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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그늘/재개발] “성노동자의 죽음은 사회적 죽음” 이주 대책을 촉구한 목숨 건 투쟁

▷불법사금융에 내몰린 삶, 끝내 막지 못한 사회의 책임
▷“우리는 살고 싶다”… 실질적 이주대책이 해법이다

입력 : 2025.09.18 18:00 수정 : 2025.09.18 18:43
[도시그늘/재개발] “성노동자의 죽음은 사회적 죽음” 이주 대책을 촉구한 목숨 건 투쟁 18일 성북구청 앞, 신월곡 1구역 이주대책위원회 주최로 지난해 9월 22일 세상을 떠난 대책위 소속 미아리 텍사스촌 성노동자 A 씨의 1주기 추모식이 열렸다. (사진= 위즈경제)
 

[위즈경제] 전희수 기자 =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아. 금방이라도 ‘언니!’하고 돌아올 것만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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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성북구청 앞, 신월곡 1구역 이주대책위원회 주최로 지난해 9 22일 세상을 떠난 대책위 소속 미아리 텍사스촌 성노동자 A 씨의 1주기 추모식이 열렸다. 추모식에는 그를 그리워하는 신월곡 1구역 철거민 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와 연대 활동가 등 관계자들이 함께 자리했다.

검은 옷차림의 대책위는 밥상을 닦고 과일과 떡을 차리며 정성껏 추모식을 준비했다. 추모식이 시작되자 참석자들은 고인의 영정사진 앞에 흰 꽃다발과 국화를 올리며 그를 기렸다.

이어 대책위 위원장은 숨을 고른 뒤 손편지를 꺼내 읽었다.
“너와 얘기할 수 없다는 현실이 또 한 번 가슴을 후벼 판다. 지치지 않고 쓰러지지 않겠다던 너의 그 마음이 무너졌을 땐 얼마나 힘들었을까”

위원장의 편지 낭독에 대책위는 고개를 숙였다. 누군가는 손수건으로 눈가를 훔쳤고, 또 다른 이는 휴지로 붉어진 얼굴을 감쌌다.

이어 대책위 소속 B 씨도 편지를 읽었다“내가 알던 너는 인생에서 바닥을 치고도 다시 올라올 수 있는 강인함이 있었고, 뭘 하든 뭘 배우든 그 위치에서 최고가 되겠다고 끈기 있게 노력했고, 하루 일상을 부지런히 보냈고 사소한 것들에게도 감사할 줄 아는 사람, 사랑해주는 법을 알고 받는 법도 아는 그런 너였어”

또 다른 대책위 소속이자 A 씨의 친구라고 밝힌 C 씨는 이렇게 기억했다“아직도 너의 실없는 농담에 함께 웃고 떠들던 날이 엊그제 같은데 항상 밝고 씩씩하게 살아가던 너의 빈자리를 이렇게 다시 상기하니 우린 또 눈시울이 붉어지고 마는구나. 짧다면 짧은 시간동안 내게 소중한 친구가 되어줘서 고마웠어

발언을 이어간 대책위 소속 D 씨는 마이크를 들다 이내 울음을 터뜨렸다. D 씨를 대책위 대표와 위원장이 다독이는 장면은 추모식의 무거운 공기를 더욱 짙게 만들었다


성노동자 해방행동 주홍빛연대 차차 단체 활동가 여름씨는 “A님은 홀로 가족을 부양하던 가장으로 미아리 재개발로 인해 수입이 줄어들자 극심한 생활고를 겪었지만 투쟁하는 삶을 포기하지 않았다그는 미아리 성노동자 이주 대책 위원회 활동에 적극적으로 함께한 우리의 동료 활동가였다고 밝혔다.

대책위와 동료 활동가들이 기억하는 A 씨는 누구보다 씩씩하고 강인했으며, 재개발 과정에서 이주 대책을 요구하며 싸워온 사람이었다

 

 

신월곡 1구역 이주대책 위원회 측이 A씨에게 전하는 편지 일부 (사진=위즈경제)

◇ 강인함조차 무너뜨린 사회적 구조

대책위 대표는 2024 9 19 A 씨에게서 받은 마지막 문자를 공개했다.

“매일 같은 협박과 시달림에 주변 사람들에게까지 피해가 가고 저조차도 처음 겪어보는 모든 것들에 어떤 대처를 해야 하는지 눈앞이 깜깜했습니다. 딸이나 아빠가 잘못될까 봐 전전긍긍했고 순간적으로 죽고 싶다는 생각에 잘못된 행동도 했습니다. 머릿속이 백지장처럼 하얗게 마비돼 버려 당장 하루하루 터지는 일부터 해결하기에 바빠 약속을 미루게 되고, 사람으로서 해서는 안 될 실수를 해버렸습니다.

당장 일을 그만둘 수도 없는 상황이고 제가 당장 어떻게 해야 할지 간단히 정리해서 토요일에 찾아뵙고, 그동안 통화로 제대로 설명드리지 못했던 부분들을 보여드리고 설명드리겠습니다. 정말 실망스러운 모습 보여드려 이모께도, 모두에게도 정말 죄송하고 또 죄송합니다”

대책위에 따르면, 미아리 텍사스촌이 위치한 신월곡 1구역의 재개발로 수익이 급격히 줄어든 A 씨는 딸과 뇌졸중으로 쓰러진 아버지의 생활비를 위해 불법사금융에 손을 댔다.

불과 수십만 원이었던 빚은 이자가 불어나 수천만 원이 됐고, 사채업자는 돈을 갚으라며 가족과 지인에게 '성노동자'라는 낙인을 찍는 비방 메시지를 하루 수백 통씩 퍼부었다.

불법 사채업자의 협박 속에 결국 A 씨는 죽음으로 내몰렸다.

지난 6월 서민금융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저신용자의 70% 이상이 대부업 대출을 거절당한 경험이 있었고, 급전을 구하지 못한 상당수가 불법 사금융으로 내몰렸다.

불법 대출 이용자는 최대 6만여 명, 규모는 8천억 원에 달한다. 평균 금리는 연 500%를 넘어 일부는 1,200% 이상을 부담했으며, 전체적으로 최소 2조 원대의 이자 폭탄이 가계에 전가되고 있었다.

연구원은 이 같은 과도한 부담이 단순한 경제 문제를 넘어 폭력적 추심, 신체 위협 등 심각한 사회적 위험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A
씨는 생계비 마련을 위해 미아리 텍사스촌에서 성노동에 뛰어들었다. 그에게 텍사스촌은 주거와 일터가 결합된 삶의 터전이었다.

그러나 이곳이 위치한 성북구 하월곡동 신월곡 1구역은 2023 11월 도시환경정비를 위한 재개발 관리처분인가를 받으면서 철거가 추진됐다.

 

재개발은 성노동자들에게 일터와 삶터를 동시에 빼앗는 결과를 낳았다. 법적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하는 그들은 소득 증빙이나 재직증명이 어려워 제도권 금융에서 사실상 배제되고, 결국 생계를 위해 불법사금융으로 내몰릴 수밖에 없는 구조에 놓인다.

 

추모식에 참석한 청소년 성노동 연대 활동가는 사회는 부서지고 깨진 틈 사이에서 살아가는 개인들을 탓한다그러나 개인을 취약하게 만드는 상황과 취약성에 낙인을 찍는 사회가 문제이지, 취약성 자체가 문제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 또 다른 희생을 막으려면성노동자를 위한 이주 대책마련 시급

신월곡 1구역의 재개발로 삶의 터전을 잃은 대책위는 A 씨의 죽음 이후 1년이 지났지만 아직까지 달라진 것이 없다고 지적했다. 성노동자와 거주자 등에 대한 보호 조치나 주거 마련을 위한 지원 방안이 충분치 않다는 것이다.

이날 추모식에 참석한 대책위와 사회 활동가 등 관계자들은 이주 대책을 마련하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성노동자 연대 활동가는 “성노동자의 죽음은 사회적 죽음이다. 성노동자 죽이기를 멈춰라”고 말했다.

추모식 한편에 놓인 푯말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우리는 살고 싶다” 

살고 싶다는 절규는 단순한 구호가 아니다. 재개발의 그늘 속에 놓인 성노동자와 철거민들의 생존 요구다. 지금 필요한 것은 보여주기식 대책이 아닌, 실질적인 이주 보장과 제도적 보호 장치다. 그것이 또 다른 죽음을 막는 유일한 길이다

 

 

신월곡 1구역 이주대책위원회 소속 미아리 텍사스촌 성노동자 A 씨의 1주기 추모식과 '우리는 살고 싶다' 푯말 (사진=위즈경제)

 

 

 
전희수 사진
전희수 기자  heesoo5122@wisdo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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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권을 줘야합니다 공산당도 아니고 일방적으로 밀어부치는 섣부른 정책 다시 검토해야합니다.

2

탈시설 지원법은 악법이며 폐기 되어야만 합니다. 부모회는 자립을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무조건적 탈시설 보다는 자립을 원하면 자립 지원을 해주고 시설을 원하면 입소 지원을 해달라는 것입니다.

3

탈시설은 자립의 유일한 길이 아닙니다. 중증장애인에게는 선택권과 안전한 돌봄이 먼저 보장돼야 합니다. 정부는 현실에 맞는 복지 다양성을 마련해야 합니다.

4

다양한 삶의 방식 앞에 놓이는 단일 선택은 폭력입니다. 각자의 삶에 맞는 환경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합니다.

5

탈시설 지원법은 중증장애인들을 사지로 내모는 악법이다. 다양한 시설과 시설의 처우개선은 뒤로 한체 시설에 있는 장애인들은 생존권까지 무시한 폐쇄에만 목적을 둔 이권사업으로써 탈시설 지원법은 폐기 시켜야 합니다.

6

탈시설 정책을 시작한 복지 선진국에서의 주요 대상자는 정신장애인과 지체장애인이다. 거주시설은 중증장애인들이 부모사후 인권을 보장받으며 살아갈 제 2의집 장애인들의 마지막 보루다! 마땅리 존치되어야한다. 정부는 장애인들의 권리를 획일적인 자립정책으로 박탈하지말고 거주시설을 더더욱 늘리는 정책을 펼쳐라!

7

자기사업의 이권을 위해 중증발달장애인들을 시설밖으로 내보려는 서미화 의원에게 법을 만들라고 맡기는 이런 국회가 필요한지? 당장사퇴하라 외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