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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순사건 유족 “국가 보상금마저 가로챘다”…보상금 횡령 의혹 국회서 공식 제기

▷유족들 ‘또 다른 국가폭력’ 규정, 철저 수사·입법 촉구

입력 : 2025.12.24 17:35 수정 : 2025.12.24 17:44
여순사건 유족 “국가 보상금마저 가로챘다”…보상금 횡령 의혹 국회서 공식 제기 여순사건 유족들이 국가가 지급한 보상금이 소송 대리·중개 과정에서 유족에게 온전히 전달되지 않았다며 ‘보상금 횡령’ 의혹을 공식 제기했다. 유족들은 이를 “또 다른 국가폭력”으로 규정하며, 관련자에 대한 철저한 수사와 함께 제도 개선을 위한 즉각적인 입법 조치를 요구했다. 사진=위즈경제
 

[위즈경제] 류으뜸 기자 =여순사건 유족들이 국가가 지급한 보상금이 소송 대리·중개 과정에서 유족에게 온전히 전달되지 않았다며 ‘보상금 횡령’ 의혹을 공식 제기했다. 유족들은 이를 “또 다른 국가폭력”으로 규정하며, 관련자에 대한 철저한 수사와 함께 제도 개선을 위한 즉각적인 입법 조치를 요구했다.

 

여순사건 유족들은 24일 오전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가폭력 피해자에게 지급돼야 할 보상금이 일부 대리인과 중개 구조 속에서 장기간 지급되지 않거나 사적으로 유용됐다는 의혹이 확인됐다”며 “이는 단순한 개인 범죄가 아닌 구조적·제도적 참사”라고 주장했다.

 

이날 기자회견은 더불어민주당 김문수 의원과 여순사건 유족이 공동 주최했으며, 유족 대표와 시민사회 관계자들이 참석해 성명서를 낭독했다.

 

◇“여순사건은 끝나지 않았다…보상금 횡령은 2차 가해”

 

유족들은 성명서를 통해 “여순사건은 1948년 전남 여수·순천 일대에서 발생한 국가 공권력에 의한 대규모 민간인 희생 사건으로, 대한민국 현대사의 대표적인 국가폭력 사건”이라며 “오랜 침묵과 차별 속에서 살아온 유족들은 재심과 명예회복, 국가 책임 인정이라는 과정을 통해 비로소 정의가 실현될 것이라 믿어왔다”고 밝혔다.

 

실제로 최근 법원은 여순사건 피해자들에 대해 재심 무죄 판결을 잇따라 선고했고, 정부 역시 항소를 포기하며 국가 책임을 인정하는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이에 따라 국가배상 절차도 본격화됐다.

 

그러나 유족들은 “보상금이 지급되는 과정에서 또 다른 비극이 발생했다”며 “국가가 지급한 보상금이 유족의 손에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 현실은 명백한 2차 피해”라고 호소했다.

 

◇소송 대리·중개 과정서 보상금 미지급 의혹

 

유족 측 설명에 따르면, 문제의 당사자는 서울 소재 법무법인 대표 A변호사와 여순사건 진상규명·명예회복 추진협의회 대표 B씨다. 유족들은 2022년 5월 A변호사에게 재심 청구 및 형사보상·국가배상 소송을 위임했고, B씨는 소송 진행 과정에서 서류 제공 및 중간 역할을 수행한 인물로 지목됐다.

 

유족들은 국가배상 소송 성공 시 수임료 5.5%를 A변호사에게 지급하고, B씨에게는 별도로 업무 추진비 2.5%를 지급하기로 계약했다고 밝혔다. 이후 지난해 12월 국가로부터 약 7억 2000만 원의 배상금이 A변호사 측으로 지급됐다.

 

그러나 유족들은 “배상금 중 일부인 약 3억 원만 일부 유족에게 지급됐을 뿐, 나머지 4억 원 이상은 현재까지 지급되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미지급 상태가 장기화되자 유족들은 수차례 지급을 요청했지만 상황은 개선되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확약서에도 지급 지연…피해 규모 최대 80억 원 우려

 

유족들에 따르면 A변호사는 올해 7월 4일 ‘확약서’를 통해 국가배상금과 법정 이자 6%를 포함한 피해 보상금을 같은 달 10일까지 지급하겠다고 약속했지만, 해당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이후 11월 29일에도 다시 한 차례 확약서를 발송했으나, 역시 이행되지 않았다는 것이 유족 측 주장이다.

 

유족들은 “A변호사가 40건 이상의 여순사건 관련 보상 소송을 대리하고 있어, 유사한 구조의 피해가 반복될 경우 전체 피해 규모는 최대 80억 원에 이를 수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이 사건이 외부에 알려진 이후 일부 유족들은 국가로부터 보상금을 직접 수령하는 방식으로 전환하겠다는 의사를 밝혔으나, 한 달이 넘도록 관련 절차가 실질적으로 진행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또 일부 유족은 국가로부터 직접 보상금을 수령했음에도, A변호사로부터 수임료 5.5% 지급을 요구하는 확인서를 받았다고 밝혔다. 유족들은 “보상금 집행 이후에도 국가가 관리·감독 책임을 방기한 결과”라고 비판했다.

 

유족들은 A변호사와 B씨를 경찰에 고발하고, 검찰과 경찰의 신속한 수사를 촉구했다. 유족 대표는 “보상금 횡령은 또 다른 국가폭력”이라며 “소송 브로커 구조 속에서 유족의 고통이 악용됐다”고 말했다.

 

이어 “이 사건은 단순한 개인의 일탈이 아니라, 보상금 대리 수령과 정산을 사실상 개인에게 맡겨온 제도의 공백이 만든 예고된 참사”라고 지적했다.

 

◇“해결책은 처벌 넘어 입법·제도 개혁”

 

유족들은 재발 방지를 위한 구체적인 입법 요구도 제시했다. 주요 요구 사항은 △여순사건 등 과거사·국가폭력 피해 보상금은 원칙적으로 유족 본인에게 직접 지급 △보상금 대리 수령은 법원 허가 하에 예외적으로만 허용 △변호사 보수는 사전 확정 후 별도 지급 △보상금은 개인 계좌가 아닌 법원 또는 공공기관이 관리하는 신탁·에스크로 계좌를 통해 집행 △보상금 횡령 시 가중 처벌 규정 신설 △보상금 지급 이후에도 국가가 관리·감독 책임을 지고, 횡령 발생 시 유족에게 선지급 후 국가가 가해자에게 구상권을 행사하는 제도 도입 등이다.

 

유족들은 기자회견 말미에서 “국가의 잘못으로 희생된 국민에게 지급한 보상금마저 지켜주지 못한다면 이 나라의 정의는 어디에 있느냐”고 반문했다. 이어 “과거사 청산은 선언이나 사과로 끝나는 문제가 아니라, 제도와 법률로 완성돼야 한다”며 “오늘의 입법이 내일의 또 다른 피해자를 막는 최소한의 책임”이라고 강조했다.

 

이번 기자회견은 여순사건 보상 절차의 구조적 허점을 공론화하며, 국가폭력 피해자 보상 제도 전반에 대한 점검과 개선 필요성을 다시 한 번 제기하고 있다.

 
류으뜸 사진
류으뜸 기자  awesome@wisdo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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