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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Zoom-in] 떠나는 청년, 사라지는 고향…‘지방 탈출’은 계속된다

▷ 기회는 수도권에만 있다…“돌아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현실”
▷ 반복되는 정책 속 떠나는 청년…지역 정착의 조건은 무엇인가?

입력 : 2025.07.29 13:30 수정 : 2025.07.29 13:45
[지역 Zoom-in] 떠나는 청년, 사라지는 고향…‘지방 탈출’은 계속된다 바쁘게 흘러가는 서울역, 청년의 ‘도착’이자 ‘출발’ (사진=클립아트코리아)
 

[위즈경제] 이수아 기자 =서울과 지방의 격차는 더 이상 통계 수치에만 머물지 않고, 국민 일상 전반에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주거, 일자리, 교육, 의료 등 핵심 인프라의 수도권 집중은 지방 인구 유출과 경제 침체로 이어지고 있으며, 이는 국가의 균형 발전과 지속 가능성에 대한 과제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위즈경제 [지역 Zoom-In]은 단순한 지역 현황 보도를 넘어, 지방소멸이라는 구조적 문제 속에서 지역 주민의 삶이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살펴보고자 합니다. 청년 인구 유출, 부동산 침체 등 다양한 사례를 통해 단순히 정책이나 통계로 설명하는 데 그치지 않고, 지역 주민의 삶을 구체적이고 현장감 있게 조명하고자 합니다. [편집자주]

 

​◇ 돌아가고 싶어도, 돌아갈 수 없다

 

충남 홍성에서 나고 자란 이모 씨(28)는 인문계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조경 분야에 흥미를 느껴 충남에 한 조경학과에 진학했다. 대학 시절에는 취업에 대한 고민이 크지 않았지만, 군 복무 후 복학하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본격적으로 진로를 고민하던 그는 “충남을 포함한 비수도권 지역에서 조경 관련 일자리가 턱없이 부족하고, 취업 이후에도 발전 기회의 한계가 뚜렷하다는 현실을 마주하게 됐다”고 말했다. 

 

결국 그는 더 많은 기회와 성장 가능성을 좇아 서울로 향했다. 현재는 서울의 한 조경설계회사에서 근무 중이며, 직무 전문성은 물론 문화·생활 환경 면에서도 “지방보다 월등하다”는 만족감을 느끼고 있다. 이 씨는 지방의 낮은 연봉, 적은 일자리, 발전 기회 부족 등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현재 상황이 바뀌지 않는다면 지방으로 돌아갈 생각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창원 출신으로 서울의 한 예술대학에 재학 중인 김모 씨(24)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고등학생 시절 패션디자인에 관심을 가지면서 자연스럽게 서울 진학을 목표로 삼았다. 그는 “창원에서는 패션 분야를 체계적으로 배울 기회가 많지 않았고, 서울은 패션쇼나 전시회 같은 관련 행사가 많아 자연스럽게 수도권을 떠올리게 됐다”고 말했다.

 

실제로 대학 생활을 이어가며 서울의 다양한 문화적 기회를 체감하고 있다는 그는, 영화제, 디자인 페어 등 다양한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패션디자인에서 더 나아가 영화나 드라마 미술 분야로 진로를 넓히는 중이다. 최근에는 ‘오징어 게임’이나 ‘더 폴’과 같은 작품을 예로 들며, “공간 디자인이나 캐릭터 의상 연출 등에서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는 영화 미술팀에 들어가고 싶다”는 구체적인 목표도 생겼다.

 

그는 졸업 후 직장 역시 서울에서 구하고 싶다고 했다. 영화 미술 관련 제작사나 스튜디오 대부분이 수도권에 밀집해 있어, 자연스럽게 수도권에 머무를 계획을 세우고 있다는 것이다. 김 씨는 “창원에는 관련 직종이 거의 없어 현실적으로 돌아갈 수 있는 여건이 되지 않는다”며 현재로선 지방 복귀에 대한 계획은 없다고 밝혔다.

 

자발적 선택이 아닌 구조적 탈출 

 

지방소멸의 문제는 시간이 지날수록 가속화되고 있다. 특히 청년층의 수도권 유출은 이제 단순한 개인의 선택이 아닌, 지방에 더는 머물 수 없는 구조적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많은 청년이 “지방에 살고 싶지만, 마땅한 일자리도, 미래도 없어 어쩔 수 없이 떠난다”고 입을 모으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지방을 떠나는 청년들 (사진=클립아트코리아)
 

 

무엇보다 경제 활동의 수도권 집중이 대표적인 요인이다. 통계청이 2024년 12월 발표한 ‘2023년 지역소득’에 따르면 전국 명목 지역내총생산(GRDP)은 2,404조 원이며, 이 중 수도권(서울·경기·인천)이 차지하는 비중은 1,258조 원으로 52.3%에 달한다. 절반 이상의 경제력이 수도권에 집중된 셈이다. 

 

노동시장 격차도 뚜렷하다. 2025년 한국고용정보원의 ‘지역노동시장 양극화와 일자리 정책과제’에 따르면 수도권과 비수도권 간 청년 고용률은 평균 5% 이상 차이를 보인다. 2022년 기준 수도권 청년 고용률은 46.6%, 비수도권은 40.8%로 나타났고, 명목임금 역시 수도권이 평균 321만 원, 비수도권은 282만 원으로 14.1%의 격차가 나타났다. 

 

지방 청년이 수도권으로 몰리는 것은 단순한 취향의 문제가 아니다. 경제적 생존과 미래를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 되고 있다.

 

반복되는 지역 청년 정책의 한계…바뀌지 않는 현실

 

많은 청년이 교육, 일자리를 이유로 수도권으로 떠나면서, 지역 사회의 노동력이 감소하고 소비가 위축되는 등 지역 경제와 사회 구조가 약화하고 있다. 정부는 이러한 청년 유출을 막기 위해 2021년부터 89곳을 ‘인구감소지역’으로 지정하고, 해당 지역을 중심으로 매년 1조 원의 ‘지방소멸대응기금’을 지원하고 있다. 일부 지자체는 청년에게 정착 지원금이나 창업 보조금도 운영 중이다. 

 

하지만 정책은 여전히 단기적이고 파편적이라는 지적이 많다. 국회예산정책처는 2024년 ‘인구감소 지원사업 평가’에서 지방소멸 대응 정책의 중복성, 현금성 위주 지원, 높은 재이주율 등을 문제점으로 지적하며, 일자리 질 개선과 교육·문화 인프라 확충 등 구조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구정태 대한민국시장·군수·구청장협의회 전문위원은 “지역에도 일정 수준의 일자리는 있지만, 청년들이 선호할 만한 질 좋은 일자리는 절대적으로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때문에 상당수의 청년들이 본인이 원하는 일자리를 찾아 떠날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이에 더해 그는 “청년뿐 아니라 전 연령대가 지역에 머물기 위해선 교육, 주거, 의료, 문화 등 전 생애주기 인프라가 고르게 갖춰져야 한다”“청년에게는 단순한 생계 지원보다 자아실현과 성장의 기회를 제공하는 환경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구 위원은 “지방소멸 위기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과감한 예산 투자와 행정적 지원을 바탕으로 수도권과 경쟁할 수 있는 메가시티 권역을 육성하는 등 구조적이고 장기적인 지역발전 전략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떠나지 않아도 되는 지역’을 만들려면

 

지역 인구소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장기적인 지방 정책이 논의되고 있지만, 정작 청년들이 마주한 현실은 여전히 ‘선택지가 없는 상황’이다. 앞서 서울에서 영화 미술 분야의 꿈을 좇고 있는 김모 씨 역시 지방과 수도권 사이에서의 고민을 털어놨다.

 

김모 씨는 서울 생활이 언제나 만족스럽기만 한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새로운 것을 배우며 느끼는 흥미는 분명하지만, 현장 경험 부족과 치열한 경쟁 속에서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서울은 문화적으로 풍요롭지만, 그만큼 소모적인 면도 있다”“지방은 조용하지만 기회가 적어 쉽게 결정을 내리기 어렵다”고 말했다.



불은 꺼지지 않지만, 누구나 머무를 수 있는 곳은 아니다 (사진=클립아트코리아)

“평생 살아온 고향에 친구와 가족이 있기에 언젠가는 돌아가고 싶어요. 하지만 지금은 꿈을 위해 서울에 있어야 하죠.”

김 씨의 말처럼, 청년의 상경은 자발적 선택이기보다 ‘머물 수 없는 구조’에서 비롯된다.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마음이 있어도, 돌아갈 수 있는 기반이 없다면 청년은 계속해서 수도권에 머물 수밖에 없다.

기회의 불균형이 지속되는 한, 지방은 청년의 ‘선택지’에서 멀어진다. 청년이 반강제로 고향을 떠나지 않도록 하려면, 이제는 ‘떠나지 않아도 되는 지역’을 만드는 일이 국가의 과제가 돼야 한다.
 
이수아 사진
이수아 기자  lovepoem430@wisdo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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