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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부자들①] 부자는 얼마를 가져야 ‘부자’가 되는가

▷높아진 문턱, 숫자가 말해주는 한국 부자의 기준
▷자산 규모보다 ‘구조’가 계층을 가르는 시대

입력 : 2025.12.18 13:19 수정 : 2025.12.18 13:33
[한국의 부자들①] 부자는 얼마를 가져야 ‘부자’가 되는가 (그래프=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 2025 한국 부자 보고서)
 

[위즈경제] 김영진 기자 = [한국의 부자들] 연재는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의 ‘2025 한국 부자 보고서’를 토대로, 한국 사회에서 ‘부자’로 불리는 이들의 자산 구조와 투자 행태, 그리고 부를 바라보는 인식의 변화를 짚어본다. 단순한 자산 규모 비교를 넘어, 부자들이 어디에 돈을 두고 무엇을 경계하며 어떤 미래를 준비하고 있는지를 데이터로 해석한다. 이를 통해 자산 격차의 구조와 한국 사회 부의 흐름을 입체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편집자주]

 

‘부자’의 기준은 언제부터 이렇게 높아졌을까. 한때 10억원이면 충분히 부유층으로 불리던 시절이 있었다. 부동산 가격이 지금보다 낮았고, 자산 격차가 지금처럼 구조화되지 않았던 시기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부자’라는 말은 단순한 자산 규모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같은 20억원, 같은 50억원이라도 그 자산을 어떻게 구성하고, 어떻게 관리하고 있는지에 따라 계층의 위치는 완전히 달라진다.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가 발간한 「2025 한국 부자 보고서」는 이 변화를 명확한 숫자로 보여준다. 보고서가 정의하는 ‘한국형 부자’는 금융자산 10억원 이상이면서 거주주택을 포함한 부동산자산 10억원 이상을 보유한 계층이다. 단순 합산 기준으로 최소 20억원 이상 자산가부터 조사 대상에 포함된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출입 가능한 최소 조건’일 뿐, 사회적으로 체감되는 부자의 기준과는 상당한 괴리가 있다.

 

◇ ‘20억’은 입장권, 진짜 문턱은 그 위에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총자산 규모별로 설정된 부자의 최소 기준은 최근 몇 년 사이 빠르게 상향됐다. 중간값 기준으로 ‘총자산 50억원 미만’ 부자의 기준은 2021년 약 30억원 수준에서 2025년 40억원까지 높아졌고, ‘총자산 100억원 이상’ 부자의 기준은 사실상 100억원선을 하한선처럼 형성했다. 이는 단순한 자산 가격 상승의 결과라기보다, 부의 축적 방식이 구조적으로 바뀌었음을 보여주는 신호다.

 

 

총자산 규모별 부자의 최소 자산 기준 변화(그래프=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 2025 한국 부자 보고서)

 

이 변화의 배경에는 지난 15년간 누적된 경제 환경의 변화가 자리한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장기 저금리, 팬데믹 시기의 대규모 유동성 공급, 이후의 급격한 금리 인상과 자산 가격 변동은 자산 보유 여부에 따라 회복 속도를 극명하게 갈랐다. 자산을 가진 계층은 위기 이후에도 비교적 빠르게 회복했고, 그렇지 못한 다수는 출발선에서 더 멀어졌다.

 

◇ 부자의 기준은 ‘금액’에서 ‘구조’로 이동했다

 

특히 주목할 점은 부자의 기준이 더 이상 ‘얼마를 가졌는가’가 아니라 ‘어떤 구조를 가졌는가’로 이동했다는 사실이다. 전체 가계의 자산 구조를 보면 부동산자산 비중이 70%를 훌쩍 넘는다. 반면 2025년 기준 한국 부자의 자산은 부동산자산 54.8%, 금융자산 37.1%로 구성돼 있다. 금융자산 비중만 놓고 보면 전체 가계의 두 배를 웃돈다.

 

 

(그래프=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 2025 한국 부자 보고서)

 

이는 부자가 자산을 단순히 쌓아두는 데서 그치지 않고, 관리·운용의 대상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자산 규모가 커질수록 이 경향은 더욱 뚜렷해진다. 금융자산 30억원 이상 부자의 금융자산 비중은 46%에 달해, 부동산 의존도가 상대적으로 낮다. 부의 단계가 ‘축적’에서 ‘설계’로 이동한 것이다.

 

◇ ‘집 한 채’로는 더 이상 설명되지 않는 계층 이동

 

이러한 변화는 한국 사회 자산 격차의 성격을 근본적으로 바꾼다. 과거에는 주택 가격 상승이라는 비교적 단순한 사다리가 존재했다. 그러나 이제 그 사다리는 상당 부분 약화됐다. 부자는 자산을 분산해 위험을 관리하고, 정보와 시간을 활용해 자산을 불리는 반면, 다수의 가계는 여전히 단일 자산에 의존한 채 시장 변동성에 노출돼 있다.

 

부자의 기준이 높아진다는 것은 단순히 부자 수가 줄어든다는 의미가 아니다. 이는 계층 이동의 경로가 더 좁아지고 있음을 뜻한다. 자산 격차는 금액 차이가 아니라 구조 차이로 고착되고 있다. 금융 지식, 정보 접근성, 자산 관리 경험이 부족한 이들에게 부자의 문은 점점 더 멀어진다.

 

부자의 기준을 묻는 질문은 이제 이렇게 바뀌어야 한다. “얼마를 가져야 부자가 되는가”가 아니라 “어떤 구조를 만들 수 있는가”다. 그리고 그 구조에 접근할 수 있는 기회는 누구에게 주어지고 있는가다. 부자의 기준이 구조화될수록, 그 기준에 도달할 수 있는 경로는 제한된다.

 

다음 편에서는 부자들이 실제로 어떤 자산 구조를 선택하고 있는지를 통해, 왜 한국의 부자들이 ‘집보다 금융’을 더 많이 보유하게 되었는지를 구체적으로 살펴본다.


 
김영진 사진
김영진 기자  jean@wisdo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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