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마크 Link 인쇄 글자크기

글자크기 설정

글자크기 설정 시 다른 기사의 본문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Next 블록체인③] 카드는 인간을 보고, 블록체인은 AI를 본다

▷카드 네트워크는 고객 권한 위임 모델…블록체인은 AI 자체 신원 부여
▷AI 결제 주도권 경쟁, 결제망보다 신뢰 체계 싸움으로 이동

입력 : 2026-08-21 09:49
[Next 블록체인③] 카드는 인간을 보고, 블록체인은 AI를 본다 생성형 AI(쳇GPT)의 도움을 받아 시각화하고 기자가 최종 검토 및 확인해 제작한 그래픽입니다
 

[위즈경제] 조중환 기자 = 생성형 AI가 검색과 추천을 넘어 예약, 구매, 결제, 자산관리까지 대신 수행하는 ‘AI 에이전트 경제’가 다가오고 있다.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가 2026년 8월 발간한 보고서 ‘블록체인의 다음 진화: AI 에이전트 경제 인프라로의 도약’은 AI가 경제활동의 주체로 부상하면서 금융 인프라의 경쟁축이 단순 결제에서 신원 확인, 권한 관리, 거래 검증, 컴플라이언스로 옮겨가고 있다고 분석했다. 위즈경제는 보고서를 토대로 블록체인의 역할 변화와 카드·블록체인 진영의 경쟁, 국내 금융권의 과제를 5회에 걸쳐 짚어본다.[편집자주] 

 

AI가 물건을 사고 결제한다면, 금융사는 누구를 거래 주체로 봐야 할까. 카드를 등록한 사람일까, 실제 결제를 실행한 AI일까. AI 에이전트 경제가 확산되면서 기존 카드 네트워크와 블록체인 네트워크의 접근 방식이 갈리고 있다.

 

보고서는 AI 에이전트 경제에서 결제 주체를 누구로 정의하느냐에 따라 카드와 블록체인의 대응 방식이 근본적으로 달라진다고 분석했다. 카드 네트워크는 인간을 핵심 사용자로 본다. AI는 고객이 활용하는 금융 대리인이다. 반면 블록체인은 AI를 독립적인 디지털 경제 주체로 보고, AI 에이전트 자체에 신원을 부여하는 방향을 지향한다.

 

카드 방식은 익숙한 금융 질서 위에 있다. 고객이 AI 에이전트에게 결제 한도, 거래 범위, 사용 목적 등을 부여하면 전자서명 방식으로 인증된 위임 증서가 만들어진다. 카드사는 기존 고객 인증 체계를 활용해 거래를 처리한다. 이때 중요한 질문은 “AI가 누구인가”보다 “누가 AI에게 권한을 줬는가”다. 최종 책임과 권한은 인간에게 귀속된다.

 

이 방식의 강점은 명확하다. 카드사는 이미 고객확인, 이상거래 탐지, 소비자 보호, 거래 취소, 분쟁 처리 체계를 갖추고 있다. AI가 사용자를 대신해 결제하더라도 기존 카드와 계좌 네트워크를 활용할 수 있다. 사용자가 금액과 사용처, 조건을 정해두면 AI는 그 범위 안에서 업무를 대신 수행한다. 금융소비자 보호와 규제 대응 측면에서는 안정적이다.


AI에이전트 결제 구조(출처=KB경영연구소)
 

블록체인의 접근은 다르다. 블록체인은 AI 에이전트를 독립된 디지털 경제 주체로 보고 자체 디지털 신원과 지갑을 부여하는 모델을 지향한다. AI가 스테이블코인 등 디지털 자산을 보유하고, 스마트컨트랙트에 따라 직접 계약과 결제를 수행하는 구조다. 사용자의 추가 승인 없이도 사전에 정한 조건에 맞으면 결제가 실행될 수 있다.

 

이 모델은 AI 간 거래가 늘어나는 미래 환경에 적합하다. 기업의 구매 AI가 공급망 AI와 직접 조건을 협상하고, 결제와 정산까지 자동화하는 구조에서는 매번 인간의 카드 승인 절차를 거치기 어렵다. 국경 간 거래, 디지털 자산 거래, API 기반 마이크로페이먼트처럼 속도와 자동화가 중요한 영역에서도 블록체인의 활용 가능성이 커진다.

 

다만 블록체인 방식은 해결해야 할 질문도 많다. AI가 직접 자산을 보유할 수 있는지, 결제 오류가 발생하면 누가 책임지는지, 규제상 금융거래 주체로 인정할 수 있는지 등이 남아 있다. AI의 판단 오류나 권한 남용, 악성 프롬프트 공격이 금융 거래로 연결될 가능성도 고려해야 한다.

 

보고서는 카드와 블록체인이 결제 과정 전체에서 충돌한다기보다 신뢰·인증과 결제 구현 방식에서 대립한다고 봤다. 카드가 ‘인간을 위한 AI 결제’라면, 블록체인은 ‘AI를 위한 결제’에 가깝다. 두 진영은 AI 에이전트 경제의 주도권을 둘러싼 핵심 경쟁 축으로 부상하고 있다.

 

이 경쟁은 단순히 카드냐 블록체인이냐의 문제가 아니다. 핵심은 AI의 경제활동을 인간의 연장선으로 볼 것인지, 별도의 디지털 주체로 볼 것인지다. 전자는 소비자 보호와 책임 추적이 쉽지만 AI의 자율성을 제한한다. 후자는 AI 간 자동거래에 유리하지만 법적 지위와 사고 책임이 복잡하다.

 

당분간 두 방식은 공존할 가능성이 높다. 일반 소비자 결제는 카드와 은행망이 담당하고, AI 간 거래나 스마트계약 영역에서는 블록체인이 신뢰 계층을 보완하는 식이다. 중요한 것은 어느 한쪽을 무조건 대체재로 보는 것이 아니라, 어떤 거래에 어떤 신뢰 구조가 필요한지 구분하는 일이다. AI가 결제하는 시대의 경쟁은 결제 버튼의 위치가 아니라, 그 버튼을 누를 권한을 누가 어떻게 검증하느냐에서 판가름 날 수 있다.

 
조중환 사진
조중환 기자  highest@wisdot.co.kr
 

댓글 0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