변경할 때 보호자가 직접 참여해 의견을 제출하고 협의할 수 있는 법적 지위도 명시해 달라고 요청했다. 긴급상황에서는 지자체장과 지원센터장이 임시 보호 대책을 마련하도록 책임을 부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현아 장애인거주시설이용자부모회 대표는 “준비되지 않은 자립지원은 중증 장애인의 생존과 안전을 위협하고 평생 자녀를 돌본 가족에게 다시 돌봄 부담을 전가할 수 있다”며 “시설과 지역사회를 대립시키는 방식에서 벗어나 장애 정도와 개인의 선택에 따라 필요한 돌봄을 받을 수 있는 상생 모델을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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