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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수출 호황, 가계엔 더딘 온기…소비 회복 가로막는 물가·임금

▷반도체·컴퓨터 수출 급증…설비투자 호조, 건설 부진도 일부 완화
▷실질임금 상승률 0.2%에 소매판매 감소…가계 구매력 회복 제약
▷전체 물가 상승률 낮아졌지만 기조적 압력 확대…회복의 확산 과제

입력 : 2026-10-12 14:30
AI 수출 호황, 가계엔 더딘 온기…소비 회복 가로막는 물가·임금 지난 1일 부산항 신선대, 감만, 신감만 부두에 수출입 화물이 가득 쌓여 있는 모습.(사진=연합)
 

[위즈경제] 조중환 기자 = AI 투자 확대가 한국 경제의 회복을 이끌고 있지만, 그 온기가 가계 소비로 번지는 속도는 더디다. 반도체를 중심으로 수출과 설비투자가 호조를 이어가는 가운데 내수와 밀접한 업종은 부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고유가에 따른 물가 부담과 미약한 실질임금 상승이 겹치면서 기업의 실적 개선과 가계의 체감경기 사이에 간극이 나타나는 모습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경제동향 2026년 10월호’에서 우리 경제가 AI 관련 수출과 설비투자의 호조에 힘입어 개선세를 이어가고 있다고 평가했다. 다만 경기 개선 효과가 가계 전반으로 확산되지 못하면서 소비 개선세는 완만한 수준에 머물고 있다고 진단했다.

 

◇ 수출·투자 이끄는 AI…가격 효과도 함께 살펴야

 

9월 수출액은 전년 동월 대비 83.5% 증가했다. 조업일수를 고려한 일평균 수출액 증가율은 104.8%에 달했다. 일평균 금액 기준 반도체 수출은 304.9%, 컴퓨터는 497.6% 늘었다. KDI는 두 품목의 높은 증가율이 주로 가격 급등에 기인한다고 설명했다.

 

수출 확대가 가격 상승만의 결과는 아니다. 8월 일평균 수출물량도 28.8% 증가했고, 컴퓨터·전자 및 광학기기의 물량 증가율은 33.4%를 기록했다. 글로벌 AI 투자 수요가 수출 금액과 물량을 함께 끌어올리고 있는 셈이다. 다만 수출액 증가율을 그대로 생산 확대나 국내 소득 증가의 크기로 해석하기보다는 가격과 물량의 기여를 구분해 볼 필요가 있다.

 

호조는 AI 인프라 관련 품목으로도 이어졌다. 9월 일평균 철강제품 수출은 15.3%, 비철금속은 49.1% 증가했다. 반도체에 집중된 수출 흐름 속에서도 관련 산업으로 수요가 확산되는 움직임이 확인된다.


반도체 수출이 가파르게 증가하며 수출 호조를 주도하고 있다. 그래프는 전년 동기 대비 증가율의 3개월 이동평균 기준. (자료=KDI, 산업통상부·한국무역협회·한국은행) 

 

설비투자도 반도체 관련 부문을 중심으로 높은 증가세를 유지했다. 8월 설비투자는 16.1% 늘었고, 기계류 투자는 25.4% 증가했다. 특히 반도체제조용장비 투자는 107.7% 급증했다. 일반산업용기계와 전기·전자기기 투자도 각각 14.4%, 10.1% 증가해 반도체 이외 기계류에서도 개선 흐름이 나타났다.

 

건설 역시 비주거용 건축을 중심으로 부진이 일부 완화됐다. 8월 건설기성은 1.3% 증가로 전환했다. 다만 경상금액 기준으로 반도체 공장 등이 포함된 비주거용 건축은 19.2% 늘어난 반면, 주거용 건축은 2.7% 감소했다. 건설 회복에서도 산업시설과 주택 사이의 차이가 남아 있다.

 

◇ 소비는 제자리…물가 부담에 구매력 회복 지연

 

가계 소비의 흐름은 수출·투자와 대조적이다. 8월 소매판매액지수는 전년 동월 대비 0.3% 감소했고, 계절조정 전월 대비로도 1.8% 줄었다. 승용차 판매가 19.2% 감소한 영향이 컸다. 개별소비세 인하 종료에 따른 수요의 사전 반영에 완성차 업체의 파업과 하계휴가로 인한 생산 차질이 겹쳤다.

 

그러나 자동차의 일시적 부진만으로 소비 약세를 설명하기는 어렵다. 준내구재 판매는 1.3% 감소했고, 비내구재는 전년 동월 대비 증가했지만 계절조정 전월 대비로는 두 달 연속 줄었다. 서비스업생산 전체는 4.6% 증가했으나 소비와 밀접한 숙박·음식점업은 2.8% 감소했다. 전체 서비스업의 개선이 생활 현장의 회복과 같은 속도로 진행되지는 않는 것이다.

 

가계 구매력도 좀처럼 살아나지 못하고 있다. 올해 1~7월 실질임금 상승률은 0.2%에 그쳤다. 물가 상승을 제외하면 임금의 구매력이 사실상 정체된 수준이다. 수출기업의 호황이 소비 확대로 이어지려면 고용과 임금을 통한 소득 개선이 뒷받침돼야 하지만, 아직 그 연결고리는 강하지 않다.


서비스업생산의 개선에 비해 상품 소비를 보여주는 소매판매의 회복은 더디다. 그래프는 전년 동기 대비 증가율의 3개월 이동평균 기준. (자료=KDI, 국가데이터처·한국은행) 

 

물가도 소비 회복을 제약하고 있다. 9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2.9%로 전월의 3.1%보다 낮아졌다. 그러나 이는 전월 통신비 관련 기저효과가 사라진 영향이 컸다. 통신비를 제외한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오히려 2.7%에서 3.1%로 높아졌고, 통신비를 제외한 근원물가 상승률도 2.6%에서 2.8%로 확대됐다.

 

공급 측 부담은 여전하다. 두바이유 월평균 가격은 7월 배럴당 76.8달러에서 9월 113.7달러로 상승했다. 수입물가 상승분이 시차를 두고 반영되면서 가공식품 가격 상승률도 높아졌다. 전체 물가 상승률의 소폭 하락만으로 가계의 생활비 부담이 완화됐다고 판단하기 어려운 이유다.

 

고용은 회복 조짐을 보이지만 업종·연령별 차이가 남아 있다. 8월 취업자는 18만4000명 증가했으나 제조업과 건설업 취업자는 각각 3만8000명, 3만2000명 감소했다. 20대 고용률도 전년 동월보다 0.9%포인트 낮았다. 수출과 투자 개선이 고용 전반의 회복으로 이어지는지를 더 지켜봐야 한다.

 

이번 보고서가 보여주는 핵심은 경기 회복의 유무보다 회복이 확산되는 경로다. AI 수요가 수출과 장비투자, 산업시설 건설을 끌어올리는 흐름은 뚜렷하다. 반면 가계가 지출을 늘릴 기반인 실질임금과 생활 밀착 업종의 회복은 약하다. 수출 호조가 이어지더라도 물가 부담이 소득 개선을 상쇄한다면 거시지표와 체감경기의 간극은 쉽게 좁혀지기 어렵다.

 

따라서 정책의 초점도 수출 성과와 함께 그 성과가 고용·임금·소비로 이어지는지에 맞춰질 필요가 있다. 취약계층의 구매력과 내수 업종의 회복 여건을 살피되, 공급 측 물가 압력이 높은 상황에서 소비 부양의 규모와 방식은 신중하게 설계해야 한다. 회복의 성과를 판단할 기준은 수출 증가율뿐 아니라 가계가 실제로 체감하는 소득과 생활비의 변화여야 한다.

 
조중환 사진
조중환 기자  highest@wisdo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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