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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 지연’은 상처로 남는다…5년 뒤 고용, 지금의 월급을 깎는 ‘상흔효과’

▷미취업 1년이면 5년 뒤 상용직 66.1%…3년은 56.2%, 5년은 47.2%로 하락
▷‘늦게 정규직’이 된다고 만회되지 않는다…일본 ‘취업 빙하기’가 남긴 경고

입력 : 2026.01.21 13:52
‘취업 지연’은 상처로 남는다…5년 뒤 고용, 지금의 월급을 깎는 ‘상흔효과’ (일러스트=챗GPT로 생성된 이미지)
 

[위즈경제] 김영진 기자 = 취업이 늦어지고 주거비가 오르는 흐름은 청년 개인의 선택이 아니라 구조의 결과일 수 있다. 한국은행이 19일 발간한 BOK 이슈노트’청년세대 노동시장 진입 지연과 주거비 부담의 생애영향 평가’를 바탕으로 ‘노동시장 진입 지연’과 ‘주거비 부담’이 생애 전반에 남기는 흔적을 3편에 걸쳐 짚는다. [편집자주]

 

청년기의 공백은 언제든 회복될 수 있는 ‘빈칸’일까. 한국은행 보고서는 그 반대의 가능성을 경고한다. 노동시장 진입 지연은 인적자본 축적의 시계를 늦추고, 이후의 고용 형태와 임금을 바꾸는 흔적을 남길 수 있다는 것이다. 보고서가 말하는 ‘상흔효과’는 단순한 비유가 아니라, 패널데이터에서 추정된 결과다.

 

보고서는 한국노동패널(1~25차)을 활용해 미취업 기간에 따른 5년 후 고용 지위를 추정했다. 미취업 기간이 1년인 청년의 5년 후 상용직 종사 확률은 66.1%로 나타난다. 그런데 미취업 기간이 3년이면 56.2%, 5년이면 47.2%로 하락한다. 즉, 첫 출발이 늦어질수록 ‘상용직으로 안착할 확률’이 유의미하게 낮아진다.

 

청년층 미취업 기간별 5년 후 종사상 지위 확률 (그래프=한국은행 BOK이슈노트)

 

 

상흔은 ‘고용 형태’에만 남지 않는다. 보고서는 같은 노동패널 자료로 임금 효과도 추정했는데, 과거 미취업 기간이 1년 늘어날 때 현재 실질임금이 평균 6.7%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학력, 나이, 거주지역, 혼인 여부, 상용직 여부 등 임금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요인을 통제한 뒤에도 ‘초기 공백’이 임금 궤적을 낮출 가능성이 확인된 셈이다. 청년기에 잃은 1년이 단순히 ‘그 해의 소득’만 줄이는 것이 아니라, 이후 여러 해의 임금을 낮추는 방향으로 누적될 수 있다는 의미다.

 

이 결과가 중요한 이유는 상용직이 단지 “안정적인 자리”를 의미해서만이 아니다. 상용직은 대체로 더 많은 직무훈련과 조직 내 학습, 사회보험 가입, 경력 누적을 동반한다. 따라서 상용직 비중이 낮아지는 것은 청년 개인의 현재 소득 문제를 넘어, 장기적 숙련 축적 경로가 약화된다는 뜻으로 이어진다.

 

상흔효과가 작동하는 경로는 크게 세 가지로 읽힌다. 첫째, 숙련의 공백이다. 학교에서 배운 지식과 현장 숙련은 동일하지 않다. 첫 직장에서 얻는 직무 경험과 네트워크, 사내교육은 시간이 지나야 쌓이는 자산이다. 둘째, 신호 효과다. 기업은 지원자의 공백을 완전히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에 공백이 길다는 사실 자체를 위험 신호로 해석할 수 있다. 셋째, 경로 의존이다. 처음에 임시·일용직 혹은 불안정한 일자리로 들어가면 그 환경에서 얻는 경험이 제한돼 상용직 전환이 어려워질 수 있다.

 

보고서가 일본 사례를 길게 소개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일본의 ‘취업 빙하기’는 거시적 충격이 한 세대의 경로를 바꿔 놓았고, 그 영향이 중년기까지 이어졌다는 대표적 사례다. 보고서는 1990년대 장기침체 속에서 대졸 취업률이 1991년 81.3%에서 2003년 55% 수준으로 하락했고, 15~24세 비정규직 비중은 1990년 20.5%에서 2005년 47.7%로 상승했다고 제시한다. “처음부터 불안정하게 출발한 세대”가 사회의 한 축이 되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보여주는 지표들이다.

 

특히 ‘늦게 정규직이 된 사람’의 임금 격차는 상징적이다. 보고서는 비정규직 등에서 뒤늦게 정규직으로 전환한 35~44세 남성의 평균 연봉이, 처음부터 정규직으로 근무한 근속자보다 24.5% 낮게 나타났다고 제시한다. 정규직 전환이 ‘만회’의 종착지가 아니라, 이미 벌어진 격차를 완전히 좁히지 못하는 중간 단계가 될 수 있다는 의미다.

 

이 지점에서 보고서는 기업 채용 방식의 변화와 상흔효과의 연결도 시사한다. 경력직 선호와 직무 일경험 중심 채용이 강화될수록, 공백을 가진 청년은 다시 공백을 만들 가능성이 커진다. “신입인데 경력이 필요하다”는 시장의 신호는 청년에게 더 긴 준비를 요구하고, 그 준비 기간은 다시 채용에서 불리한 신호로 해석될 수 있다. 상흔효과는 개인의 노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채용 관행과 경력 중심 노동시장이 만들어내는 순환 구조에서 강화될 수 있다.

 

정규직 유형별 평균 연봉 (그래프=한국은행 BOK이슈노트)

 

 

빙하기 세대의 임금 변화도 경고를 강화한다. 보고서는 일본에서 전체 일반노동자 임금이 증가한 기간에도, 빙하기 세대에 해당하는 연령대의 임금은 상대적으로 부진하거나 하락하는 흐름이 관측됐다는 연구 결과를 제시한다. 한 세대가 노동시장에 진입한 “시점”의 충격이 시간이 지나도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취업 빙하기 세대 임금변화(그래프=한국은행 BOK이슈노트)

 

보고서는 이런 장기 충격이 개인의 경제적 손실에서 끝나지 않을 수 있다고 경고한다. 실제로 국무조정실 ‘청년 삶 실태조사’를 인용해, 19~34세 가운데 ‘고립·은둔’으로 분류되는 청년 비중이 2022년 2.4%에서 2024년 5.2%로 두 배 이상 늘었고, 그 이유로 “취업의 어려움 때문”이라고 답한 비중도 29.0%에서 32.8%로 상승했다고 제시한다. 

 

일본에서도 NEET 문제가 청년에서 중년으로 이동하며 이른바 ‘8050 문제’(80대 부모가 50대 은둔 자녀를 부양하는 구조)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사례로 든다. ‘첫 진입의 실패’가 시간이 지나면 자연히 치유되는 것이 아니라, 가족 부양 구조와 사회안전망까지 흔드는 형태로 확장될 수 있다는 뜻이다.

 

보고서는 일자리의 질과 생애 의사결정의 연결도 강조한다. 보고서가 정리한 선행연구들은 안정적 고용과 더 나은 일자리 질이 혼인·출산에 긍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지적한다. 반대로 불안정 고용과 반복되는 구직 실패는 생애계획을 미루게 하고, 소비와 주거 선택을 보수적으로 만들며, 사회적 참여를 위축시킬 수 있다. ‘취업 지연→질 낮은 첫 일자리→임금·경력의 하방 고착’이라는 경로가 굳어지면, 경제의 활력과 인구구조까지 동시에 압박하는 셈이다.

 

따라서 정책은 “일자리를 늘리자”라는 구호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보고서가 강조하는 것은 ‘초기 진입의 골든타임’이다. 첫 문턱에서 장기 대기가 발생하지 않도록 일경험과 매칭을 강화하고, 불안정 일자리에서 상용직으로 이동할 수 있는 경로를 제도적으로 넓혀야 한다. 한 번의 지연이 한 세대의 궤적을 바꾸는 사회라면, 그 사회는 훗날 ‘사후 처방’에 더 큰 비용을 치르게 된다.


 
김영진 사진
김영진 기자  jean@wisdo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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