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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의 자격]⑤“규제냐 자율이냐”의 문제가 아니다…이사제도의 해법은 ‘정보와 기준’

▷ 사내이사까지 동일 기준 적용 필요…국내 제도 정합성 재설계 과제
▷ 범죄·제재 이력 공개 확대해야…투자자 판단권 회복이 핵심

입력 : 2026.04.10 09:53:00
[이사의 자격]⑤“규제냐 자율이냐”의 문제가 아니다…이사제도의 해법은 ‘정보와 기준’ 생성형 AI(제미나이)의 도움을 받아 시각화하고 기자가 최종 검토 및 확인해 제작한 그래픽입니다
 

[위즈경제] 조중환 기자 = 이사 자격 제한과 정보 공개를 둘러싼 논의는 결국 ‘규제를 강화할 것인가, 자율에 맡길 것인가’라는 오래된 질문으로 귀결된다. 그러나 정수민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의 연구위원의 ‘이사 자격 제한 및 정보 공개 제도의 국제 비교와 개선 과제’ 보고서는 이 같은 이분법적 접근보다, 제도의 구조 자체를 재설계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이사 제도는 기본적인 틀은 갖추고 있지만, 적용 범위와 정보의 구체성 측면에서 주요국 대비 미흡한 수준에 머물러 있다. 특히 사외이사 중심으로 설계된 자격 제한 구조와, 간접 정보에 의존하는 공시 체계는 제도 전반의 실효성을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꼽힌다.

 

가장 먼저 지적되는 부분은 사내이사 규제 공백이다. 상법상 사내이사는 별도의 자격 제한이 없는 반면, 사외이사는 다양한 결격사유가 적용된다. 그러나 실제 기업 경영에 더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사내이사라는 점에서, 이러한 구조는 책임과 규제 간 불균형을 초래한다는 평가가 나온다.

 

보고서는 중장기적으로 사내이사와 사외이사를 구분하지 않고 동일한 자격 기준을 적용하는 방향이 필요하다고 제안한다. 해외 주요국처럼 이사의 역할을 하나의 공적 지위로 보고, 동일한 기준에서 적격성을 판단해야 한다는 취지다.

 

이와 함께 자격 제한 사유 역시 확대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현재는 파산이나 금고형 이상의 형사처벌 등 제한적인 기준만 적용되고 있지만, 향후에는 경제 관련 법령 위반이나 해외에서의 규제 위반, 도산과 관련된 부정행위 등도 포함하는 방안이 검토될 수 있다.

 

다만 보고서는 이러한 확대가 곧바로 강한 규제로 이어져야 한다고 보지는 않는다. 부실경영이나 경쟁법 위반까지 포괄하는 해외 사례를 그대로 도입하기보다는, 규제의 정당성과 집행 가능성 등을 고려해 단계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정보 공개 제도의 개선 역시 중요한 과제로 제시된다. 현재 제도는 결격사유 여부, 체납 사실 등 간접 정보에 머물러 있어 투자자가 이사 후보의 위험 요소를 충분히 파악하기 어렵다.

 

 

(일러스트=챗GPT로 생성된 이미지)

 

보고서는 단기적으로 범죄 이력, 경제 관련 법령 위반, 감독당국의 조사 및 제재 이력 등을 공시 항목에 포함하는 방안을 제안한다. 특히 단순히 해당 여부를 표시하는 수준을 넘어, 투자자가 실질적으로 판단할 수 있도록 구체적인 사실관계를 제공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설계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또한 정보 공개의 범위를 확대하되, 개인정보 보호와의 균형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점이 언급된다. 이와 관련해 싱가포르처럼 항목별로 해당 여부를 구체적으로 표기하는 방식이나, 단계적으로 정보 공개 수준을 높이는 방안이 대안으로 제시된다.

 

궁극적으로 보고서는 이사 제도의 핵심을 ‘투자자의 판단권’에서 찾는다. 자격 제한을 최소화하더라도, 충분한 정보가 제공된다면 투자자는 스스로 위험을 평가하고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반대로 정보가 부족한 상태에서는 어떤 제도도 실질적인 견제 장치로 작동하기 어렵다.

 

이는 이사를 단순한 기업 내부 인사가 아니라, 시장 참여자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공적 존재로 볼 필요가 있다는 문제의식과 맞닿아 있다. 상장사의 이사회가 투자자 신뢰의 핵심 축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이사 개인의 자격과 이력에 대한 검증 역시 공적 영역에서 다뤄져야 한다는 주장이다.

 

결국 제도의 방향은 복잡한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지금처럼 사내이사 자격은 사실상 비어 있고, 정보 공개는 핵심을 비켜간 채 최소한에 머무르는 구조에서는 어떤 규제도 제대로 작동하기 어렵다. 기준이 느슨하다면 정보라도 충분해야 하고, 정보가 제한적이라면 최소한의 자격 기준은 갖춰져야 한다. 두 축이 동시에 비어 있는 현재 구조가 문제의 본질에 가깝다.

 

이사 제도를 둘러싼 논의는 늘 ‘얼마나 규제를 더할 것인가’에 머물러 있었다. 하지만 현장에서 체감되는 문제는 조금 다르다. 규제가 부족해서라기보다, 판단할 수 있는 정보 자체가 부족하다는 점이다. 투자자는 선택의 책임을 지지만, 그 선택을 가능하게 하는 정보는 충분히 제공받지 못하고 있다. 사내이사 규제 공백을 메우는 논의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먼저 필요한 건 무엇을 보여줄 것인지에 대한 합의다. 정보를 숨긴 채 신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결국 시장은 투명한 쪽으로 움직인다.

 
조중환 사진
조중환 기자  highest@wisdo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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