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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없이도 만들어지는 ‘K’…열풍 이후 주도권은 누가 갖나

▷해외에서 K 문법 활용한 콘텐츠·브랜드 확산…국적·영토 경계 옅어져
▷순혈주의보다 글로벌 공동제작 필요…국내 기획력·원천 IP 확보가 관건
▷콘텐츠 가치평가·구조화 금융·IP 유동화로 성장 자금 공급해야

입력 : 2026-10-21 14:00
한국 없이도 만들어지는 ‘K’…열풍 이후 주도권은 누가 갖나 생성형 AI(쳇GPT)의 도움을 받아 시각화하고 기자가 최종 검토 및 확인해 제작한 그래픽입니다.
 

[위즈경제] 조중환 기자 = K-컬처가 세계인의 일상에 스며들면서 한국인이 직접 만들지 않은 ‘K’가 등장하고 있다. 해외 제작사가 K-팝의 이미지와 한국적 서사 문법을 활용해 콘텐츠를 만들고, 현지 기획사가 한국식 육성 시스템을 바탕으로 아티스트를 키우는 식이다.

 

화장품 분야에서도 해외 기업이 K-뷰티의 제품 개발과 마케팅 방식을 참고해 자체 브랜드를 내놓고 있다. ‘한국산’이라는 원산지보다 K-컬처가 축적한 제작 방식과 이미지, 소비경험이 하나의 독립적인 문화 문법으로 자리 잡는 모습이다.

 

이는 한류가 일시적인 유행을 넘어 세계 문화에 내재화됐다는 의미인 동시에, K-컬처의 지식재산권(IP)과 장기적인 수익을 누가 가져갈 것인지라는 새로운 과제를 제기한다.

 

KB경영연구소의 ‘K 열풍의 비밀 K-플라이휠’ 보고서는 K의 미래가 한국산이라는 순혈주의를 지키는 데 있지 않다고 진단했다. 해외 인재·자본과 연결돼 새로운 K를 계속 만들어내되 국내 기획력과 핵심 IP가 글로벌 가치사슬의 중심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분석이다.

 

◇ 소비 넘어 현지의 일상문화로 자리 잡는 K

 

K-컬처의 확산은 한국 문화상품을 수입해 소비하는 단계를 넘어섰다. K-푸드와 K-뷰티뿐 아니라 셀프 포토부스와 찜질방 등 한국식 여가와 생활문화가 해외 소비자의 일상에 자리 잡기 시작했다.

 

해외 팬도 수동적인 소비자에 머물지 않는다. K-팝 안무를 현지 방식으로 재해석해 영상을 제작하고 콘텐츠의 일부를 변형하거나 재창작한다. 한국에서 만들어진 문화가 현지 문화와 결합하면서 새로운 형태로 변하는 것이다.

 

보고서는 이 과정에서 한국이라는 국적과 영토, 인종의 경계가 옅어지는 ‘K-less’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국내 제작사가 직접 참여하지 않은 ‘엑스오, 키티’나 ‘케이팝 데몬 헌터스’처럼 K의 시각적 이미지와 서사 문법을 활용한 글로벌 콘텐츠가 대표적인 사례다.

 

K-팝도 국내 기획사가 한국에서 외국인 연습생을 육성하는 단계를 넘어 해외 현지에서 인재를 발굴하고 훈련하는 방식으로 진화하고 있다. K-뷰티 역시 완제품 수출을 넘어 해외 기업이 한국식 제품 개발과 마케팅 방식을 적용한 자체 브랜드를 만드는 단계로 확장됐다.

 

이 같은 변화는 K-컬처의 영향력을 보여주지만 한국 기업과 창작자가 자동으로 수익을 얻는다는 뜻은 아니다. 한국의 제작 방식과 이미지가 세계적인 표준으로 자리 잡더라도 원천 IP와 유통망, 투자 지분을 해외 기업이 보유한다면 장기적인 부가가치는 국내에 충분히 남지 않을 수 있다.

 

◇ ‘한국산’ 고집보다 생태계와 IP 주도권 확보

 

보고서는 K-컬처가 지속적으로 성장하려면 흥행작의 기계적인 답습에서 벗어나 독창적인 원천 IP를 발굴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연구개발과 독립 창작자 육성을 통해 새로운 작품과 제품이 계속 등장할 수 있는 자생적 생태계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글로벌 공동제작도 확대할 필요가 있다. 해외 인재와 자본의 참여를 제한하기보다 현지 창작자와 함께 기획하고 제작하는 쌍방향 문화교류 모델을 구축해야 한다. K-컬처가 일방적인 문화 수출이나 침투로 비치지 않도록 현지 문화와 경험을 존중하는 접근도 필요하다.

 

다만 개방적인 협업과 산업 주도권은 별개의 문제다. 해외 자본이 참여하더라도 국내 인력과 사업모델이 가치사슬의 중심에 서고 원천 IP 지분과 장기적인 부가가치를 확보하는 계약 구조가 필요하다.

 

기초예술에 대한 투자도 과제로 꼽힌다. 인디 음악과 순수 연극, 독립영화 등은 당장 큰 수익을 내기 어렵지만 상업 콘텐츠에 새로운 인재와 소재, 표현 방식을 공급한다. 흥행 가능성이 확인된 분야에만 자본이 몰리면 K-컬처의 창의성을 만드는 기반이 약해질 수 있다.

 


K-팝과 드라마·영화, 웹툰, 뷰티, 푸드는 서로 다른 산업이지만 소비자의 높은 기대와 재창조, 빠른 피드백, 시스템화, 글로벌 확산, 자본·인재 재유입이라는 공통 성장구조를 보인다. (자료=KB경영연구소) 

 

 

◇ 부동산 담보 대신 콘텐츠 IP 가치 평가해야

 

K-컬처 생태계가 성장하려면 콘텐츠의 특성에 맞는 금융체계도 필요하다. 콘텐츠 기업은 토지나 공장처럼 담보로 제공할 유형자산이 부족하다. 반면 작품과 캐릭터, 음악 저작권 등 IP는 장기간 수익을 낼 가능성이 있지만 기존 재무제표와 담보 중심의 심사에서는 가치를 충분히 인정받기 어렵다.

 

보고서는 금융사가 콘텐츠 IP의 미래 현금흐름과 산업 특성을 평가할 전문인력을 확보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유망 프로젝트를 발굴하는 데서 나아가 위험을 나누고 투자 조건을 설계하는 투자은행형 금융 역량도 필요하다는 것이다.

 

은행과 증권사, 자산운용사가 역할을 나누는 그룹 차원의 지원 방식도 제시됐다. 은행은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현금흐름에 선순위 대출을 제공하고, 증권·자산운용사는 메자닌과 지분 투자로 추가 수익과 위험을 분담하는 구조다.

 

콘텐츠 IP를 독립적인 투자자산으로 만드는 유동화 시장도 과제로 꼽힌다. 이를 위해서는 장르별 매출과 현금흐름 데이터를 축적하고 가치평가의 신뢰성을 높여야 한다. 토큰증권 제도와 연계해 콘텐츠 수익권을 여러 투자자가 나눠 보유할 수 있는 인프라를 마련하는 방안도 검토할 수 있다.

 

‘K 없는 K’의 등장은 한류가 한국만의 문화를 넘어 세계적인 장르와 산업 방식으로 성장했다는 증거다. 이를 한국적인 것의 훼손으로만 볼 필요는 없다. 해외 인재와 자본이 참여할수록 K-컬처의 시장과 표현 범위는 더 넓어질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제작자의 국적보다 가치의 귀속이다. 한국이 이름만 제공하고 IP와 유통망, 수익은 해외 플랫폼이 가져가는 구조라면 K-컬처의 외형적인 성장과 국내 산업의 성장은 서로 달라질 수 있다. 세계와 함께 K를 만들면서도 원천 IP와 기획력, 창작 생태계에 수익이 다시 투자되는 구조를 확보하는 것이 다음 단계의 과제다.

 
조중환 사진
조중환 기자  highest@wisdo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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