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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의 자격]②“범죄 이력 있어도 가능”…사내이사 규제 공백, 왜 방치됐나

▷ 상법은 사외이사만 제한…사내이사는 ‘자율’에 맡겨진 구조
▷ 개별법 보완에도 한계…“기업마다 다른 기준, 투자자 보호 취약”

입력 : 2026.04.07 13:14:00
[이사의 자격]②“범죄 이력 있어도 가능”…사내이사 규제 공백, 왜 방치됐나 (일러스트=챗GPT로 생성된 이미지)
 

[위즈경제] 조중환 기자 = 이사의 책임과 권한이 확대되는 흐름 속에서도, 정작 사내이사에 대한 자격 규제는 사실상 공백 상태에 가깝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수민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의 ‘이사 자격 제한 및 정보 공개 제도의 국제 비교와 개선 과제’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제도는 사외이사에 대해서만 결격사유를 규정하고 사내이사에 대해서는 별도의 적격성 기준을 두지 않는 ‘비대칭 구조’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행 상법은 사외이사에 대해서는 미성년자, 파산자, 일정 기간 내 형사처벌 이력 보유자 등 비교적 명확한 결격사유를 두고 있다. 그러나 동일한 이사회 구성원인 사내이사에 대해서는 이러한 기준이 적용되지 않는다. 기업 내부 인사라는 이유로 자격 판단을 주주와 회사의 자율에 맡겨둔 결과다.

 

문제는 이 ‘자율’이 실제로는 검증 부재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보고서는 현재 구조에서는 과거 중대한 범죄 이력이나 규정 위반 전력이 있는 인물이라 하더라도 사내이사 선임을 제도적으로 차단하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특히 상장기업의 경우 일반 투자자의 자산과 직결된다는 점에서, 이 같은 공백은 단순한 기업 내부 문제가 아니라 시장 신뢰와 직결된 리스크로 이어질 수 있다.

 

물론 완전히 무방비 상태는 아니다.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은 사기·횡령·배임 등 재산범죄로 유죄판결을 받은 경우 일정 기간 취업을 제한하고 있으며, 자본시장법 역시 내부자거래나 시세조종 등 불공정거래 행위자에 대해 임원 선임을 제한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금융회사의 경우에는 금융사지배구조법을 통해 보다 엄격한 자격 요건이 적용된다.

 

하지만 이러한 규제는 공통 기준이라기보다 ‘조각난 규제’에 가깝다. 적용 대상이 금융회사나 특정 범죄 유형에 한정돼 있어 일반 비금융 상장기업에는 그대로 적용되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동일한 범죄 이력을 가진 인물이라도 어느 업종에 속한 기업이냐에 따라 이사 선임 가능 여부가 달라지는 셈이다.

 

이처럼 법률 간 적용 범위가 엇갈리는 구조는 기업 간 규제 형평성 문제를 넘어 투자자 보호 측면에서도 취약성을 드러낸다. 투자자는 동일한 위험 요소를 가진 인물에 대해 일관된 기준으로 평가받을 것이라 기대하지만, 실제 제도는 그렇지 못한 구조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공백이 제도 설계 단계에서 이미 예정돼 있었다는 점이다. 상법은 사내이사의 자격을 제한하지 않는 이유로 ‘사적 자치의 존중’을 들고 있다. 즉, 회사의 경영을 누가 맡을 것인지는 주주와 기업이 자율적으로 결정할 문제라는 논리다.

 

그러나 이 논리는 상장기업 환경에서는 설득력이 점점 약해지고 있다. 과거와 달리 상장사는 소수 지배주주뿐 아니라 다수의 일반 투자자가 참여하는 구조로 변화했고, 이사회 결정이 시장 전체에 미치는 영향도 확대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내이사 자격을 전적으로 내부 판단에 맡겨두는 방식이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는 점은 제도와 현실 간 괴리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사 자격 제한의 주요 내용 및 적용 방식 비교(표=정수민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 보고서)

 

해외 주요국에서는 이와 다른 접근이 일반적이다. 사내이사와 사외이사를 구분하지 않고 동일한 적격성 기준을 적용하거나, 파산·범죄 이력·규제 위반 등 폭넓은 사유를 근거로 이사 자격을 제한하는 방식이 널리 활용된다. 반면 국내 제도는 사외이사 중심 규제에 머물러 있어, 이사회 전체의 질을 관리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결국 현재 구조는 ‘감시 역할을 하는 사외이사는 엄격하게, 실제 경영을 담당하는 사내이사는 느슨하게’라는 역설적인 형태를 띠고 있다. 이사회가 기업 경영의 핵심 의사결정 기구라는 점을 고려하면,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내이사에 대한 규제가 상대적으로 약하다는 점은 제도 설계상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사내이사 규제 공백은 단순한 입법 미비라기보다, 오래된 전제에서 비롯된 구조적 문제에 가깝다. ‘기업은 기업이 알아서 한다’는 전제가 유효했던 시기에는 큰 문제가 아니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상장사가 사실상 공적 성격을 띠는 지금, 그 전제는 더 이상 그대로 유지되기 어렵다. 최소한의 자격 기준조차 없는 상태에서 이사회 책임만 강화하는 것은 균형이 맞지 않는다. 자율과 책임은 함께 설계될 때 의미가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규제의 양을 늘리는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를 ‘자율’로 둘 것인지에 대한 기준을 다시 그리는 일이다.

 
조중환 사진
조중환 기자  highest@wisdo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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