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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대한민국 회생법원 확충 원년, ‘기업의 재도전’이라는 본질에 집중할 때다

입력 : 2026-05-28 09:11
[칼럼] 대한민국 회생법원 확충 원년, ‘기업의 재도전’이라는 본질에 집중할 때다 윤병윤 한국기업회생협회 회장
 

기업 회생 제도는 단순히 부실 기업을 연명시키는 인공호흡기가 아니다. 일시적인 유동성 위기로 도산 위기에 처한 기업의 부채를 과감히 조정하고, 행정적·재무적 틀을 재정비해 시장으로 건강하게 복귀시키는 ‘재도전의 사다리’다.

 

그런 의미에서 회생법원은 철저히 회생기업의 입장에서 업무를 바라봐야 한다. 법원의 모든 절차와 판단은 기업의 숨통을 틔우고, 고용을 유지하며, 지역 경제의 붕괴를 막는 방향으로 수렴돼야 하기 때문이다.

 

2026년 현재 대한민국은 서울, 수원, 부산에 이어 대전, 대구, 광주까지 총 6개의 회생법원 체제를 갖추게 됐다. 지방 전문 회생법원의 대대적인 확충은 전국 어디서나 신속하고 전문적인 회생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이 마련됐다는 의미가 있다.

 

그러나 외형적 성장만큼 중요한 것은 내실이다. 법원의 확대가 곧바로 기업 회생 성공률 제고로 이어지려면 구조적인 행정 간소화, 구성원의 전문성 강화, 오랜 악습인 지역주의 타파라는 세 가지 과제가 반드시 해결돼야 한다.

 

◇소통과 행정 절차의 혁신: 원활하고 정확하지만 ‘빠르게’

 

회생 절차에 돌입한 기업에 가장 치명적인 적은 시간이다. 유동성이 고갈된 상태에서 법원의 인가나 결정이 지연되면 기업은 하루하루 피가 마른다. 결국 회생의 골든타임을 놓치고 파산으로 직행하기 쉽다.

 

이를 막으려면 회생기업과 위임대리인인 법무법인 간 업무 협력을 높이고 소통을 원활하게 할 수 있도록 법원 차원의 행정 절차 간소화가 시급하다. 현재의 회생 절차는 지나치게 방대한 서류 제출과 경직된 보고 체계에 얽매인 경우가 많다.

 

우선 디지털 소통 창구를 고도화해야 한다. 서류 접수와 피드백이 실시간으로 이뤄질 수 있는 전용 시스템을 강화해야 한다. 불필요한 대면 보고와 중복 보고도 줄여야 한다. 대리인과 기업이 오직 기업 정상화라는 본질적인 업무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정확성을 기한다는 명목으로 속도를 희생해서는 안 된다. 원활하고 정확하되 빠르게 진행되는 행정 서비스야말로 회생법원이 기업에 줄 수 있는 가장 큰 구호 조치다.

 

◇관리위원과 CRO의 전문성 강화: 시스템을 움직이는 것은 결국 사람이다

 

법 제도가 아무리 훌륭해도 이를 운용하는 주체의 역량이 부족하면 현장에서는 엇박자가 난다. 현재 회생 현장에서는 법원을 대리해 회생 업무를 총괄하는 관리위원과, 법원의 위임을 받아 기업에 파견되는 구조조정 전문 임원인 CRO의 업무 역량 부족으로 절차가 매끄럽게 진행되지 못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회생기업의 비즈니스 모델에 대한 깊은 이해 없이 단순히 숫자를 맞추거나 기계적인 규정 준수만을 강요하는 관리위원과 CRO는 기업의 재도전에 오히려 걸림돌이 된다.

 

새롭게 승격된 대전·대구·광주 회생법원이 시장의 신뢰를 얻기 위해서는 경험이 풍부하고 회생 업무 능력이 검증된 판사들이 전면에 배치돼야 한다. 관리위원과 CRO에 대한 철저한 전문성 검증과 지속적인 역량 강화 교육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

 

현재 CRO로 은행 지점장 출신이나 금융권 종사자가 파견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기업 경영 경험이 부족한 인력이 회생기업의 정상화를 맡는 구조는 개선돼야 한다. 회생기업에는 단순한 금융 관리가 아니라 경영, 영업, 마케팅, 투자, 인수합병까지 아우르는 종합적 판단이 필요하다.

 

중소기업의 어려움을 잘 아는 경영지도사, 경영컨설턴트, 회생지도사 등 기업 현장을 이해하는 전문가가 CRO로 활동할 수 있어야 한다. 이들이 경영, 금융, 마케팅, 투자, 인수합병 등 전 분야에서 회생기업의 정상화를 도와야 한다.

 

기업의 경영 상태를 정확히 진단하고 현실적인 회생 계획안을 도출할 수 있는 전문가들이 현장을 이끌 때 회생법원 확충의 취지가 비로소 빛을 발할 것이다.

 

◇구태연한 지역주의 타파: 로펌 선택의 기준은 오직 ‘능력’이어야 한다

 

지방 회생법원 출범과 함께 가장 경계해야 할 구태는 지역주의다. 일부 지역에서는 타 지역의 경험 많은 전문 법무법인을 위임대리인으로 선임했다는 이유로, 은연중에 해당 지역 로펌과 재계약을 독려하거나 압박하는 관행이 여전히 존재한다. 이는 폐쇄적이고 낙후된 행태다.

 

필자도 회생기업을 돕는 과정에서 비슷한 사례를 겪었다. 한 기업에 회생 업무 경험이 풍부한 전문 로펌을 소개했다. 해당 로펌은 어려운 사건이었지만 축적된 노하우를 바탕으로 기업 정상화를 추진할 계획을 세우고 위임계약을 맺었다.

 

그러나 법원의 관리위원은 왜 타 지역 로펌과 계약했느냐며 대표자를 질책했다. 불안해진 대표자는 결국 위임계약을 체결한 법무법인과의 계약을 해지했다. 결과적으로 해당 업체는 지역주의에 매몰됐고, 경험이 부족한 관리위원과 CRO의 한계 속에서 결국 파산했다. 지방에서 연 매출 120억 원 이상을 올리던 자동차 부품사였지만, 파산으로 20여 명의 직원이 일자리를 잃었다.

 

회생은 기업의 생사가 걸린 단 한 번의 기회다. 대리인 선임의 유일한 기준은 해당 로펌이 유사 업종의 회생 경험이 풍부한지, 법원과 채권단 사이의 까다로운 조율을 성공적으로 이끌 역량이 있는지여야 한다.

 

단지 지역 연고가 없다는 이유로 유능한 대리인을 배척하고 지역 로펌을 강요하는 것은 회생기업의 선택권을 침해하는 일을 넘어 기업을 사지로 모는 행위와 다름없다. 전국의 회생법원은 이러한 구태를 과감히 버려야 한다.

 

경쟁력 있는 타 지역 로펌의 노하우가 지역 회생법원에 유입돼 자극을 줄 때, 해당 지역 로펌의 전문성도 함께 높아지는 선순환이 일어날 수 있다.

 

◇회생법원의 존재 이유는 명확하다

 

회생법원의 존재 이유는 명확하다. 유동성 위기에 직면한 기업의 부채를 과감히 조정하고 제도적 울타리를 제공해, 기업이 다시 시장에서 당당히 재도전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대한민국은 이제 전국 6개 회생법원 시대를 맞았다. 대전, 대구, 광주 등 지역 거점 회생법원은 단순한 행정 구역의 확장에 그쳐서는 안 된다. 경험 많은 판사와 전문성 있는 관리위원의 전면 배치, 행정 절차의 획기적인 간소화, 혈연과 지연을 넘어선 능력 중심의 업무 환경 조성을 통해 기업 회생의 진정한 파트너로 거듭나야 한다.

 

벼랑 끝에 선 기업들이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법원, 관리위원, CRO, 법무법인, 조사위원은 오직 기업의 재도전이라는 하나의 목표를 향해 역량을 모아야 한다. 대한민국 경제의 기초 체력을 지키는 최전선에 선 회생법원의 과감하고 전문적인 변화를 기대한다.

 
류으뜸 사진
류으뜸 기자  awesome@wisdo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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