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 뒤흔든 혐오표현…‘표현의 자유’ 넘어 지역사회와 해법 모색
▷ 은어·밈으로 숨은 혐오…교사들 "인지·지도 어렵고 일회성 교육 한계"
▷ 차별금지법 논의·교사 업무 여건 개선·지역사회 연계 활동 등 대안 제시
5일 국회 의원회관 제1소회의실에서 열린 '인권존중 학교를 위한 혐오·차별 대응 토론회'에서 홍성수 숙명여자대학교 법학부 교수가 좌장을 맡아 발표를 진행했다. 사진=위즈경제
[위즈경제] 장석찬 기자 =학교 현장에서 혐오표현이 은어와 밈, 놀이의 형태로 소비되면서 교사가 문제를 알아채고 교육적으로 개입하기 어려워졌다는 지적이 나왔다. 특정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일회성 인권교육을 실시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교사의 교육 여건을 개선하고 지역사회와 연계한 학생 참여 활동을 확대해야 한다는 제안이다.
홍승희 서울미동초 교사와 박범철 경문고 교사는 지난 5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인권존중 학교를 위한 혐오·차별 대응 토론회’에서 교내외 혐오표현의 실태와 대응 방안을 발표했다.
두 교사는 최근 교실의 혐오표현이 단순한 언어 습관을 넘어 역사 왜곡과 정치인 조롱, 성소수자·여성 비하 등으로 확산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표현이 은어와 특정 집단만 이해하는 코드로 바뀌면서 교사가 그 의미를 즉시 파악하기 어렵고, 문제를 발견해도 지도가 단순한 태도 교정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교사의 정치적 중립 의무에 대한 부담도 적극적인 토론과 교육을 어렵게 하는 요인으로 꼽혔다.
◇ 은어·밈으로 숨은 교실 속 혐오…교사도 인지·지도에 한계

'인권존중 학교를 위한 혐오·차별 대응 토론회'에서 홍승희 서울미동초 교사가 발표을 진행했다. 사진=위즈경제
홍 교사는 지난 6월 배재고 야구부 학생들의 5·18민주화운동 폄훼 구호 사건과 2014년 광화문 ‘폭식 농성’을 함께 언급했다. 광화문 폭식 농성은 온라인 커뮤니티 일간베스트저장소 회원 등이 세월호 유가족의 단식농성장 앞에서 음식을 먹으며 벌인 조롱성 집회다. 홍 교사는 두 사건 모두 피해자의 상처를 부인하고 모욕하는 방식으로 상대를 공격했다는 공통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논란의 초점이 혐오표현이 피해자에게 미친 영향보다 가해 학생이나 조직에 대한 징계 수위에만 맞춰지는 현실도 문제로 지적했다.
홍 교사는 "학교 구성원들에게 이런 일은 낯선 풍경이 아니다"라며 "학생들이 학교 안에서 혐오표현을 자연스럽게 접하고 그런 문화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학교에서 관찰되는 대표적인 유형으로는 성소수자·여성 비하와 역사적 사건·정치인 조롱을 꼽았다.
성소수자와 여성을 겨냥한 비하 표현은 학생들 사이에서 은어나 장난처럼 소비되고 있다. 그러나 교사가 이를 지도할 때 표현에 담긴 혐오와 차별의 문제를 짚기보다 말투나 태도를 바로잡는 수준에 머무르는 경우가 많다는 설명이다.
지난 7월 전국교사노동조합의 ‘혐오·차별·역사 왜곡 표현 인식 조사’에서는 교사 10명 중 7명이 학교에서 학생들의 혐오·조롱 표현을 접한 것으로 나타났다. 응답 교사의 절반가량은 학생들이 해당 표현의 유래와 의미를 알고 사용하는지 판단하기 어렵다고 답했다.
홍 교사는 "학교 현장의 혐오표현은 학생들의 유희나 밈 문화로 쓰여 교사가 직관적으로 인지하기 어렵고, 발견해도 학생들이 단순한 놀이로 치부해 지도하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학생들의 해악 인식 부족에 교사의 정치적 중립 의무에 대한 부담과 자기 검열까지 더해져 진지한 토론이나 지도를 피하는 경향이 생긴다"고 설명했다.
박 교사도 학교에서 ‘멸공’, ‘북괴 처단’이나 부정선거 주장, 기본소득 반대 등 정치적 표현이 학생들 사이에서 사용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16세 이상 청소년은 정당에 가입할 수 있고 18세 이상은 피선거권도 갖게 됐지만, 교사들은 정치적 중립성의 제약 때문에 선거교육이나 민주시민교육을 주도적으로 실시하는 데 한계를 느낀다"고 말했다.
◇ 일회성 교육 넘어 교실 체질 개선…지역사회 연계 활동 제안

'인권존중 학교를 위한 혐오·차별 대응 토론회'에서 박범철 경문고 교사가 발표을 진행했다. 사진=위즈경제
홍 교사는 혐오표현에 대응하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반론이 뒤따르지만, 두 가치가 반드시 대립하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혐오표현의 개념과 피해를 정확히 알리고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를 위협하는 혐오·차별 기반 폭력을 어디까지 규제할지 사회적 합의를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특정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인권·평화·성평등·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을 일시적으로 강조하는 방식으로는 효과를 거두기 어렵다"고 말했다. 미디어 리터러시는 온라인 정보와 콘텐츠를 비판적으로 이해하고 활용하는 능력을 뜻한다. 홍 교사는 교사들이 이러한 교육에 충분한 시간을 투입할 수 있도록 업무 여건을 개선하고, 성별·장애·인종·성적 지향 등을 이유로 한 차별을 금지하고 피해자를 구제하는 차별금지법 제정 논의도 이어가야 한다고 제안했다.
박 교사는 실천적 대안으로 ‘지역사회 연계 청소년 사회참여활동’을 제시했다. 동작·관악 지역 학생들이 학생참여위원회 명랑운동회와 관악기후정의행동, 세계여성의날·학생의날 행사 등에 참여하며 타인의 삶을 이해하고 사회문제를 직접 경험하도록 하는 방식이다.
박 교사는 "학생들이 이슈를 알리는 데 그치지 않고 지역사회와 함께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크라우드펀딩으로 조형물을 제작하는 등 주도적으로 참여했다"며 "교실 안의 정치·여성 혐오 문제를 교사 혼자 떠안는 대신 학생자치회와 지역사회가 연대해 해결하는 구조를 만들 수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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