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주는 다양해졌지만 통제는 강해졌다…북한 경제의 두 얼굴 ②
▷장마당·밀무역 억제하면서 국영기업에는 생산과 수익 활용의 제한적 자율성 부여
▷‘국산화·다품종·소량생산’과 지방발전 정책 맞물려 지역별 맥주 브랜드 증가
▷공장 건설이 정상 가동 의미하진 않아…원료·전력·포장재·판로 부족은 여전
생성형 AI(쳇GPT)의 도움을 받아 시각화하고 기자가 최종 검토 및 확인해 제작한 그래픽입니다.
[위즈경제] 조중환 기자 = 라거부터 에일과 밀맥주, 과일향 맥주까지 북한의 맥주 제품이 다양해지고 있다. 평양에 집중됐던 생산지역도 라선과 자강도, 황해남도 등 지방으로 확산하는 모습이다. 겉으로만 보면 소비자의 선택과 기업 간 경쟁을 중시하는 시장경제가 북한에서도 확대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맥주를 둘러싼 생산과 유통 구조를 들여다보면 변화의 방향은 단순한 시장화와 다르다. 북한은 장마당과 밀무역 등 주민 주도의 사경제 활동은 억제하는 한편 국영기업에는 제한적인 경영 자율성과 수익 유인을 부여하고 있다. 시장의 작동 방식을 일부 활용하되 생산과 유통, 외화 수입에 대한 통제권은 국가가 쥐는 ‘국가 주도 상업화’에 가깝다.
KB경영연구소는 ‘맥주로 살펴보는 북한 경제정책의 변화’ 보고서에서 최근 북한산 맥주의 브랜드 다변화와 수출 확대를 ▲국가 주도 수출 강화 ▲경공업 제품 다종화 ▲지방발전 20×10 정책 ▲밀·보리 재배 확대가 결합한 결과로 분석했다.
◇ 장마당은 누르고 국영기업은 움직이게 했다
북한은 코로나19에 따른 국경봉쇄를 계기로 주민의 사적 경제활동에 대한 관리를 강화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장마당 운영시간은 기존 8시간에서 팬데믹 이후 4시간으로 줄었고, 밀무역 단속과 휴대전화를 활용한 전자결제 확대도 추진됐다. 주민 간 현금 거래와 상품 유통을 국가가 파악할 수 있는 구조로 바꾸려는 조치다.
그렇다고 과거의 경직된 중앙계획경제로 완전히 돌아간 것은 아니다. 북한은 ‘우리식 사회주의경제관리방법’을 통해 국영기업이 이익 일부를 운영자금과 인건비, 성과급 등에 활용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민간 자본인 ‘돈주’의 투자도 국영기업의 틀 안에서 제한적으로 받아들였다.
기업에 생산과 수익의 동기를 제공하면서도 소유와 통제는 국가가 유지하는 방식이다. 맥주공장 역시 다양한 제품을 개발하고 해외 판로를 확보하지만, 생산시설과 무역 채널은 국영체계 안에서 관리된다.
따라서 북한 맥주 브랜드의 증가는 민간기업이 자유롭게 시장에 진입한 결과라기보다 국영기업이 국가의 외화벌이 목표에 맞춰 상품 경쟁 방식을 도입한 결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생성형 AI(쳇GPT)의 도움을 받아 시각화하고 기자가 최종 검토 및 확인해 제작한 그래픽입니다. 그래픽에 포함된 데이터와 내용은 기자가 직접 취재한 결과물입니다.
◇ 하나를 많이 만들던 생산에서 여러 제품을 조금씩
제품의 다양화에는 김정은 정권이 2013년 이후 추진한 ‘국산화·다품종·소량생산’ 정책이 영향을 미쳤다. 중앙이 정한 제품을 대량 생산하는 데서 벗어나 생산량을 줄이더라도 품질과 종류를 늘리겠다는 구상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대동강맥주다. 대동강맥주는 원료 배합 비율에 따라 구분한 1~7호에 이어 2018년 8호, 2025년에는 9~13호까지 제품군을 확대했다. 기존 라거뿐 아니라 에일과 밀맥주, 메밀맥주, 과일향 맥주도 등장했다. 딸기와 복숭아, 망고 등을 포함해 10종가량의 과일향 제품이 출시된 것으로 알려졌다.
소비자의 선호를 반영하려는 변화도 나타났다. 가장 널리 알려진 대동강맥주 2호의 알코올 도수는 2016년 이전 5~5.5%에서 2018년 4.8%, 2025년 이후 4.5%로 낮아졌다. 저도주를 선호하는 중국 등의 소비자 수요를 고려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다만 제품 종류가 늘었다는 사실만으로 북한 경공업의 생산성이 높아졌다고 단정해서는 안 된다. 제품별 생산량과 공장 가동률, 실제 판매량이 공개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동일한 내용물을 다른 상표나 향으로 구분했을 가능성도 검증해야 한다.
◇ 지방공장은 늘었지만 실제 가동 성과는 불투명
맥주 브랜드의 지역 확산은 북한의 ‘지방발전 20×10 정책’과도 연결된다. 북한은 2024년부터 10년 동안 매년 20개 시·군에 지방공업공장을 건설한다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평양과 지방의 생활·소득 격차를 줄이고 지역 특산물을 자체 소비재로 가공하겠다는 구상이다.
맥주 산업에서는 이러한 변화가 비교적 빠르게 나타나고 있다. 평양의 대동강·평양·금강·룡성맥주 외에 평안남도 평성의 봉학맥주, 양강도 혜산의 혜산맥주, 황해남도 해주의 은정맥주가 생산돼 왔다. 최근에는 라선의 두만강·파도맥주와 자강도의 묘향맥주, 장연군의 장연맥주 등이 새로 확인됐다.
맥주는 기존 대동강맥주의 인지도와 해외 북한식당의 유통망을 활용할 수 있어 다른 지방 소비재보다 수출 가능성이 높다. 지역에서 생산한 보리와 특산물을 가공해 부가가치를 높일 수 있다는 점도 지방공업의 성공 사례로 활용하기 좋은 조건이다.
그러나 공장을 지었다고 해서 안정적인 생산과 주민 소득 증가가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북한은 40여 개 지역에 공장을 건설했다고 주장하지만, 원료와 전력, 기술, 판로 부족으로 상당수 공장이 가시적인 성과를 내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브랜드 수가 늘어난 것과 각 공장의 정상 가동 여부를 구분해 볼 필요가 있다.

북한 지역별 맥주공장·브랜드 지도(출처=KB경영연구소)
◇ 식량용 밀·보리 확대와 맥주 수출의 연결
북한의 식량정책 변화도 맥주 생산 확대의 배경으로 꼽힌다. 북한은 옥수수 중심의 작물 구조를 바꾸기 위해 밀과 보리 재배면적을 늘리고 있다. 보리에서 생산하는 맥아는 맥주의 핵심 원료인 만큼 재배 확대가 맥주 생산 기반으로 이어질 수 있다.
북한은 홉도 양강도 혜산 일대에서 재배해 공장에 공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가계획에 따라 보리와 홉을 상대적으로 낮은 가격에 조달하고, 완제품은 해외에서 높은 가격에 판매하면 국영기업과 국가가 외화를 확보할 수 있다.
농업 생산과 지방 가공공장, 상품 판매, 해외 수출을 하나의 구조로 연결하려는 셈이다. 중국이 세계 맥주 소비량의 20.9%를 차지하는 최대 시장이고 러시아 역시 세계 5위 소비국이라는 점은 북한에 기회 요인이다.
반면 식량 사정이 불안정한 상황에서 밀과 보리를 주류 생산에 사용하는 것이 주민의 식생활 개선과 충돌할 가능성도 따져봐야 한다. 맥주 수출로 얻은 수익이 농민이나 지방공장 노동자에게 얼마나 돌아가는지도 확인되지 않았다.
◇ 브랜드 증가는 변화의 단서…주민생활 개선 증거는 아냐
북한 맥주 산업의 변화는 북한 경제가 시장 기능을 완전히 배제하지 않고 있음을 보여준다. 소비자 취향을 반영한 제품을 만들고, 국영기업에 수익 동기를 제공하며, 지방별 브랜드를 육성하는 방식은 과거의 획일적인 중앙계획 생산과 분명한 차이가 있다.
동시에 장마당과 밀무역을 통제하고 전자결제를 확대하는 정책은 경제활동을 국가의 관리체계 안으로 끌어들이려는 흐름을 보여준다. 상품은 다양해졌지만 이를 생산하고 판매하는 주체의 자율성이 같은 폭으로 커진 것은 아닌 셈이다.
더욱이 지방공장의 실제 가동률과 생산량, 수출 수익의 배분 구조가 공개되지 않아 맥주 산업의 성과가 주민 생활 개선으로 이어졌다고 판단하기는 어렵다. 포장재와 전력, 냉장 유통망이 부족한 상황에서는 브랜드 다양화가 일시적인 전시 성과에 그칠 가능성도 있다.
결국 북한산 맥주의 다변화는 시장경제로의 전환보다 시장의 효율성과 상품 경쟁 방식을 국가경제 안으로 흡수하려는 실험에 가깝다. 맥주는 북한 경제정책이 변하고 있다는 단서지만, 지방경제 회복과 주민 생활 향상의 증거가 되려면 실제 생산과 판매, 소득 배분을 뒷받침하는 추가 자료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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