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의 자격]③한국만 예외였다…이사 자격, 해외는 이미 ‘전면 규제’
▷ 영국·호주, 부실경영까지 자격 박탈…최대 15~20년 제한
▷ 일본도 사내·사외 구분 없다…“한국식 비대칭 구조 찾기 어려워”
(일러스트=챗GPT로 생성된 이미지)
[위즈경제] 조중환 기자 = 국내에서는 사내이사 자격이 사실상 자율에 맡겨져 있는 반면, 해외 주요국은 이사 전반에 대해 보다 강한 자격 기준을 적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수민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의 ‘이사 자격 제한 및 정보 공개 제도의 국제 비교와 개선 과제’ 보고서에 따르면, 주요국들은 사내이사와 사외이사를 구분하지 않고 동일한 적격성 기준을 적용하는 것이 일반적인 구조다.
대표적인 사례로 영국은 별도의 법률을 통해 이사의 자격을 제한한다. 부정행위나 부실경영, 경쟁법 위반 등 기업 운영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까지 폭넓게 자격 제한 사유로 포함한다. 법원이 판단해 자격을 박탈할 경우 최대 15년 동안 이사로 활동할 수 없으며, 회사 설립이나 경영 참여 자체도 제한된다. 단순한 형사처벌 여부를 넘어 ‘경영자로서의 적합성’을 직접 평가하는 구조다.
호주는 보다 입체적인 규율 체계를 갖추고 있다. 일정 범죄에 대한 유죄판결이나 파산의 경우 자동으로 이사 자격이 박탈되며, 법원뿐 아니라 규제기관인 ASIC도 자격 제한 결정을 내릴 수 있다. 특히 반복적인 법 위반이나 급여 미지급, 지급불능 상태에서의 경영 등 기업 운영 과정에서의 책임 문제 역시 자격 박탈 사유에 포함된다. 자격 제한 기간도 최대 20년에 이른다.
이러한 구조는 이사의 역할을 단순한 ‘회사 내부 직책’이 아니라 시장에 영향을 미치는 공적 지위로 바라보는 관점에서 출발한다. 기업 경영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 역시 개인의 자격 문제로 연결된다는 점에서, 책임과 자격을 일체로 묶어 관리하는 방식이다.
일본 역시 우리나라와 유사한 법체계를 갖고 있지만, 이사 자격 규정에서는 차이를 보인다. 일본 회사법은 사내이사와 사외이사를 구분하지 않고 동일한 결격사유를 적용하며, 경제법령 위반이나 파산 이력 등 다양한 사유를 근거로 이사 선임을 제한한다. 특히 금융기관의 경우에는 단순한 결격사유를 넘어 경영 능력과 경험까지 요구하는 등 보다 적극적인 적격성 기준을 운영하고 있다.
이처럼 주요국들은 이사 자격을 ‘형식적 요건’이 아닌 ‘실질적 검증’의 대상으로 다루고 있다. 범죄 이력뿐 아니라 경영 과정에서의 책임, 규제 위반, 심지어 재직 기업의 파산까지도 판단 기준에 포함시키는 경우가 적지 않다.
반면 우리나라의 경우, 이러한 폭넓은 기준은 일부 금융회사나 특정 법률 적용 대상에 한정돼 있다. 상법 자체로는 사내이사에 대한 자격 제한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기업 경영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했더라도 곧바로 이사 선임 제한으로 이어지지 않는 구조다.
결과적으로 동일한 행위에 대해서도 국가별로 평가 방식이 달라지는 상황이 발생한다. 해외에서는 자격 박탈로 이어질 수 있는 사안이 국내에서는 별다른 제약 없이 넘어갈 수 있는 것이다.
보고서는 이러한 차이를 단순한 규제 강도의 문제가 아니라 제도 설계의 방향성 차이로 분석한다. 해외는 이사의 자격을 시장 신뢰와 직결된 요소로 보고 사전에 관리하는 반면, 국내는 사후적 책임이나 개별 법률에 의존하는 구조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해외에서는 국외에서 발생한 범죄나 규제 위반 이력까지 자격 판단에 포함하는 경우가 많아, 글로벌 기준에서의 적격성을 강조하는 흐름도 확인된다. 반면 국내 제도는 이러한 요소를 포괄적으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어 국제적 정합성 측면에서도 한계를 보인다.
이 같은 차이는 단순한 제도 비교를 넘어, 기업지배구조의 질과 투자자 신뢰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부분이다. 이사의 자격을 어디까지 검증할 것인지에 대한 기준이 국가마다 다를 경우, 시장 참여자 입장에서는 동일한 정보로도 다른 수준의 위험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 핵심은 ‘누가 이사가 될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에 어떻게 답하느냐에 있다. 해외 주요국은 이 질문에 대해 보다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방향을 택하고 있는 반면, 국내는 여전히 기업 내부 판단에 상당 부분을 맡겨두는 방식을 유지하고 있다.
해외 사례를 단순히 ‘규제가 강하다’는 관점으로만 볼 필요는 없다. 오히려 눈여겨봐야 할 부분은 책임과 자격을 연결하는 방식이다. 경영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를 개인의 자격 문제로 이어지게 만드는 구조는, 그 자체로 강력한 예방 장치가 된다. 반면 국내 제도는 책임은 강화하면서도 자격 검증은 그대로 두는 불균형을 안고 있다. 결국 이사의 자격을 어디까지 공적 영역으로 볼 것인지에 대한 판단이 필요하다. 지금처럼 사내이사를 사실상 예외로 두는 구조가 유지된다면, 어떤 지배구조 개선 논의도 절반의 개편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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