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격해부①] 권지웅 위원 “전세사기, 사회가 만든 지뢰밭”
▷ 권지웅 국정기획위원회 자문위원 인터뷰
▷ 은행은 이자 수익만, 중개사는 쌍방대리…구조적 '무책임'이 키운 피해
▷ 최우선변제금 현실화·보증보험 의무화 등 전면 개편 촉구
입력 : 2025.08.13 16:00
수정 : 2025.08.13 16:30
![[전격해부①] 권지웅 위원 “전세사기, 사회가 만든 지뢰밭”](/upload/b40c6f2af9e84a11bdf58e87864fc996.jpg)
[위즈경제] 이수아 기자 =#경북 구미에 거주하는 A 씨는 올해 결혼을 앞두고 전세사기를 당했다. 이로 인해 파혼까지 이어져 하루아침에 집과 예비 가정을 잃었다.
“전세사기는 개인의 부주의가 아니라 국가가 방치한 사회적 재난이다”
2년 전 전세사기 특별법이 제정됐지만 피해자는 이미 3만 명을 넘어섰고, 지난 7월에만 748명이 새로 늘었다. 권지웅 국정기획위원회 자문위원은 “피해자 잘못이 아닌 사회적 재난”이라며 “국민이 전세사기 지뢰밭을 걷는 일을 멈춰야 한다”고 호소했다. 반복되는 사회적 참사는 왜 멈추지 않을까?
◇ 전세사기를 키우는 허점
전세사기 피해자 구제를 위한 제도 개선이 미흡한 가운데 피해가 장기화·확대되고 있다. 권지웅 자문위원은 “임대차 시장의 불공정한 구조와 무분별한 전세대출 확대가 피해를 키운 핵심 요인”이라고 지적했다.
권 자문위원에 따르면, 2023년 4월 이전까지는 임차인이 임대인 동의 없이는 해당 건물의 선순위 임차보증금 현황이나 선순위 담보권 내역을 직접 열람할 수 없었다. 이 때문에 다가구주택이나 다세대주택에서 먼저 계약을 맺은 임차인의 보증금 총액을 파악하지 못해, 나중에 계약한 임차인이 후순위로 밀려 피해를 보는 사례가 빈번했다.

2013년 권지웅 자문위원이 SNS에 게시한 전세사기 피해 사례 (사진=권지웅자문위원)
또한 임대인의 세금 체납 상황도 사전에 알 수 없었다. 권 위원은 “임대인이 세금 체납 상태라는 사실을 계약 전에 고지하지 않으면 임차인이 알 방법이 없었다”며 “세금 압류로 인해 임차인이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위험에 그대로 노출됐다”고 설명했다.
권 위원은 전세자금 대출의 과도한 확장 문제도 지적했다. 전세자금 대출 잔액은 2019년 말 98조 7천억 원에서 2022년 160조 원을 돌파하며 급증했다. 전세가격 폭등과 대출 확대, 금리 상승이 맞물리면서 임차인의 부담과 위험이 크게 늘어났다.
이 과정에서 보증금 미반환, 이른바 ‘깡통전세’ 등 다양한 형태의 피해 사례가 속출했다. 최근 일부 미납국세 열람제도가 도입되면서 임대인의 세금 체납 현황을 사전에 확인할 수 있게 돼 위험도 평가가 다소 용이해졌지만, 전세사기의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는 못했다.
◇ 전세사기 확산, 은행·공인중개사도 ‘모르쇠?’
전세사기 피해가 확산되는 배경에는 은행과 공인중개사의 구조적인 책임 회피가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권지웅 위원은 전세사기 피해자의 70%가 보증금의 절반 이상을 대출로 조달했다는 점을 문제로 제기했다.
권 위원은 “은행이 대출을 승인했다는 것은 해당 주택의 안전성을 검토했다는 의미”라며 “이처럼 사고가 많이 발생한 것은 제대로 된 심사가 이뤄지지 않았음을 보여준다”고 비판했다.
특히 현재 전세대출 구조가 은행에 유리하게 설계된 점을 문제로 꼽았다. 전세대출은 정책사업으로, 대출 부실이 발생하면 주택도시보증공사(HUG)나 한국주택금융공사(HF) 같은 공공기관이 보증을 대신 이행한다. 결국 은행은 손실 위험 없이 이자 수익만 얻는 구조다.

(사진=연합뉴스)
권 위원은 “심사를 엄격하게 할 동기가 부족하니 부실 대출이 나올 수밖에 없다”며 “국가 재정 투입만으로는 한계가 있고, 은행도 일정 부분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공인중개사 제도의 구조적 문제점도 지적됐다. 한국은 한 명의 공인중개사가 임대인과 임차인을 동시에 대리하는 ‘쌍방대리’를 허용하고 있어, 계약 과정에서 임대인에게 유리한 환경이 조성된다.
권 위원은 “임대차 계약 이전에 위험 요소를 걸러내야 할 중개사가 오히려 ‘안전하다’며 임차인을 안심시켜 전세사기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며, 임대인과 임차인이 각각 별도의 중개사를 두는 ‘각자대리’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전세사기 근절을 위해서는 관련 업계의 책임 강화와 함께 제도적 개선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권 위원은 전세사기 피해 해소를 위해 ▲최우선 변제금 ▲피해주택 신속 매입 ▲신탁사기 대응 ▲보증보험 의무화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 최우선변제금, ‘현재 시점’으로 현실화 시급
권지웅 위원은 전세사기 피해자를 보호하는 핵심 제도인 최우선변제금이 과거 기준에 묶여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권 위원은 “현행 최우선변제금 제도가 해당 건물의 최초 근저당 설정 시점 기준을 그대로 적용하는 것이 문제”라며 “부동산 시세가 오른 지금도 과거의 낮은 보증금 기준으로 피해 여부를 판단한다”고 말했다. 이어 “제도 본래 취지를 살리려면 주택임대차보호법을 개정해 현재 시점 기준으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재 서울 지역은 보증금 1억 6500만 원 이하를 소액보증금으로 구분해 경매 시 다른 채권자보다 먼저 돈을 돌려받을 수 있다. 하지만 해당 건물에 근저당이 과거에 설정된 경우, 당시 훨씬 낮았던 보증금 기준이 적용돼 현재 피해를 당한 사람들이 보호 대상에서 제외되는 사례가 발생했다.

서울의 한 다세대주택 (사진=연합뉴스)
권 위원은 “최근 전세사기 피해 사망자 10명 중 5명이 이런 이유로 적절한 보호를 받지 못했다”며 “소액보증금 기준을 현재 시세에 맞춰 적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제도 개편 과정에서 금융권의 반발이 예상된다. 최우선변제금 규모가 커지면 경매에서 은행이 회수할 수 있는 금액이 줄어들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권 위원은 “은행은 대출할 때부터 담보 가치의 130%까지 근저당을 설정해 위험을 이미 반영했다”며 “제도 변경이 은행의 이익을 부당하게 침해한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반박했다.
◇ 피해주택 매입률 4%…“채권 매입으로 속도 높여야”
전세사기 피해주택 매입률이 전체 피해자의 3~4% 수준에 그치고 있는 가운데, 경매 절차 지연과 불법 건축물 처리 과정이 주요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권지웅 자문위원은 “법원은 독립성을 보장받는 기관이라 일괄 지시가 어렵다”며 “개별적으로 협조를 요청해야 하는 상황이라 진행 속도가 느리다”고 설명했다. 또 “다가구 주택의 불법 증축을 합법적으로 전환하는 절차 때문에 매입이 더욱 늦어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국토교통부는 최근 법원에 경매 절차 신속화를 요청했고, 일부 지역에서는 속도가 개선되고 있다. 권 위원은 “그동안은 불법 건축물을 합법으로 변경한 뒤 매입했지만, 앞으로는 일단 매입 후 정비하는 방식으로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피해 회복을 앞당기기 위해 주택 매입과 함께 보증금 반환 채권 매입을 병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권 위원은 “피해자 동의만 있으면 채권은 즉시 매입할 수 있어 절차가 빠르다”며 “매입이 불가능한 주택의 경우 채권 매입을 통해 최소한의 회복을 보장해야 한다”고 밝혔다. 다만, 그는 “이는 상당한 예산이 필요한 사안으로, 정책적 결단이 전제돼야 한다”고 부연했다.

2023년 전세사기 주택 경매 중단 요청하는 전세사기피해자전국대책위원회 (사진=연합뉴스)
◇ “등기부만 봐도 다 나오는데”…신탁사기 대응, 2년 넘게 제자리
신탁사기 피해 주택이 법적 보호망에서 배제된 가운데, 정부의 소극적 대응으로 피해자 구제가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권지웅 자문위원은 “등기부 등본만 확인해도 신탁회사를 알 수 있는데, 정부는 ‘법 개정을 해야 가능하다’는 입장만 반복하고 있다”며 “전세사기 특별법이 시행된 지 2년이 지났지만, 가장 기본적인 채권자 현황조차 제대로 정리하지 않은 것은 의지가 부족하다는 증거”라고 지적했다.
현재 신탁사기 피해는 계약 자체가 법적으로 무효 처리되면서 보증금 반환 채권 보호를 받기 어려운 상황이다. 정부는 피해주택 채권자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 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하지만 권 위원은 “피해자들조차 직접 등기부를 열람해 채권자가 누구인지 확인하는 상황”이라며 “단순히 자료를 모아 정리하면 되는 일을 몇 년째 미루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피해 규모가 약 3만 건이라고 하는데, 인력을 적절히 배치해 나눠 처리하면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 고액 전세, 보증보험 의무화로 사전 차단
권지웅 위원은 전세사기 피해를 예방하기 위해 서울 기준 1억 6500만 원 이상의 주택 계약 시 보증보험 가입을 의무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일반 소비자가 개별적으로 담보권 설정 현황이나 세금 체납 여부를 확인하는 방식은 현실적으로 한계가 있다”며 “보증보험회사가 전문적으로 심사해 안전성을 보장하는 방식이 효과적”이라고 설명했다.
전세사기 피해자 구제에 대해 논의하는 권지웅 자문위원 (사진=위즈경제)
구체적인 방안으로 권 위원은 “건물 사용승인 시 하자보증서를 제출하는 것처럼, 일정 금액 이상의 주택 계약에서는 임대인이 보증보험 증서를 의무 제출하도록 주택임대차보호법에 명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계약 잔금일 기준 7일 전까지 보증보험 증서를 제출하도록 하면 세입자가 위험 요소를 미리 파악해 피해를 막을 수 있다”며 법제화 필요성을 강조했다.
권 위원은 보증보험 의무화의 부가 효과도 언급했다. 그는 “전세사기뿐 아니라 전세금 지연 반환 문제도 함께 해결할 수 있다”며 “제도를 보완하면 임대인이 전세금 반환을 늦춰도 두 달 안에 보증금을 받을 수 있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계약과 동시에 보증보험이 적용되면 세입자의 주거 안정성이 크게 향상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 “지뢰밭 만든 사회가 책임져야”
전세사기 책임 소재에 대해 구조적 문제를 언급한 권 위원은 “피해자는 전 재산을 잃고도 여러 기관 사이에서 스스로를 탓하며 고통받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사회가 만들어놓은 지뢰밭을 국민이 걸어가게 하고, 책임까지 개인에게 떠넘기는 현실은 이제 멈춰야 한다”며 “지금이라도 위험 요소를 제거하고, 이미 피해를 당한 사람들을 실질적으로 도울 수 있는 정책을 만들어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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