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건비가 감가상각비로…휴머노이드가 바꾸는 공장의 노동 계산법
▷초기에는 제조업 인력난 보완…2030년대 저숙련·반복공정 투입 확대 전망
▷노무비가 감가상각비·유지보수비로…기업의 노동비용도 설비 중심 재편
▷단순 노무 수요 줄고 로봇 정비·현장 최적화 인력 증가…임금 격차 우려
생성형 AI(쳇GPT)의 도움을 받아 시각화하고 기자가 최종 검토 및 확인해 제작한 그래픽입니다.
[위즈경제] 조중환 기자 = 휴머노이드 로봇의 공장 투입은 사람의 일자리를 로봇으로 바꾸는 데 그치지 않는다. 기업이 노동력을 조달하고 비용을 계산하는 방식부터 인력 파견시장, 글로벌 생산기지의 입지 조건까지 제조업의 기본 구조를 바꿀 수 있다.
당장은 사람을 구하지 못하는 공정을 채우는 보완재로 활용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기술이 발전하고 가격이 낮아지면 단순·반복 업무는 점차 로봇으로 넘어갈 전망이다. 이 과정에서 저숙련 노동자의 임금 상승 여력은 줄고 로봇을 운용·정비하는 기술 인력의 가치는 높아지면서 노동시장 양극화가 심해질 수 있다.
KB경영연구소의 ‘휴머노이드 로봇이 공장에 들어오면 생기는 일’ 보고서는 휴머노이드 도입 초기인 2026~2028년에는 제조업 인력난을 완화하는 보완재 역할이 두드러질 것으로 전망했다. 기술적 완성도가 충분하지 않아 생산성 기여도가 기대에 미치지 못할 가능성도 있는 만큼 기존 근로자와 역할을 나누는 방식이 우선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현대차가 미국 공장에 투입할 아틀라스도 처음부터 차량 조립을 맡는 것이 아니다. 초기에는 부품을 정해진 순서로 공급하는 시퀀싱 작업을 수행하고 이후 부품 조립과 중량물 운반 등으로 작업 범위를 넓힐 계획이다.
다만 2030년대에 들어서면 물류와 단순 조립, 현장 서비스 등 저숙련·반복 공정을 중심으로 휴머노이드 도입이 본격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로봇이 사람과 같은 작업환경에서 이동하며 새로운 동작을 학습할 수 있게 되면 기존 자동화 설비가 접근하기 어려웠던 영역까지 대체 범위가 확대될 수 있기 때문이다.
◇ 일자리를 없애기보다 구인난부터 메운다
세계 제조업은 청년 구직난과 현장 인력난이 동시에 나타나는 불균형을 겪고 있다. 사무직 취업 경쟁은 치열하지만 제조 생산직과 물류 상·하차, 조선, 단순 가공 등 어렵고 위험한 직종은 사람을 구하기 어렵다.
저출생·고령화가 빠른 한국에서는 이 같은 불균형이 더욱 심해질 가능성이 크다. 보고서에 제시된 전망에 따르면 한국의 15~64세 생산가능인구 비중은 2024년 70.2%에서 2050년 51.9%, 2072년 45.8%로 낮아진다. 같은 기간 65세 이상 인구 비중은 19.2%에서 40.1%, 47.7%로 높아진다.
따라서 휴머노이드는 기존 근로자를 즉시 밀어내기보다 사람을 구하지 못해 발생한 생산 공백을 메우는 수단으로 먼저 활용될 가능성이 있다. 사람이 기피하는 위험공정과 야간작업, 중량물 운반 등에 우선 배치된다면 생산능력을 유지하면서 산업재해 위험도 낮출 수 있다.
그러나 휴머노이드의 양산가격이 내려가고 작업 성능이 높아진 뒤에도 보완재로만 남을지는 불확실하다. 사람보다 휴머노이드를 투입하는 비용이 낮아지는 시점부터 단순·반복 업무를 중심으로 대체 속도가 빨라질 수 있어서다.
◇ 사람을 고용하던 비용이 설비 투자로
휴머노이드 도입은 기업의 원가 계산법에도 변화를 가져온다. 사람을 고용하면 매달 임금과 시간외수당을 지급하고 퇴직급여 충당금 등을 반영해야 한다. 임금 인상률과 인력 이탈, 채용 실패 등 기업이 예측하기 어려운 변수도 존재한다.
반면 휴머노이드 로봇은 초기 구매비용을 투입한 뒤 감가상각비와 전력비, 유지보수비를 부담하는 설비·운용 자산으로 분류된다. 인적 고용계약에 의존하던 노동력 조달 방식이 기계설비 투자로 이동하면서 노무비 중심의 원가 체계도 자본·설비 비용 중심으로 바뀌게 된다.
생산량 확대에 필요한 추가 노동력을 사람의 채용이 아니라 로봇 구매로 확보하는 기업이 늘어날 경우, 제조업의 경영 판단에서도 인사·노무 부문보다 설비투자와 시스템 운영 부문의 중요성이 커질 수 있다.
휴머노이드의 가격 하락은 이러한 전환을 앞당길 변수다.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 유니트리는 2024년 9만달러였던 H1 모델과 비교해 2025년 R1 모델의 공급가격을 5900달러까지 낮췄다. 골드만삭스는 누적 생산량이 두 배 늘 때마다 제품 단가가 15~20% 낮아지는 현상이 로봇산업에서도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분석했다.

생성형 AI(쳇GPT)의 도움을 받아 시각화하고 기자가 최종 검토 및 확인해 제작한 그래픽입니다. 그래픽에 포함된 데이터와 내용은 기자가 직접 취재한 결과물입니다
◇ 저숙련 임금 정체하고 기술 인력 몸값은 상승
기업의 비용 구조 변화는 직종별 임금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로봇으로 대체하기 쉬운 단순·반복 업무 종사자의 임금은 정체하거나 낮아질 수 있는 반면, 로봇을 설계하고 운용하는 고숙련 인력의 임금은 높아질 가능성이 있다.
로봇 한 대가 공장에 들어오면 이를 관리할 사람도 필요하다. 관절을 움직이는 액추에이터가 고장 나거나 센서가 오작동하면 즉시 대응할 유지보수 기술자가 있어야 한다. 휴머노이드를 기존 생산·물류 시스템에 연결하고 VLA 모델의 동작을 현장 공정에 맞게 조정하는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수요도 발생한다.
기존 현장 작업자는 로봇 관리자와 예비정비사, 공정 최적화 감독관 등으로 역할을 전환할 수 있다. 로봇 동작 데이터를 만드는 작업자와 현장 맞춤형 작업 관리자, 안전·윤리 감시관 등 새로운 직무도 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인력 중개·파견업도 영향을 받는다. 단순 노무자를 공장에 공급하는 사업자는 수요 감소에 직면할 수 있지만, 로봇 정비인력과 시스템 엔지니어를 연결하는 업체는 새로운 시장을 확보할 수 있다. 인력 플랫폼의 역할이 근로자 공급에서 생산라인의 무중단 가동을 지원하는 기술 서비스로 바뀌는 것이다.
◇ 로봇을 가르치는 새로운 ‘디지털 하청’
휴머노이드가 사람의 일자리를 대체하는 동시에 로봇을 학습시키는 새로운 노동을 만들어낼 가능성도 있다. 피지컬 AI가 사람처럼 움직이려면 세탁과 설거지, 조리, 조립 등 실제 동작을 촬영한 데이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보고서는 나이지리아와 인도, 아르헨티나 등 신흥국 청년층을 중심으로 일상적인 작업 장면을 촬영해 로봇 훈련용 데이터로 제공하는 노동시장이 형성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미국 데이터기업 마이크로원은 50여개국에서 수천명의 인력을 동원해 동작 데이터를 수집하고 있다.
이는 신흥국의 일상 노동이 글로벌 기업의 AI 가치사슬에 편입되는 기회인 동시에 새로운 형태의 디지털 하청 구조가 될 수 있다. 로봇이 만들어내는 생산성의 이익은 선진국 기업에 집중되는 반면, 이를 학습시키는 데이터 노동은 저임금 국가에 맡겨질 가능성이 있어서다.
◇ 값싼 노동력보다 데이터·전력망이 중요해진다
휴머노이드가 확산하면 글로벌 공장 입지의 기준도 달라질 수 있다. 그동안 기업은 값싼 노동력을 찾아 신흥국에 생산기지를 세웠지만, 로봇이 인건비 차이를 줄이면 최종 소비시장과 가까운 곳으로 공장을 옮기는 리쇼어링이 빨라질 수 있다.
공장 유치 경쟁의 핵심도 노동력에서 안정적인 전력망과 통신 인프라, 로봇 운용 기술, 정책적 지원으로 이동할 전망이다. 로봇을 실제 공정에 투입하면서 쌓이는 시각·촉각 정보와 숙련공의 작업 노하우는 휴머노이드 AI의 성능을 높이는 핵심 자산이 된다.
데이터를 먼저 축적한 제조기업과 AI 플랫폼의 연합은 후발주자가 따라오기 어려운 진입장벽을 만들 수 있다. 산업의 무게 중심도 로봇 판매에서 소프트웨어 업데이트와 예방 정비를 결합한 서비스형 로봇, AI 파운데이션 모델 구독으로 이동할 가능성이 있다.
휴머노이드 시대의 일자리 논쟁을 ‘사람과 로봇 중 누가 일할 것인가’라는 질문에만 가두면 변화의 절반밖에 볼 수 없다. 더 중요한 문제는 로봇 도입으로 생긴 생산성의 이익이 임금 인상과 신규 고용, 노동환경 개선으로 이어질지 여부다.
기업이 재교육 없이 저숙련 업무만 로봇으로 바꾸면 기술 인력과 현장 노동자 사이의 격차는 더 벌어질 수 있다. 정부와 기업은 로봇 정비와 공정 최적화, 데이터 관리 등 새롭게 늘어날 직무로 기존 근로자가 이동할 수 있는 교육체계를 미리 마련해야 한다.
한국은 세계적인 수준의 반도체·배터리·자동차·조선 생산시설을 보유하고 있다. 이 공장들을 해외 휴머노이드 제품의 시험장으로만 내줄 것이 아니라 로봇 학습 데이터를 축적하고 현장용 AI를 개발하는 기반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휴머노이드 경쟁의 주도권은 로봇의 몸을 누가 먼저 만드느냐보다, 제조현장의 경험과 데이터를 누가 먼저 확보하느냐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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