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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버티는 상장사’의 시대는 끝났다

▷상장폐지 기준 강화는 규제가 아닌 시장의 경고
▷상장 유지보다 기업가치 회복을 경영의 중심에 둬야

입력 : 2026-07-15 13:03
[칼럼] ‘버티는 상장사’의 시대는 끝났다 (사)한국기업회생협회 윤병운 회장.
 

[위즈경제] 류으뜸 기자 =최근 금융위원회와 한국거래소가 내놓은 상장폐지 제도 개편안은 상장사의 생존 전략을 ‘상장 유지’에서 ‘기업가치 회복’으로 바꾸라는 시장의 신호다.

시장 반응은 엇갈린다. 누군가는 이번 개편을 ‘동전주 솎아내기’라고 평가한다. 다른 한편에서는 ‘혁신기업 죽이기’가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그러나 20년 가까이 부실기업 회생 현장과 인수·합병(M&A) 협상 테이블을 오가며 지켜본 입장에서 이번 개편은 규제의 문제가 아니다. 신호의 문제다.

 

시가총액 기준 상향, 동전주 요건 신설, 공시 위반과 자본잠식 기준 강화가 공통으로 말하는 것은 하나다. 더 이상 상장사라는 지위 자체는 아무것도 보장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동안 적지 않은 한계기업은 실적 개선보다 유상증자와 전환사채 발행, 최대주주 변경, 테마성 신사업 발표를 반복했다. ‘상장 유지’라는 목표 자체를 경영전략처럼 취급했다. 이번 제도 개편은 이런 관행에 대한 시장의 마지막 경고에 가깝다.

 

현장에서 가장 자주 받는 질문은 “주가를 어떻게 방어하느냐”다. 그러나 이 질문은 잘못된 진단에서 출발한다.주가 1천원 붕괴는 병이 아니라 증상이다. 그 이면에는 수년간 이어진 영업손실과 현금흐름 악화가 있다. 감당하기 어려운 금융부채와 불안정한 만기 구조도 자리 잡고 있다. 상환보다 연명을 위한 전환사채와 신주인수권부사채 발행이 반복된다. 경영권 안정이 아닌 매각 차익을 노린 최대주주 교체도 잦다. 본업과 무관한 신사업 발표로 주가를 일시적으로 띄우는 관행이 이어지고, 이 과정에서 공시 신뢰도는 떨어진다.

 

이런 기업이 위기에 몰리면 가장 먼저 꺼내는 카드가 주식병합이나 감자 후 유상증자다. 단기적으로 상장폐지 시계를 늦출 수는 있다. 그러나 영업이익과 현금창출력이라는 근본 변수가 그대로라면 같은 위기는 반드시 되돌아온다.구조조정 자문 현장에서는 감자와 병합을 두세 차례 반복한 뒤에야 본질적인 처방을 찾아오는 기업을 드물지 않게 본다. 그때는 이미 협상력과 시간이 줄어들고 남은 자산도 크게 소진된 뒤다.

 

주가는 관리의 대상이 아니다. 기업가치의 결과값이다. 이 명제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기업은 어떤 제도 아래에서도 같은 실패를 반복한다.상장폐지 제도 강화의 방향성 자체는 타당하다. 부실기업이 시장에 장기간 잔류하면서 발생하는 투자자 피해를 줄일 수 있다. 자본이 성장기업으로 재배분되면서 시장 효율성도 높아질 수 있다. 허위공시와 단기 주가 부양 등 시장 교란 행위에 대한 억지력도 커진다.

 

다만 놓쳐서는 안 될 위험도 있다. 아직 매출이 본격화되지 않은 바이오와 플랫폼, 콘텐츠 기업이 일시적인 시가총액 하락만으로 퇴출 압박을 받을 수 있다. 투자자 불안이 투매를 부르고, 투매가 다시 시가총액 하락으로 이어지는 자기실현적 악순환도 발생할 수 있다.

 

이번 개편은 ‘퇴출의 정교화’이지 ‘회생의 설계’는 아니다. 회생 경로를 설계하는 일은 지금도 온전히 기업과 자문사의 몫으로 남아 있다.상장폐지 위험기업이 살아남으려면 주가가 아니라 사업구조와 재무구조를 동시에 재설계해야 한다. 현장에서는 통상 여덟 단계의 회생 로드맵을 적용한다.

첫 단계는 정밀 진단이다. 주가와 시가총액만 볼 것이 아니다. 자본잠식률과 공시 위반 이력, 차입금 만기 일정, 가용 현금, 최대주주 지분구조를 한 장의 지도처럼 그려야 한다.

두 번째는 13주 현금흐름 분석이다. 기업은 언제 현금이 마르는지를 주 단위로 예측해야 한다. 이를 파악하지 못하는 기업은 적자 규모와 관계없이 가장 위험한 기업이다. 생존을 결정하는 것은 손익계산서보다 현금흐름표다.

 

세 번째는 사업 포트폴리오 재편이다. 현금을 버는 사업과 현금을 갉아먹는 사업을 냉정하게 구분해야 한다. 현금창출 사업에는 자원을 집중하고 만성 적자 사업은 정리 대상으로 명확히 정해야 한다.네 번째는 자산 매각과 유동성 확보다. 유휴 부동산과 비핵심 자회사, 사용하지 않는 설비를 매각해 운전자금을 마련해야 한다. 다만 헐값 급매가 아니라 기업가치를 지키는 전략적 매각이어야 한다.

 

다섯 번째는 채무구조 개선이다. 유상증자만으로 시간을 버는 방식은 근본적인 해법이 아니다. 금융기관과 만기 연장, 금리 인하, 출자전환, 채무재조정을 함께 추진해야 한다. 채무조정 없이 투자유치만 밀어붙이면 신규 자금이 기존 부채 상환에 흡수되는 악순환에 빠진다.여섯 번째는 전략적 투자자와 재무적 투자자 유치다. 기술과 브랜드, 고객, 특허, 생산설비 등 기업이 보유한 핵심 자산을 중심으로 투자자를 설득해야 한다. 투자자를 단순한 자금 제공자가 아니라 기업가치를 함께 높이는 파트너로 접근해야 성사 가능성이 커진다.

일곱 번째는 M&A 추진이다. 많은 경영진은 M&A를 최후의 수단으로 여긴다. 실무 경험으로 보면 정반대다. 기업가치가 남아 있을 때 전략적 인수자를 찾아야 협상력과 매각가를 모두 지킬 수 있다. 자산을 모두 소진한 뒤 추진하는 M&A는 헐값 매각에 가까워진다.

 

여덟 번째는 법적 구조조정 제도의 활용이다. 기업회생절차와 자율구조조정지원 프로그램(ARS), 사전 자율구조조정지원 프로그램(Pre-ARS), 워크아웃은 최후의 카드가 아니다. 조기에 검토해야 할 선택지다. 적기에 활용하면 영업을 유지하면서 채무조정과 기업가치 보전을 함께 달성할 수 있다.이 여덟 단계에서 중요한 것은 순서다. 진단과 현금흐름 파악 없이 곧바로 투자유치나 M&A로 건너뛰는 기업이 실패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해외에서는 이미 퇴출만이 아니라 회복을 함께 설계하고 있다. 미국의 연방파산법상 기업회생절차인 챕터 11은 기업이 정상 영업을 유지하면서 채무를 조정하고 신규 투자를 유치할 수 있는 법적 틀을 제공한다. 일본은 산업재생기구와 민간 구조조정 전문가를 결합해 국가 차원에서 사업재편을 지원해왔다.

 

두 사례의 공통점은 분명하다. 부실기업을 무조건 퇴출하는 것이 아니다. 회생 가능성을 객관적으로 평가한 뒤 회복 경로를 설계한다. 한국 자본시장이 퇴출 기준을 정교화하는 지금 반드시 함께 논의해야 할 과제가 회복 인프라다.

 

퇴출 기준만으로는 투자자 보호와 산업 경쟁력 유지라는 두 가지 목표를 동시에 달성하기 어렵다. 상장기업 조기경보 시스템과 상장기업 구조조정 지원센터가 필요하다. 구조조정 전문 펀드와 M&A 매칭 플랫폼도 활성화해야 한다. ARS와 Pre-ARS의 적용 범위를 넓히고, 회생 가능성이 있는 기업에는 조건부 개선기간을 부여할 필요가 있다. 퇴출 기준과 회복 경로가 함께 작동할 때 비로소 ‘다산다사’의 시장구조가 실질적으로 완성될 수 있다.

 

동전주 문제의 해법은 주식병합이나 반복적인 유상증자가 아니다. 현금흐름 개선과 사업재편, 채무조정, 전략적 투자유치, M&A를 하나의 패키지로 묶어 실행하는 통합 구조조정만이 기업가치를 근본적으로 회복시킨다.

 

정부가 퇴출의 기준을 세웠다면 기업이 던져야 할 질문도 달라져야 한다. 더 이상 “어떻게 상장을 유지할 것인가”는 유효한 질문이 아니다.이제는 “어떻게 기업가치를 회복해 시장과 투자자의 신뢰를 다시 얻을 것인가”라고 물어야 한다.상장폐지 기준이 강화되는 시대에 살아남는 기업은 버티는 기업이 아니다. 사업과 재무구조를 다시 설계할 용기를 가진 기업만이 새로워진 자본시장에서 다음 승자가 될 수 있다.

 
류으뜸 사진
류으뜸 기자  awesome@wisdo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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