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마크 Link 인쇄 글자크기

글자크기 설정

글자크기 설정 시 다른 기사의 본문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한국의 부자들②] 부자는 집보다 금융을 더 많이 가진다

▷ 부동산 사회에서 먼저 빠져나온 사람들
▷ ‘집 한 채’ 이후를 설계한 자산가의 선택

입력 : 2025.12.19 09:20 수정 : 2025.12.19 09:39
[한국의 부자들②] 부자는 집보다 금융을 더 많이 가진다 (일러스트=챗GPT로 생성된 이미지)
 

[위즈경제] 김영진 기자 = [한국의 부자들] 연재는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의 ‘2025 한국 부자 보고서’를 토대로, 한국 사회에서 ‘부자’로 불리는 이들의 자산 구조와 투자 행태, 그리고 부를 바라보는 인식의 변화를 짚어본다. 단순한 자산 규모 비교를 넘어, 부자들이 어디에 돈을 두고 무엇을 경계하며 어떤 미래를 준비하고 있는지를 데이터로 해석한다. 이를 통해 자산 격차의 구조와 한국 사회 부의 흐름을 입체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편집자주]

 

한국 사회에서 부동산은 오랫동안 가장 강력한 자산이었다. 집을 소유했느냐, 그렇지 못했느냐가 자산 격차를 가르는 결정적 기준이었고, 주택 가격 상승은 중산층이 상위 계층으로 이동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사다리로 작동해 왔다. 그러나 한국의 부자들은 이미 이 공식에서 한 발 앞서 움직이고 있다. 이들이 보유한 자산 구조를 들여다보면, ‘집 중심’에서 ‘금융 중심’으로의 이동이 분명하게 나타난다.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의 「2025 한국 부자 보고서」에 따르면, 2025년 기준 한국 부자의 자산 구성에서 부동산자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여전히 가장 크지만, 금융자산 비중 역시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 이는 단순히 자산 규모가 커졌기 때문에 가능한 선택이 아니라, 자산을 바라보는 관점 자체가 달라졌음을 의미한다.

 

부자에게 부동산은 여전히 중요한 자산이지만, 더 이상 유일한 자산은 아니다. 오히려 부동산에 과도하게 묶인 자산 구조가 갖는 한계를 인식하고, 유동성과 관리 가능성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자산 배분을 조정하고 있다.

 

◇ 부동산 중심 사회에서 먼저 탈출한 사람들

 

전체 가계의 자산 구조를 보면 여전히 부동산 비중이 절대적이다. 주거용 주택이 자산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여기에 추가적인 투자 여력이 부족한 구조다. 반면 부자의 자산 구조는 다르다. 거주 목적의 주택 비중은 유지하되, 그 외 자산에서는 부동산 의존도를 낮추고 금융자산 비중을 늘리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이 차이는 단순한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부동산은 장기적으로 안정적인 자산일 수 있지만, 동시에 유동성이 낮고 거래 비용이 크며 정책·규제 변화에 민감하다. 부자들은 이러한 특성을 명확히 인식하고 있다. 자산 규모가 커질수록 ‘묶여 있는 자산’이 갖는 위험은 오히려 더 커진다.

 

 

부자의 총자산 구성 비율(그래프=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 2025 한국 부자 보고서)

 

특히 최근 몇 년간 부동산 시장을 둘러싼 환경 변화는 부자의 인식을 더욱 분명하게 만들었다. 금리 인상, 대출 규제, 세제 변화는 부동산 투자에 대한 기대 수익을 낮췄고, 동시에 불확실성을 키웠다. 이에 따라 부자들은 부동산 보유를 유지하되, 추가적인 자산 증식 수단으로는 금융자산을 선택하는 경향을 강화하고 있다.

 

◇ 금융자산 비중이 커질수록 ‘부자다움’은 선명해진다

 

자산 규모가 클수록 금융자산 비중이 높아진다는 점은 보고서 전반에서 반복적으로 확인된다. 금융자산 30억원 이상 부자의 경우 금융자산이 전체 자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절반에 가까워진다. 이는 단순히 여유 자금이 많아서가 아니라, 금융자산이 갖는 구조적 장점을 인식한 결과다.

 

금융자산의 가장 큰 장점은 유동성이다. 시장 상황에 따라 빠르게 비중을 조정할 수 있고, 위험을 분산시킬 수 있다. 또한 자산 운용 과정에서 발생하는 정보 축적과 경험이 다시 투자 전략으로 환류되는 구조를 만들 수 있다. 부자는 이 점에서 금융자산을 단순한 투자 수단이 아니라, 자산 관리의 핵심 도구로 활용한다.

 

 

자산 규모별 부자의 금융자산 비중 비교(그래프=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 2025 한국 부자 보고서)

 

주식, 채권, 펀드, 예·적금, 대체투자 등으로 구성된 금융자산 포트폴리오는 부자에게 ‘선택지’를 제공한다. 반면 부동산은 선택지가 제한적이다. 사고 나면 팔기 어렵고, 팔고 나면 다시 진입하기가 쉽지 않다. 부자는 이 비대칭성을 인식하고 자산 구조를 설계한다.

 

◇ ‘집 한 채’ 신화가 흔들리는 이유

 

부자가 집보다 금융을 더 많이 가진다는 사실은 한국 사회 전체에 중요한 시사점을 던진다. 이는 더 이상 주택 가격 상승만으로 자산 상위 계층으로 이동하기 어려운 구조가 형성됐음을 의미한다. 과거에는 주택 구매 여부가 자산 축적의 출발점이었다면, 이제는 그 이후의 자산 관리 전략이 계층을 가른다.

부동산 중심의 자산 축적 방식은 여전히 유효하지만, 그 효과는 점점 제한적이다. 특히 1주택 보유만으로는 자산 격차를 빠르게 줄이기 어렵고, 추가적인 자산 증식은 금융 영역에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아졌다. 부자는 이를 먼저 인식했고, 이미 자산 구조를 전환하고 있다.

 

이 변화는 자산 격차의 성격을 더욱 복합적으로 만든다. 과거에는 ‘집을 샀는가’가 핵심 질문이었다면, 이제는 ‘자산을 어떻게 나누어 관리하고 있는가’가 더 중요한 질문이 된다. 금융 지식과 정보 접근성, 투자 경험의 차이가 자산 격차를 확대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 금융 중심 구조가 만드는 새로운 격차

 

부자가 금융자산 중심 구조로 이동하면서, 자산 격차는 단순한 금액 차이를 넘어 구조 차이로 고착되고 있다. 금융자산은 지식과 경험이 축적될수록 더 효율적으로 운용할 수 있는 영역이다. 반면 이러한 자산에 접근하지 못한 다수의 가계는 여전히 부동산 가격 변동에 자산의 대부분을 맡긴 채 불확실성에 노출돼 있다.

 

이는 시간이 지날수록 격차를 확대한다. 부자는 금융자산을 통해 위험을 관리하고 기회를 분산시키는 반면, 그렇지 못한 이들은 단일 자산의 변동성에 취약하다. 자산 격차는 단기간에 발생하지 않지만, 장기간에 걸쳐 누적된다.

 

부자가 집보다 금융을 더 많이 가진다는 사실은 단순한 자산 배분의 문제가 아니다. 이는 한국 사회에서 부를 유지하고 확장하는 방식이 이미 변화했음을 보여주는 신호다. 부자는 ‘집을 사는 사람’이 아니라, ‘자산을 설계하는 사람’으로 이동하고 있다.

이제 질문은 분명해진다. 우리는 여전히 부동산 가격 상승만을 기다리고 있는가, 아니면 자산 구조를 다시 설계할 준비가 돼 있는가. 다음 편에서는 부자들이 실제로 어떤 투자 방식과 성향을 통해 자산을 불려왔는지를 살펴보며, 이 구조적 차이가 어떻게 수익의 차이로 이어졌는지를 짚어본다.


 
김영진 사진
김영진 기자  jean@wisdot.co.kr

기사가 마음에 드셨나요?

기사가 마음에 드셨다면 좋은 기사에 후원해 주세요.

위즈경제 기사 후원하기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