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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값은 모두를 부자로 만들지 않는다…가격 상승이 갈라놓은 세대의 경제 체력

▷ 같은 5% 상승, 젊은층은 후생 감소·고령층은 증가
▷ ‘집을 가진 청년’도 안전지대 아니다

입력 : 2026.02.26 14:30 수정 : 2026.02.26 13:57
집값은 모두를 부자로 만들지 않는다…가격 상승이 갈라놓은 세대의 경제 체력 주택가격 상승 충격에 따른 연령별-주거지위별 가계 후생 변화(그래프=한국은행 BOK 이슈노트)
 

[위즈경제] 조중환 기자 = 주택가격 상승은 흔히 ‘부의 확대’로 설명된다. 그러나 가격이 오르는 순간, 모든 가계가 동시에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지는 않는다. 오히려 일부는 이익을 얻고, 일부는 부담을 떠안는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BOK 이슈노트 ‘주택가격 상승이 연령별 소비 및 후생에 미치는 영향’은 이 비대칭적 효과를 수치로 보여준다.

 

보고서에 따르면 주택가격이 5% 상승할 경우 50세 미만 가계의 후생은 평균 0.23% 감소하는 반면, 50세 이상 가계의 후생은 0.26% 증가하는 것으로 추정됐다. 동일한 가격 충격이 세대에 따라 정반대의 방향으로 작동하는 셈이다.

 

이 결과는 단순히 “청년이 힘들다”는 정서적 차원을 넘어 구조적 문제를 드러낸다. 특히 눈에 띄는 지점은 젊은 유주택 가계 역시 후생이 줄어든다는 점이다. 집을 이미 보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집값 상승이 곧바로 이익으로 연결되지 않는다.

 

이유는 생애주기 구조에 있다. 자녀 출산, 교육, 직장 이동 등으로 주거 수준을 상향해야 하는 단계에 있는 가계에게 집값 상승은 현재 자산의 가치 상승이 아니라, 더 나은 주택으로 이동하기 위한 추가 비용 증가를 의미한다. 결국 더 많은 저축과 더 큰 대출이 필요해지고, 이는 소비 축소로 이어진다.

 

반면 고령층은 다른 환경에 놓여 있다. 주거 이동 필요성이 낮고, 추가 차입 부담이 크지 않다. 이들에게 집값 상승은 비교적 순수한 자산 가치 증가로 작용한다. 자산을 이미 축적한 상태에서는 가격 상승이 방어막처럼 기능한다.

 

또한 투자 형태에 따른 차이도 뚜렷하다. 임대용 주택을 보유한 가계, 특히 월세를 통해 현금흐름을 창출하는 구조를 가진 가계는 가격 상승 시 자산 가치와 임대 수익 기대가 동시에 개선된다. 반면 임차 가구나 자산 축적 초기 단계의 가계는 주거비 상승 압박에 더 민감하다.

 

이 같은 결과는 ‘연령’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핵심 변수는 자산의 축적 정도와 보유 형태다. 집값 상승은 모든 세대를 일괄적으로 부유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자산 보유 구조에 따라 경제적 체력을 갈라놓는다.

 

 

자산은 많지만 현금은 부족…소비로 연결되지 않는 구조(그래프=한국은행 BOK 이슈노트)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비유동성 자산 비중이 높다. 주택 자산이 증가해도 이를 쉽게 소비로 전환하기 어렵다. 보고서에서 언급된 ‘부유한 유동성제약 가계’의 존재는 이를 잘 보여준다. 겉으로는 자산이 많아 보이지만, 실제 소비 여력은 제한적인 가계가 적지 않다는 의미다.

 

결국 집값 상승은 단순한 자산 증가가 아니라, 세대와 계층 간 경제적 위치를 재정렬하는 사건에 가깝다. 일부는 안정감을 얻지만, 일부는 더 높은 문턱 앞에 선다.

 

집값을 둘러싼 논쟁은 자주 세대 간 갈등으로 치환된다. 그러나 데이터가 보여주는 현실은 ‘나이’보다 ‘자산 구조’의 문제다. 이미 충분한 주택자산을 보유한 집단에게 가격 상승은 자산효과지만, 사다리를 오르는 과정에 있는 세대에게는 목표선의 상향이다. 

 

집값 상승이 반복될수록 이 격차는 자연스럽게 누적된다. 정책이 이를 단순한 세대 갈등으로만 해석한다면, 문제의 본질을 놓칠 수 있다. 집값은 중립적인 가격 변수가 아니라, 경제적 기회의 분포를 재조정하는 힘이다.


 
조중환 사진
조중환 기자  highest@wisdo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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