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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경제 3% 성장의 착시…AI가 버티지만, 에너지·금리·통상 리스크가 활로 좁힌다

▷KIEP, 2026년 세계경제 성장률 3.0% 전망…전망치는 유지됐지만 성장 기반은 약화
▷AI·반도체가 완충 역할하지만 에너지 비용·고금리·통상 불확실성은 부문별 격차 키워
▷한국 경제, 총량보다 ‘비대칭 충격’ 점검해야…에너지 다소비·내수 업종 압박 우려

입력 : 2026-05-12 16:01
세계경제 3% 성장의 착시…AI가 버티지만, 에너지·금리·통상 리스크가 활로 좁힌다 윤상하 대외경제정책연구원 국제거시금융실장(왼쪽)과 이시욱 대외경제정책연구원장이 12일 정부세종청사 재정경제부 브리핑실에서 '2026년 세계 경제전망 업데이트'를 발표하고 있다. (사진=e브리핑 영상 갈무리)
 

[위즈경제] 조중환 기자 = 세계경제가 표면적으로는 3%대 성장률을 유지할 것으로 전망됐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낙관보다 경계에 가까운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 인공지능(AI) 투자와 반도체 교역이 경기 둔화를 막는 완충재 역할을 하고 있지만, 중동발 에너지 충격과 통상정책 불확실성, 주요국 재정 부담이 동시에 맞물리면서 성장의 활로는 오히려 좁아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은 12일 ‘2026년 세계경제 전망 업데이트’에서 올해 세계경제 성장률을 3.0%로 전망했다. 지난해 11월 전망치와 동일한 수준이지만, 2025년 성장률 3.4%보다 0.4%p 낮다. KIEP는 이번 세계경제 흐름을 ‘중첩된 충격, 좁아진 활로’로 규정했다. 이는 단일 악재가 경기 흐름을 흔드는 수준을 넘어, 에너지·통상·재정 충격이 서로를 증폭시키는 구조로 작동하고 있다는 의미다.

 

이번 전망에서 주목할 점은 3.0%라는 숫자 자체보다 그 숫자가 만들어진 방식이다. 미국과 중국은 AI 투자와 정책 대응, 예상보다 양호했던 연초 실적을 반영해 일부 상향 조정됐지만, 유럽과 일본은 에너지 비용과 제조업 부진, 재정 부담 등의 영향으로 하향 조정됐다. 결과적으로 세계 성장률 전망치는 유지됐지만, 지역과 산업별 격차는 더 커졌다.

 

윤상하 KIEP 국제거시금융실장은 브리핑에서 “세계경제 성장률은 지난 11월 전망과 동일한 3.0%로 유지됐지만 그 내부 구성은 적지 않게 달라졌다”며 “미국과 중국은 다소 상향, 유럽과 일본 등은 하향 조정돼 서로 상쇄된 결과”라고 설명했다.

 

◇ 3% 성장률의 착시…AI가 받치는 성장, 지속 가능성은 과제

 

KIEP는 2026년 미국 성장률을 2.0%, 유로 지역 0.9%, 일본 0.7%, 중국 4.5%, 인도 6.4%, 아세안 5개국 4.8%로 전망했다. 수치만 보면 세계경제가 급격한 침체에 빠지는 모습은 아니다. 그러나 이는 세계경제 전반이 고르게 회복되고 있다는 뜻과는 거리가 있다.

 

현재 세계경제를 떠받치는 핵심 완충 요인은 AI 투자다. 미국의 AI 관련 설비투자와 데이터센터 투자가 확대되면서 반도체, 전자부품, 서버, 전력기기 등 관련 교역이 늘었고, 이 흐름이 글로벌 경기 둔화를 일정 부분 막고 있다. KIEP는 미국 수입 가운데 AI 관련 품목은 2024년 하반기 이후 빠르게 증가한 반면, 비AI 관련 수입은 감소세를 보였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이 성장의 기반이 특정 부문에 집중돼 있다는 점이다. AI 투자가 생산성 향상으로 경제 전반에 확산된다면 중기 성장률을 끌어올릴 수 있지만, 아직은 데이터센터와 반도체 설비투자 중심의 자본지출 사이클에 가까운 측면이 크다. 투자 규모 자체는 크지만, 매년 늘어나는 증가분이 줄어들면 성장률 기여도는 낮아질 수 있다.

 

윤 실장은 AI 투자에 대해 “투자 사이클 붐이 꺾일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지만, 성장의 기여도로 보면 증분이 줄어들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미국의 AI 관련 투자는 한국, 동아시아, 동남아시아, 멕시코 등에서 반도체와 장비, 전자부품을 수입해 유발되는 부분이 크다”며 “미국의 기여도가 꺾이면 한국이나 다른 국가의 교역 기여도도 줄어들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는 한국 경제에도 중요한 대목이다. 반도체와 AI 관련 수출 호조는 한국 경제의 총량 지표를 떠받치는 핵심 동력이지만, 동시에 경기 판단을 왜곡할 수 있는 요인이기도 하다. 반도체 가격 상승과 AI 투자 확대가 수출 가격과 교역 조건을 개선시키더라도, 에너지 비용을 직접 부담하는 석유화학·철강·운송·건설자재·내수 서비스업에는 전혀 다른 충격이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한국 경제의 핵심 과제는 “수출이 좋다”는 총량 평가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AI 수혜 부문과 비용 충격을 받는 부문 사이의 격차를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로 이동하고 있다.

 

 

생성형 AI(Gemini)의 도움을 받아 시각화하고 기자가 최종 검토 및 확인해 제작한 그래픽입니다. 그래픽에 포함된 데이터와 내용은 기자가 직접 취재한 결과물입니다

 

◇ 에너지 충격은 유가에서 끝나지 않는다…물가·금리·재정으로 번지는 연쇄 구조

 

이번 전망의 또 다른 핵심은 에너지 가격이다. KIEP는 중동 지역 군사 충돌과 호르무즈 해협 봉쇄 여파로 국제 에너지 시장이 큰 충격을 받았고, 4월 이후 휴전 국면이 형성됐지만 핵심 쟁점이 해결되지 않아 에너지 가격이 전쟁 이전 수준으로 돌아가기는 어렵다고 봤다.

 

유가 상승은 단순히 원유 수입 비용 증가에 그치지 않는다. 나프타, 석유화학 원료, 운송 보험료, 해상 물류비로 전이되면서 포장재, 자동차, 전기전자, 건설자재 등 다양한 산업의 중간재 비용을 끌어올릴 수 있다. 원유 가격 충격이 산업 전반의 비용 구조를 흔들 수 있다는 뜻이다.

 

특히 에너지 가격 상승은 물가를 자극하고, 물가 상승은 주요국 중앙은행의 금리 인하 경로를 지연시킨다. 금리 인하가 지연되면 정부의 이자 부담과 국채 발행 부담이 커지고, 장기금리 상승은 다시 민간투자와 금융시장에 압박을 준다. 에너지 충격이 물가, 금리, 재정, 환율로 이어지는 연쇄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KIEP는 이 같은 흐름을 “에너지, 통상, 재정의 충격이 동시에 진행되면서 정책 대응의 여력 또한 점차 좁아지는 상황”으로 설명했다. 과거에도 에너지와 금융, 통상 변수는 서로 연결돼 있었지만, 이번에는 그 연결성이 더 강해졌다는 점이 차별점이다.

 

이시욱 KIEP 원장은 “최근 몇 년 동안 통상 불확실성과 재정 여력 감소가 계속 리스크 요인으로 있다가, 이번에 에너지발 충격이 오면서 재정도 더 많이 쓰게 되고 공급망 교란도 생겼다”며 “과거에 비해 충격의 연관성이 훨씬 높아졌다”고 진단했다.

 

이 구조는 신흥국에 더 큰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에너지 가격 상승과 달러 강세가 동시에 나타나면 수입물가가 오르고, 통화 약세와 자본 유출 압력도 커질 수 있다. 여기에 주요국 장기금리 상승이 겹치면 신흥국은 경기 부양을 위한 재정 여력도, 통화정책 여지도 동시에 제약받게 된다.

 

◇ 한국 경제의 진짜 리스크는 ‘총량’이 아니라 ‘비대칭’

 

KIEP가 한국 경제에 대해 강조한 메시지는 비교적 분명하다. 한국은 에너지와 핵심 원자재의 대외의존도가 높아 중동 정세 불안에 따른 수입 비용 상승 압력에 노출돼 있다. 동시에 글로벌 AI 투자 확대와 메모리 반도체 가격 상승의 수혜도 받고 있다. 따라서 유가 상승이 곧바로 한국 경제 전체의 교역 조건 악화로 이어진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문제는 충격이 균등하게 분산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반도체와 AI 관련 수출기업은 가격 상승과 수요 확대의 수혜를 볼 수 있지만, 에너지 다소비 업종과 내수 중심 업종은 비용 상승을 직접 떠안게 된다. 거시 총량 지표가 양호하더라도 산업 현장에서는 ‘위로 올라가는 부문’과 ‘아래로 밀리는 부문’이 동시에 나타나는 K자형 흐름이 강화될 수 있다.

 

이는 대만 사례에서도 드러난다. 이 원장은 브리핑에서 대만이 AI·반도체 관련 성장에 힘입어 높은 성장률을 보였지만 민간소비는 상대적으로 부진했다며, 이를 ‘K자 성장’으로 설명했다. 성장의 과실이 특정 산업과 기업에 집중되고, 소비와 내수로 충분히 확산되지 않는 구조가 한국에도 나타날 수 있다는 의미다.

 

한국 입장에서는 AI 사이클을 성장 기회로 활용하되, 그 이면의 취약성을 동시에 봐야 한다. AI 투자가 계속 확대되면 반도체 수출에는 호재지만, 전력 수요 증가와 데이터센터 투자 확대는 에너지 수급과 전력망 부담을 키울 수 있다. 또한 AI 수혜 기업과 그렇지 않은 기업 사이의 실적 격차가 커지면 고용과 임금, 지역경제에서도 불균형이 확대될 수 있다.

 

통상 불확실성도 관세율 자체보다 정책 경로의 예측 가능성 저하가 더 큰 문제로 지적됐다. 미국의 자국 중심 통상정책 기조가 유지되고, 중국의 내수 부진과 공급능력 유지가 글로벌 시장에서 가격 경쟁을 심화시키면 한국 기업은 제3국 시장에서 중국과의 가격 경쟁, 미국과 유럽의 수입규제, 공급망 재편 비용을 동시에 부담할 수 있다.

 

결국 한국 경제의 대응 방향은 총량 지표를 관리하는 데서 더 나아가야 한다. 반도체 수출 증가율, 전체 교역 조건, 환율 수준 같은 거시 지표만으로는 산업별 위험을 충분히 설명하기 어렵다. 정부는 에너지 가격 상승이 어느 업종의 비용 구조를 가장 크게 흔드는지, 고금리가 어떤 기업군의 투자 여력을 먼저 약화시키는지, 통상 불확실성이 어떤 수출시장과 공급망에 집중되는지 세밀하게 점검해야 한다.

 

이번 KIEP 전망이 던지는 메시지는 단순히 “세계경제가 3% 성장한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3%라는 숫자 뒤에서 성장의 질이 달라지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AI가 세계경제의 둔화를 막는 완충재가 되고 있지만, 그 완충력은 특정 산업과 국가에 집중돼 있다. 에너지와 통상, 재정 충격은 서로 얽히며 정책 대응의 폭을 좁히고 있다.

 

한국 경제 역시 예외가 아니다. 반도체 호황이 총량을 끌어올리는 동안, 에너지 비용과 고금리, 통상 불확실성은 다른 부문을 누르고 있다. 이제 필요한 것은 성장률 전망치에 대한 낙관이나 비관이 아니라, 충격이 어디에 쌓이고 있는지를 찾아내는 정교한 산업별 대응이다. 세계경제의 활로가 좁아진 만큼, 한국 경제의 정책도 더 촘촘해져야 할 시점이다.

 
조중환 사진
조중환 기자  highest@wisdo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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