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세가 미래를 잠식한다…주거비 부담은 청년의 ‘자산·부채’ 궤적을 바꾼다
▷주거비 비중 11.4%→17.8%…임차료 과부담 가구 31.6%, 전체의 두 배
▷주거비 1%p↑ 때 교육비 0.18%p↓…대출은 ‘전월세 보증금’이 최대 용도
(사진=연합뉴스)
[위즈경제] 김영진 기자 = 취업이 늦어지고 주거비가 오르는 흐름은 청년 개인의 선택이 아니라 구조의 결과일 수 있다. 한국은행이 19일 발간한 BOK 이슈노트’청년세대 노동시장 진입 지연과 주거비 부담의 생애영향 평가’를 바탕으로 ‘노동시장 진입 지연’과 ‘주거비 부담’이 생애 전반에 남기는 흔적을 3편에 걸쳐 짚는다. [편집자주]
청년의 주거는 더 이상 ‘일시적 거처’가 아니다. 독립, 만혼·비혼, 1인 가구 증가가 맞물리며 주거는 청년의 재무를 좌우하는 핵심 변수가 됐다. 한국은행 보고서는 청년층이 과거보다 높은 주거비 부담에 직면했고, 이 부담이 자산 형성뿐 아니라 인적자본 축적과 재무건전성에도 영향을 준다고 진단한다.
보고서가 제시하는 출발점은 ‘실제주거비’다. 월세·관리비 등 현금지출이 늘어날수록 가처분소득 대비 실제주거비 비중이 커지는데, 이는 곧 다른 소비와 저축을 압박한다. 특히 청년층은 소득 기반이 약한 상태에서 독립을 시작하는 경우가 많아, 같은 비율의 주거비 상승이 더 큰 체감으로 돌아온다.
주거 형태의 변화도 부담을 키우는 배경이다. 보고서는 청년 1인 가구 비중이 2030년 84%에 이를 것으로 전망하고, 청년층의 거주 형태가 월세 중심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제시한다. 2023년 기준 청년층 주택 점유형태에서 월세 비중이 70%에 가까워졌다는 분석은 ‘전세의 월세화’가 청년에게 가장 먼저 체감되는 현실임을 보여준다. 수요는 늘었는데 청년이 선호하는 소형 주택, 특히 비아파트의 공급이 충분히 늘지 않으면 월세는 생활비의 고정비로 자리 잡는다.
여기에 주거의 질 문제도 겹친다. 보고서는 고시원 등 취약 거처 이용 비중이 2010년 5.6%에서 2023년 11.5%로 높아졌다고 제시한다. 같은 돈을 내더라도 더 좁고 열악한 공간으로 밀려날 수 있다는 뜻이다. 주거비 부담은 단지 “비싸졌다”가 아니라, 청년의 주거 선택지를 좁히고 삶의 회복력을 떨어뜨리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실제로 청년층의 소비 구조는 주거비 쪽으로 기울었다. 보고서에 따르면 청년층(15~39세)의 주거비(주거 및 수도광열) 지출 비중은 2000년 11.4%에서 2024년 17.8%로 상승했다. 주거비가 음식·숙박 다음으로 큰 지출 항목으로 올라선 것이다. 문제는 이 변화가 ‘선택’이 아니라 ‘필수 비용의 상승’에 가깝다는 점이다.
보고서는 월세 부담이 커지는 배경으로 ‘소형 주택 재고의 제약’과 ‘비아파트 시장 의존’을 함께 지목한다. 청년 수요가 집중되는 원룸·오피스텔·다세대 등은 지역·규모별로 공급 탄력성이 낮아 수요 충격이 임차료로 빠르게 전이될 수 있다. 전세보증금 수준이 높아지는 환경에서는 목돈 마련이 어려운 청년일수록 월세로 이동할 수밖에 없고, 그 결과 주거비의 ‘현금흐름 부담’이 생활비 구조에 고착될 가능성이 커진다.
주거비 부담이 커질 때 나타나는 조정은 주거비 자체를 줄이는 것이 아니라, 다른 항목을 줄이는 방식으로 나타났다. 보고서는 주거비 비중이 1%p 늘어나면 식료품비 비중이 0.45%p, 교육비 비중이 0.18%p 감소하는 것으로 추정했다. 당장의 생활비를 깎고, 미래를 위한 투자(교육·역량)를 줄이는 형태다. 주거비가 소비와 인적자본 축적을 동시에 압박한다는 결론이 여기서 나온다. 또한 주거 여건의 질도 따라오지 않는다. 청년층의 고시원 등 취약거처 이용 비중이 2010년 5.6%에서 2023년 11.5%로 늘었다는 대목은, 비용 상승이 곧바로 삶의 질 개선으로 이어지지 않는 현실을 보여준다.
과부담은 더 선명하다. 보고서는 청년층 주택 임차료 과부담 가구(월소득 대비 임차료 비율이 30% 초과) 비중이 31.6%로, 전체 연령(15.8%)의 두 배에 달한다고 제시한다. 임차료가 소득의 3분의 1을 넘으면 저축과 자기계발, 건강관리 같은 미래 지출이 빠르게 후순위로 밀릴 수밖에 없다.
주거비는 자산 형성에도 영향을 준다. 보고서는 주거비가 1% 상승할 때 총자산(금융+실물)이 평균 0.04% 감소하는 것으로 추정한다. 동시에 전체 연령대 자산 대비 청년층 자산 비율이 2010년대 초반 30%대 초반에서 2024년 20%대 초반으로 하락한 흐름을 제시한다. ‘내 집 마련’이 늦어지는 현상은 단지 주택가격의 문제만이 아니라, 청년의 자산 축적 속도 자체가 둔화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부채는 더 직접적인 경로다. 보고서에 따르면 전체 연령 대비 청년층 부채 비율은 2012년 23.5%에서 2024년 49.6%로 크게 상승했다. 반면 자산/부채 비율은 5.6배에서 1.1배로 떨어져 재무건전성이 약화됐다. 청년이 ‘자산을 쌓기 위해 빚을 내는’ 단계로 가기 전에, ‘살기 위해(주거를 위해) 빚을 내는’ 단계에서 이미 부담이 커진 셈이다.
대출의 용도에서도 주거가 중심축으로 나타난다. 보고서는 청년층의 대출용도 중 전월세 보증금 마련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고 제시한다. 전세의 월세화가 진행되고, 보증금이 여전히 큰 구조에서 청년의 레버리지는 ‘주거 진입 비용’에 먼저 투입된다. 이때 금리 상승이나 소득 충격이 오면, 상환 부담은 소비를 줄이고 위험 선호를 낮추며, 다시 자산 형성을 늦추는 방향으로 작동할 수 있다.
결국 주거비 문제는 “월세를 지원하느냐”라는 단편을 넘어선다. 보고서가 반복해 강조하는 것은 청년 수요가 몰리는 소형 주택의 수급 불균형, 비아파트 중심 시장 구조, 그리고 주거비 상승이 만드는 장기적 파급이다. 단기 금융지원은 필요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월세 압력을 구조적으로 낮추기 어렵다. 공급 확대와 공공·민간의 역할 재조정, 주거비 상승이 소비·교육·저축을 잠식하지 않도록 하는 안전망이 함께 설계돼야 한다.
첫 취업이 늦어지면 소득이 늦게 시작되고, 주거비가 높아지면 소비와 저축이 동시에 눌린다. 한국은행 보고서가 보여주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노동시장 진입 지연과 주거비 부담은 따로 떨어진 문제가 아니라, 청년의 생애 궤적을 함께 바꾸는 ‘연결된 위험’이다. 청년이 출발선에서 지치지 않게 하는 일은 복지의 문제가 아니라, 경제의 지속가능성을 지키는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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